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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4주일]순명 (마태 1,18-24)

191 김종업 [rlawhddjq] 2019-12-22

 

 

2019년 12월 22일 주일    

[대림 제4주일]순명 (마태 1,18-24)

 

하느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사7,10-14)
그 무렵 10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이르셨다.
11 “너는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 저 저승 깊은 곳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아무것이나 청하여라.”
12 아하즈가 대답하였다.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
13 그러자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려 합니까?
14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의 신자들에게 축복의 인사를 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떠한 분이신지를 소개한다. (로마 1,1-7)
1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으로서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하느님의 복음을 위하여 선택을 받은 바오로가 이 편지를 씁니다.
2 이 복음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미리 성경에 약속해 놓으신 것으로,
3 당신 아드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분께서는 육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고,
4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힘을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확인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5 우리는 바로 그분을 통하여 사도직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이는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들에게 믿음의 순종을 일깨우려는 것입니다.
6 여러분도 그들 가운데에서 부르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7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이들로서  하느님께 사랑받는 로마의 모든 신자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는 마리아와 요셉의 순명이 있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믿음으로 당신의 명령을 따르기를 원하셨다. (마태 1,18-24)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대림 제4주일 제1독서(이사7,10~14)

 

그 무렵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이르셨다. "너의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  저 저승 깊은 곳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아무 것이나 청하여라."

아하즈가 대답하였다.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

그러자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려 합니까?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이사7,10~14ㄱ)  

 

아람과 북부 이스라엘이 동맹을 맺고 아시리아에 반기를 든다.

남부 유다의 아하즈 임금(B.C.735-716)이 아시리아에 반대하는 그들 동맹을 거절하자 아람과 북부 이스라엘이 남부 유다를 침공한다.

 

아하즈의 목숨뿐 아니라 다윗 왕조의 운명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이사야는 저 유명한 임마누엘의 표징을 아하즈에게 알리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믿음이 부족한 아하즈는 하느님께 매달리는 대신 아시리아에 도움을 요청하고, 그 댓가로 아시리아의 이교 신앙을 받아들인다.

 

이것은 이사야가 의도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였다.

그가 반(反)아시리아 동맹에 가담하지 말라고 한 것은 당시 근동의 초강대국인 아시리아에게 무모하게 대항하지 말라는 것이지 아시리아에 의존하라는 것은 아니었다.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이르셨다" (10)

 

이사야 7장 1~9절은 주님께서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이하즈에게 남부 유다가 북부 이스라엘과 아람 연합군의 침략에서 보존될 것 예언하는 내용이었다.

 

이제 이어지는 7장 10~16절은 남부 유다의 보존 예언을 확증하는 표징으로서 임마누엘의 예언을 주는 내용이다.

 

즉 이것은 주 하느님을 믿지 못하는 아하즈에게 다시 한 번 주님을 믿고 그에게 도움을 구하라는 일종의 신앙적 도전이라 할 수 있으며, 표징을 구하지 않는 그에게 주님께서 친히 표징을 주심으로써 그의 불신앙을 책망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주님께서 이르셨다' 말씀은 13절의 '이사야가 말하였다' 연결되는데,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직접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이사야 예언자가 주님의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전달한 것이다.

 

이사야는 주님의 말씀을 기계적으로 되풀이 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로부터 받은 계시를 자신의 지성과 언변에 담아 아하즈에게 전달하였던 것이다. 

 

"너는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 (11)

 

여기서 제기되는 '표징', '오트'(oth)어떤 추상적 사실이 확실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구체적인 표적과 같은 것을 지칭한다.

 

아하즈에게 하나의 표징(징조)을 구하라는 것은 그가 주님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주님의 능력을 얼마나 믿는지를 표현하라는 말이다.

 

따라서 그 제안을 표면적으로 보기에 하느님을 시험하라는 의미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하즈의 믿음을 시험하는 제안이다.

 

하느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으로서 인간이 구하는 어떠한 표적도 다 보여줄 수 있다. 

더욱이 주님께 징조를 구하라는 것은 주님께 대한 믿음이 시공간을 벗어나 가상적인 것이 아닌 현실 가운데 실제 역사하는 것이어야 함을 나타낸 것이다.

 

즉 이것은 세상에서 그분이 구체적으로 행사하시는 일, 실제적으로 보여주시는 것을 체험함으로써 보다 인격적이고 실제적인 믿음을 가지라는 제안이다.

 

그리고 이사야는 하느님을 가리켜 '너의 하느님' 즉 '아하즈의 하느님'이라고 칭한다. 이것은 그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는 표현이다. 

다시 말해서 그가 헛되고 무력한 거짓 신을 섬기는 이방 민족의 왕이 아닌 하느님의 백성을 통치하는 왕이며, 하느님을 섬기는 계약의 백성들 중에 통치자로 존재함을 확인시켜주는 표현인 것이다.

 

그는 지금껏 이방 신을 섬기고 온갖 패역을 자행하는 자였지만, 이 일을 계기로 하느님을 다시 자신의 하느님으로 모시고 하느님의 계약 국가 유다를 하느님의 섬기는 나라로 다시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고 있는 것이다. 

 

"저 저승 깊은 곳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아무것이나 청하여라" (11)

 

아하즈가 표징을 구하되 그 표징을 깊은 데서 오게 해 달라고 혹은 높은 데서 오게 해달라고 구하라는 의미이다.

이 두 장소는 인간이 도달하기 불가능한 곳으로서 음부와 하늘 지칭한다. 

 

만약 그곳에서 표징이 보인다면  이는 하느님께서 불가능하게 여겨지는 요구까지도 응답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이 확인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 이사야는 아하즈에게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징표로 구하라고 제안하는 것이다.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 (12)

 

아하즈가 주님께서 제안하시는 것을 단호히 거절하였음을 보여주며 그가 아시리아와 손을 잡고 그 제국으로부터 도움을 받겠다는 것을 이미 결심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아하즈는 가장 믿을만한 것으로 주 하느님이 아닌 장차 유다를 침공할 이방 아시리아를 선택하였던 것이다.

 

본문은 두 절 모두 강한 부정어 '로'(lo)와 더불어 동사의 미완료형이 사용된 구문으로서 결코 영원히 구하지 않겠다는 것으로써 아하즈가 얼마나 완악한 자인지 그리고 하느님께 대체 얼마나 무관심한 자인지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여기에서 '시험하다'는 의미로 사용된 '아낫쎄'(anaseh)의 원형 '나싸'(nasah)는 구약성경에서 34회 사용된 동사로서 어떤 물건의 품질이나 인격의 진정성을 알아내기 위해 시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쩌면 아하즈도 신명기 6장 16절의 "그분을 시험해서는 안된다"말씀을 근거삼아 이렇게 거절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명기의 말씀은 하느님의 능력을 의심하면서 그를 시험하는 불신앙적 행위를 금한 말씀이다.

 

반면 지금 이사야가 제안하고 있는 것은 하느님을 믿는 그 믿음을 하느님께 어려운 징조를 구함으로써 표현하라는 것이므로 이 둘은 아무 상관 관계가 없다.

 

그 점에서 볼 때 아하즈가 거부하고 있는 것은 전능하신 하느님께 그 백성이 마땅히 올려야 할 기도인 것이다.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기도를 거부한다는 것은 그가 하느님의 능력보다 다른 것을 더 의지한다는 표시이며 하느님을 도무지 신뢰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증거이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13)

 

이사야 예언자는 유다 왕실을 가리켜 '아하즈의 왕실'이라고 칭하지 않고 '다윗 왕실'이라고 칭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윗 왕실은 다윗 왕이 다스리던 시대의 이스라엘의 왕실을 의미하는데 그 왕실은 주 하느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통치를 수행하였다.

그런데 수백년이 흐르면서 그 믿음의 표상은 불신앙의 표상으로 바뀌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응당 믿음의 표상이 되어야 마땅한 유다의 왕실이 어찌하여 불신앙의 표상이 되었느냐고 물으면서 한탄의 어조로 이 칭호를 사용하고 있다.

 

남부 유다 왕 아하즈는 유다 왕실을 대표하는 자로서 그의 뜻은 곧 왕실 전체의 뜻이기에 아하즈의 태도에 따라 왕실과 나라 전체가 복을 받기도 하고 심판을 받기도 하는데 말이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렵 합니까?" (13)

 

여기서 '사람들'에 해당하는 '아나쉼'(anashim) 흔히 유한하고 병약한 존재로서의 사람을 의미하는 명사 '에노쉬'(enosh)의 복수형이다.

자기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주권자를 의지하여 도움을 기대했지만, 오히려 유다 왕실로부터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하고 고통만 당하는 무력한 백성들을 의미한다.

 

11절까지만 해도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을 '너의 하느님' 즉 아하즈의 하느님으로 지칭하다가 여기서는 '나의 하느님' 즉 이사야 자신의 하느님으로 지칭하고 있다.

이렇게 호칭이 바뀌게 된 것은 12절에 기록되어 있는 아하즈의 불신앙 때문이다.

 

하느님은 불신앙과 교만으로 가득하여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에게는 기탄없이 등을 돌리시는 분이시며, 겸손하게 그를 신뢰하고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들의 하느님이시다.

 

'성가시게 하고서' '할르오트'(haleoth)의 원형 '라아'(laah)구약 성경에서 19회 사용된 단어로서 피곤하게 하고 진절머리가 나게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탈출7,18; 욥4,2; 16,7; 예레15,6).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14) 

 

아하즈가 구하기를 거부한 표징을 주 하느님께서 일방적으로 주실 것이 선포된다.

하느님이 표징을 주신다는 것은 아하즈가 생각하기에 불가능한 그것을 그분은 능히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사실 하느님은 유다 백성에게 표징을 보여주실 의무가 없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표징을 주신다는 것은 무상의 선물인 은총인 것이다.

하지만 그 은총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게는 축복이 될 수 없다.

 

 

 대림 제4주일 복음(마태1,18-24)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19)

  

마태오 복음 1장 19절'의로운 사람'으로 번역된 '디카이오스'(dikaios; a righteous man; a just man) '의로운', '정직한, '하느님과 인간의 법률을 준수하는' 등의 뜻을 지닌 형용사이다.

 

이것은 요셉이 구약에 나타난 하느님의 율법을 쫓아 경건하게 살아가는 사람 이라는 것과 부정한 것은 용납하지 않는, 곧은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래서 그는 마리아의 잉태 소식을 접하고는 혼외관계로 인해서 잉태한 것으로 인식하고, 그녀와의 정혼 관계를 끊으려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율법대로 마리아를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며 처벌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는 아마도 마리아를 향한 그의 사랑이 깊었기 때문이며, 그의 성품 자체가 온유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메'(me; not)는 부정을 나타내는 부정 부사이며, '텔론'(thelon; willing)은  '자발적으로 ~할 의향을 갖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 '텔로'(thelo) 능동태 현재 분사형이다.

 

따라서 '싶지 않았으므로'로 번역된 '메 텔론'(me thelon)은 마리아의 요청에 의해서가 아니고, 요셉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서 그녀의 임신 사실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기로 결심한 사실을 보여 준다.

 

또한 '마리아의 일을'로 번역된 '아우텐'(auten)은 남성 3인칭 단수 대명사 '아우토스'(autos) 여성형 목적격 단수이므로 '그녀를'(her)이라는 뜻이다.

 

즉 원문으로 볼 때, 요셉은 혼외 임신이라는 잘못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엄청난 일을 범한 것으로 추정되는 마리아에 관심을 두었음잘 드러나고 있다.

 

한편, '드러내고'라는 의미로 번역된 '데이그마티사이'(deigmatisai; to make a public example)원형 '데이그마티죠'(deigmatizo)부정사형인데, '데이그마티조'(deigmatizo)'본보기'(an example), 특히 '경고의 의미에서의 본보기'를 보여 주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로서 '본보기를 만들어 앞에 내놓다', 또는 '공적으로 불명예를 주기 위해 폭로하다'는 의미이다.

 

본문은 요셉이 하느님의 율법대로 경건하게 살아가는 의로운 사람임을 소개하며자기가 정혼한 마리아의 임신이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을 그가 마리아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할지라도, 그러한 초자연적인 일을 경험한 일이 없음으로 인해 마리아의 임신을 혼외 관계로 여길 수밖에 없었던 그가 얼마나 상심하며 고민했을지를 엿보게 한다.

결국 고민끝에 요셉은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지만, 마리아를 깊이 아끼고 사랑한 까닭에, 당시 그런 죄목이라면 마리아의 부정을 공개적으로 폭로하여 모욕을 주고 돌에 맞아 죽게 하는 것이 관례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려는 강한 결심을 했던 것이다.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여기서 '마리아와'로 번역된 '아우텐'(auten)'그녀를'이라는 목적격 인칭 대명사이다.

 

그리고 '남모르게'로 번역된 '라트라'(lathra; privily; quietly)'비밀히'(secretly)라는 의미를 지닌 부사로서,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마리아와의 관계를 처리하기로 한 요셉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한편 '파혼하기로'로 번역된 '에불레테 ~ 아폴뤼사이'(ebulethe ~apolysai; had in mind to divorce)에서 '에불레테'(ebulethe)소원하고 바라는 것, 의도적으로 어떤 일을 수행하고자 하는 주어의 단호한 의지를 나타내는 동사 '불로마이'(bulomai)의 직설법 부정 과거 수동태이다.

 

여기서는 '불로마이'(bulomai)가 수동이 아닌 능동의 의미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아폴뤼사이'(apolysai)원형 '아폴뤼오'(apolyo)의 부정사 부정 과거 능동태형인데, '아폴뤼오'(apolyo)의 기본적인 의미는 노예, 죄인 등 구속된 사람을 자유롭게 놓아 보내는 것을 나타낸다.

 

이 단어는 신약에서 대부분 이런 의미로 쓰였으며, 그 외 모임을 해산하거나, 선교사를 파견하거나, 사람을 떠나 보내거나, 아내를 버리는 것, 즉 이혼하는 것 등의 의미로 쓰였다.

 

여기서는 이혼, 즉 정혼 상태를 깨뜨리는 것을 의미하므로, '에불레테 ~ 아폴뤼사이''파혼하여 떠나 보낼 것을 결심했다'는 뜻이다.

 

 

2018년 12월 23일 대림 제4주일

오늘의 묵상

오늘 제1독서에서는 하느님의 계획을 강조합니다.
이사야가 아하즈 임금에게 표징을 청하라고 제안합니다. 제안도 주님한테서 오는 것이며 하느님의 계획입니다. 그러나 임금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표징을 청하지 않으며 하느님께서 개입하시는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임금의 폐쇄적인 태도 앞에서 주님께서는 특별한 표징을 통하여 당신 사랑의 계획을 드러내십니다.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당신 은총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복음에서는 이 약속된 표징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보여 줍니다. 요셉은 성령으로 잉태한 마리아의 일을 두고 무척 고민합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아기 탄생을 앞두고 요셉이 감수해야 하는 엄청난 시련은 마리아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천사는 주님께서 그에게 혼인과 사랑과 행복의 길을 열어 주셨음을 보여 주고자 개입합니다.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고민의 실타래가 풀리면서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합니다.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예언자를 통한 주님의 말씀이 실제로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느님의 계획은 동정 잉태가 실제로 이루어지고, 태어난 그 아들, 곧 사람이 되신 말씀은 인간과 친교를 맺고 당신 현존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임마누엘”의 의미이고,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의 계획입니다.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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