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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0년 2월 24일 (월)연중 제7주간 월요일주님,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신부님강론
연중 27 주일 (가해)

198 양권식 [ysimeon] 2008-10-05

연중 27 주일 (가해)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연중 27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유대교 지도자들을 포도밭 소작인에 비유하였습니다. 포도밭이라는 말은 오늘의 제1독서인 이사야서가 이스라엘을 지칭하여 사용한 단어입니다. 이스라엘은 좋은 열매를 생산하지 못하는 포도밭이라고 말합니다. 오늘의 복음이 ‘포도밭을 일구어,..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는 말은 이사야서(5,2)에서 가져온 표현입니다. 소작인들이 그 아들을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는 말은 예수님이 예루살렘 밖에서 처형당하셨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초기 신앙인들의 말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포도밭에서 소작인인 유대교 지도자들이 그 밭의 임자이신 하느님의 아들, 곧 예수님을 죽였다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은 그 끝에 ‘집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라는 시편(118,22-23)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기고, 소출을 잘 내는 백성이 그 나라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으로 끝맺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였지만, 그분은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의 중심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한 그리스도 신앙입니다(1고린 3,11 참조). 오늘 복음은 포도밭 주인에게 악하게 행동한 소작인들과 같이, 하느님에게 충실하지 못한 유대교 지도자들의 잘못으로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자격을 잃고, 새로운 신앙공동체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교회가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이라는 자각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즉시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인들이 유대교와 결별한 것은 점차적으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여 살아 계시다고 믿는 신앙인들을 유대교 지도자들은 고운 눈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실천을 회상하면서 유대교의 경전인 구약성서를 새롭게 해석하였습니다. 그들은 율법과 성전 제사에 대해서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유대교 지도자들과 견해를 달리하였습니다. 기원 후 66년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의 지배를 거부하면서 전쟁을 일으켰고 4년 동안 항쟁하다가 70년에 패전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은 그야말로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게”(마르 13,2) 파괴된 성전과 더불어 폐허로 변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참상을 보면서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신 결과라고 이해하였습니다. 그때부터 그들은 새 이스라엘이라고 스스로 믿었습니다.
유대교 사회가 사람들을 죄인으로 판단하고, 가난한 사람, 우는 사람들을 죄인이라고 외면하는 것을 보면서, 예수님은 하느님을 자비로운 아버지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 시대의 징표를 읽고,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 굶주리는 사람, 우는 사람들이 행복해야 한다고 축복 선언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그 시대를 위한 하느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신앙인들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말씀 혹은 그분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한자성어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우리는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태어나서, 죽을 때 생전에 누리고 가졌던 것 중에서 그 어느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더 나아가서 모든 생명체에게 해당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모든 생명체 중에서 사람만이 이 진리를 깨달은 존재이면서 동시에, 유일하게 그 진리를 망각하고 또 애써 외면하면서까지 진리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나무 잎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다음, 계절이 바뀌면 열매와 잎을 떨구며 가진 것들을 버립니다. 동물들은 자신들이 먹어야 할 만큼만, 살아남기 위한 만큼만 먹고 보관합니다. 유일하게 인간만이 자기에게 필요한 것 이상으로 먹고, 모으고, 쌓아두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내어놓기도 힘들어합니다.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에는 끔찍한 폭력과 죽음이 이어집니다. 포도밭 임자가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소작인들로부터 소출을 받기 위해 종들을 보냅니다. 소작인들은 소출을 내기는커녕 종들을 붙잡아 매질하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이에 주인은 더 많은 종들을 보내지만,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합니다. 주인은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하며 아들을 보냅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포도밭을 차지하기 위해, 상속자인 아들마저 죽입니다.
비유에 나오는 포도밭을 내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으로 묵상해 봅니다. 많은 사람이 나의 포도밭에, 곧 나의 삶 안에 들어옵니다. 피로 맺어진 가족, 가까운 이웃, 성당의 형제자매, 직장 동료, 그리고 내가 발길을 옮기는 삶의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를 빌리자면, 주인이 포도밭에 보낸 사람들입니다. 주인은 다름 아닌 하느님이시고, 종들은 하느님께서 나의 삶의 터전에 보낸 사람들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포도밭 소작인들처럼 하느님께서 보낸 사람들을 폭력과 죽음으로 맞아들이는지도 모릅니다. 나의 삶의 포도밭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환대하기보다는 그들을 배척하기도 합니다. 때때로 그들을 사랑하기보다 미워하고, 칭찬하기보다 헐뜯고, 인정하기보다 시기하고, 자랑으로 삼기보다 무시하기도 합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거절하고 내치는 많은 경우는 나 자신만의 포도밭을 차지하려는 욕심과 욕망에 사로잡힐 때입니다. 그리하여 포도밭에 침범하는 사람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무장된 욕망의 칼을 휘둘러 상처를 입히고, 또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들을 죽음과 같은 상황으로 몰고 갑니다.
우리가 이웃 형제들과 진실한 삶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는 우리가 받은 삶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바로 우리가 어떻게 삶의 결실을 거둘 수 있는지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형제 여러분,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그러면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삶에 감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삶의 포도원에서 풍성한 기쁨과 결실을 거둘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여진 모든 것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주어진 모든 것은 물런이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일이야 말로 우리가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도지이고, 우리의 삶에 대한 우리의 합당한 태도일 것입니다. 항상 감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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