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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5월 9일 (목)부활 제6주간 목요일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청년게시판
예비신자 감소와 시대의 징표는?

993 정희송 [tfrancisco] 2003-12-06

경향잡지에서 펌

 

 

 

 

 

● 90년대 들어 예비신자가 늘었다는 이야기를 듣기가 어려워졌다. 전체 신자수는 늘고 있지만 증가율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위기로 봐야 할까? 왜 사람들이 교회를 찾지 않는 것일까? 사람들을 다시 교회로 불러들일 해법은 없는 것일까?

 

● 은경축을 맞아 작은 섬에 사는 성직자, 5년 동안 가난한 동네에 살면서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는 수도자, 본당 사목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신학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평신도, 이렇게 세 사람이 자리를 함께했다.

 

 

 

 

 

 

 

 

 

 

 

● 일 시 : 2003년 2월 12일 오후 4시 30분

 

● 장 소 :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수도원 3층 우리신학연구소

 

● 참 석 : 호인수 베네딕토 신부(인천교구 옹진군 덕적성당)

 

           오영숙 데레사 수녀(사랑의 씨튼 수녀회·수도자 장상연합회 사회사목분과장)

 

           박영대 베네딕토(우리신학연구소 연구원)

 

 

 

    할 말을 해야 한다

 

 

 

▷오영숙/ 언젠가 신문을 보니까 가톨릭에 대한 이미지가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종교를 갖게 된다면 천주교 신자가 되겠다.”는 사람이 많다는 거예요. 교회의 사회참여 덕분이었는데…. 교회의 조그만 NGO 단체들이 하는 일을 좋은 점으로 인정하고 그것이 교회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죠. 그들은 교회에서 ‘찬밥’ 신세를 받고 있는데…. 반대로 서울대교구 시노드를 준비하면서 안 사실인데 신자들은 수도자들의 사회 참여를 ‘못마땅하게’ 생각해요.

 

신자들의 의식하고 교회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의식하고 달라요. 교회 밖의 바람을 교회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거죠. 매력이 없는 교회는 사람이 오지 않아요.

 

 

 

▷박영대/ 70-80년대에도 몇몇 사람이나 단체가 한 일이 바깥에는 교회 전체가 민주화운동을 하는 것으로 비춰졌어요. 80년대 말부터인가 교회 안에서 공인, 비공인 논쟁이 일고 문규현 신부 방북을 두고도 잘했네 못했네 싸우다 보니 교회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은 다 빠져나갔어요. 교회에 활력이 없어진 거죠.

 

 

▷오영숙/ 80년대에는 선교를 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이 교회를 찾아왔어요. 그것은 광주사태처럼 교회가 필요할 때 목소리를 냈고 적극적으로 대처했기 때문이죠. 거기서 사람들은 희망을 보았던 거죠. 그때처럼 이 시대의 표징이 될 것을 찾아서 그것을 삶에서 보여주어야지 무조건 나가서 끌고 오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호인수/ 그래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솔직한 성찰이 필요하죠. 선교는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겁니다. 솔직한 성찰이 있어야 대안도 나오는 건데….

 

무슨 사건이 터지면 교회는 감추고 덮으려는 데 급급해요. 밝힐 것은 밝히고 변론할 것은 교회의 상황을 들어 정당하게 변론해야죠. 그래야 결론이 났을 때 큰 탈이 없어요. 누가 책임질 거냐고요.

 

 

 

▷오영숙/ 서울대교구 시노드 개막식에서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정진홍 교수님이 참관인 발언을 하셨는데(137쪽 우듬지 참조) 정말 뼈아픈 충고 같아요. 말씀대로 교회는 투명해야 해요.

 

 

 

▷박영대/ 최근 미국교회에서 성직자의 성문제도 덮다덮다 결국 터진 거잖아요. 서울의 청계천 복개된 뚜껑을 여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요. 열어두면 자정(自淨)이 돼요. 덮어두면 썩는 거고. 시노드는 그런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좋은 자리인데 그런 이야기를 잘 하지 못하죠. 경험을 통해 얘기를 해도 적극적으로 수용이 안될 것은 자기검열을 통해 수위조절을 하는 거죠.

 

 

 

▷오영숙/ 수용이 안되니까 건전한 비판자는 교회를 자꾸 떠나요. 생각이 같은 사람만 주변에 남아있으니까 보는 것이나 생각이 한정되죠. 수용이 되지 않더라도 아픔을 안고 끝까지 교회에 남아서 바른길을 가도록 이끌었으면 좋겠는데….

 

 

 

    스스로 변해야 한다

 

 

 

▷박영대/ 특권의식들이 교회 안에도 있어요. 예수님은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고 구체적으로 예까지 들어가며 말씀하셨는데, 매일 성서를 읽고 묵상을 하면서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아요.

 

 

 

▷호인수/ 저부터 반성하는 일이지만 신부는 미사 시간에 늦는다는 개념이 없지요. 신부가 와야 시작이니까. 사제가 없으면 다른 사람은, 평신도나 수도자는 아무것도 못하게 되어있잖아요.

 

 

 

▷박영대/ 개신교회에서는 장로, 집사들이 목사를 내보내는 경우가 있어요. 자정 기능이라고 보거든요. 인격적으로나 영적으로 성숙이 덜 된 사람은 자연도태가 되는 거죠. 1995년도인가 인구 센서스와 천주교 신자 조사수가 60만 차이가 났어요. 그 정도가 교회 안에 허수로 잡혀있다는 건데 마음의 정리가 끝난 사람들이죠.

 

 

 

▷오영숙/ 기록상으로만 신자이고 마음으로는 아닌 경우….

 

 

 

▷호인수/ 저는 그것을 잃은 양이 아니라 ‘내뺀 양’이라고 부릅니다. 신자들을 양이라고 해서 하는 말인데 교회의 구성원들이 교회 조직 안에서 역할 분담이 좀더 분명해졌으면 좋겠어요. 책임도 갖게 하고. 그러려면 교육을 해야죠. 성직자 수도자는 교육을 하는데 평신도는 교육을 안해요.

 

 

 

▷박영대/ 어느 교구 사제 연수에서 성직자들의 리더십 문제가 거론된 적이 있어요. 요즘 사회는 권한을 나눠주고 협의하는 쪽으로 가는데 우리 교회는 아직도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전근대적인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본당에서 사람이 안 키워지는 거예요. 권한이 위임되면 실패를 통해 커가는 건데….

 

지난 대선에서도 보았듯이 지금은 인터넷 시대예요. 꽃동네 같은 경우에도 인터넷 언론에 보도되어 파장이 더 크잖아요. 시대 정신은 그렇게 가고 있어요. 교회도 그걸 감각으로 느껴야 해요.

 

 

 

▷오영숙/ 그래요. 외부의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변하는 것보다 스스로 자발적으로 변하는 것이 바람직하죠.

 

 

 

▷호인수/ 변한다는 것, 개혁은 기득권 포기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자기 살을 깎는 고통을 이겨내야 변하는 것인데…. 우리 교회도 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껴야 해요.박영대/ 신자들은 삶과 신앙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을 안해요. “마음속으로 나쁜 생각을 하는 것은 간음한 것과 똑같다.” 그것은 예수님 말씀인데도 “이건 따끔하라고 과하게 말씀하신 거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안하고 살 수 있냐.” 뭐, 대충 그렇게 넘어간다고요.

 

세례를 받으면서 ‘내가 세례를 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신자들이 없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문제예요. 성서를 보고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하면 “나는 세례를 안 받겠다.” 하는 것이 정상일 텐데…. 왜냐하면 예수님처럼 살겠다는 결단이니까. 그런데 지금 교회 안에 그런 분위기가 없어요.

 

 

 

▷호인수/ 흔하지 않지만 고민하는 사람, 영세를 미루는 이가 가끔 있어요. 그런데 주위에서 “뭐 그런 걸 갖고 고민하느냐.”고 말려요.

 

 

 

    시대의 징표를 읽어야 한다

 

   

 

▷오영숙/ 지금 시대의 징표는 ‘평화’ 같아요. 교황님도 전쟁의 폭력의 부당함을 말씀하셨어요. 북한에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도 큰 피해를 볼 겁니다. 전쟁의 폭력 앞에서는 남북한의 경계가 없어요. 이 세상 어디에서도 전쟁이 있어서는 안되죠. 교회가 평화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했으면 좋겠어요.

 

또 한 가지 제가 지금 서울 성북동에서 공부방을 해요. 5년 전에 들어갔는데 우리 수도회의 총회 결정사항이었어요.

 

거기 아이들 반 이상이 근처에 있는 큰 교회에 가요. 저는 아이들 손 잡고 성당 데려가는 것이 선교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살면서 그들과 삶을 함께 나누다보면 이 아이들이 컸을 때 멀게만 느껴졌던 교회가 가까워지겠죠.

 

부모들도 그래요. 주민등록도 거기고 공부방에 산다는 것을 알고는 ‘아! 이 수녀님들도 우리 주민이다.’ 생각하게 되죠. 그러다 보니 종교간의 대화도 가능하고…. 그런 것들이 교회가 이 시대에 보여주는 표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박영대/ 본당에서 사목회 청소년분과를 맡고 있어요. 요즘 청소년 관련 책을 많이 읽으면서 어린이들한테 교회는 어떻게 비쳐지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죠. 아이들은 그야말로 ‘탈 권위’잖아요. 권위적으로 다가가면 부모들한테도 “에이, 짱나(짜증나)!” 그러는데. 지금 교회 모습은 그 애들이 제일 싫어하는 원형질이거든요. 그 아이들이 남아있겠느냐는 거죠. 부모의 통제를 벗어나면….

 

냉담자에 대한 조사를 보면 아이들이 성당 안 나오는 것은 학업하고는 아무 상관 없어요. 아이들은 또래문화니까, 한 아이가 나오면 덩달아 다 나오고 안 나오면 다 안 나오는 거예요. 이유가 없죠. 신부, 수녀, 교사가 맘에 안 들어도 자기가 보고 싶은 친구가 있으면 나와요. 기준이 그렇거든요.

 

 

 

▷오영숙/ 아이들이 성당에 와서 재미가 없으니까 떠드는데, 떠든다고 야단치고…. 이런 식으로 나가면 중학교부터는 안 나와요.

 

 

 

▷박영대/ 그러니 본당에 청년이 없어요. 아이들, 교회의 미래를 가르칠 교사가 없는 거예요. 바싹바싹 말라가는 거죠.

 

 

 

    함께 삶을 나누어야 한다

 

  

 

 

 

▷호인수/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 대안일 것 같아요. 동네 사람처럼 살면 돼요. 그 사람들 보기에 예수쟁이들의 삶이 좋아 보이고 매력적으로 보이면 ‘나도 한번 해볼까.’ 하고 덤벼드는 거죠.

 

 

 

▷오영숙/ 함께 삶을 나눔으로써 같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눈으로 보이지 않는 복음, 그리스도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죠. 무작정 신자수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부대끼면서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선교죠.

 

 

 

▷박영대/ 가두선교를 통해 얻을 신자는 이미 개신교에서 훑어갔어요. 그래도 딴 동네 가서 하는 거 말고 동네에서 하는 가두선교는 오히려 참가한 신자들에게 긍정적인 효과가 있어요. “얼굴이 뜨거웠다. 평소에 잘해야 되겠다.” 하는….

 

 

 

▷호인수/ ‘예수 공경’ 교회가 아니라 ‘예수 모방’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살아야 된다는 거죠. 예수님을 모셔놓고 절만 하는 교회라면 아무 소용없어요.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처럼 사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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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에 대한 의견들입니다.

 

 

 

 

 

 

 

braveheart  (2003-11-18 07:05:19)

 

 

 

불쏘시게 게시판에서 우신연 관계자라 여겨지는 사람이 올린 정구사 신부님들 신상에 관한 이야기들이 사실이라면 (부평1동은 그렇다 하더라도 H 신부님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여부가 밝혀져야겠죠), 박영대 실장과 호인수 신부님이 서로 선문답과 탐색전을 하면서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좌담이었겠네요.^^

 

 

 

다만 박영대 실장이 말씀하신대로 일단 터지면 파장이 큰 인터넷 시대에 살고 있는만큼 교회 뿐만 아니라 문제제기 하는 쪽도 단순히 "카더라"는 "소문"이 아니라 "사실"과 "근거"에 입각한 대화가 되었으면 합니다. 지금 공대위가 부산 M성당에 보여주고 있는 철저한 비협조와 무시의 자세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피해자들과 그 가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진실 규명을 위해 협력해나갈 수 있는 동반자 관계로도 발전해 나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신학 연구소도 일방적으로 숨어서 뒤통수 때리는 <폭로 구조>보다는 허심탄회하게 정식으로 정의구현 사제단에 문제를 제기하는 <대화 구조>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교회의 예비자 감소나 비활성화는 교회내적으로 원인을 찾아볼 수도 있겠지만,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와 흐름의 영향도 큰 것같습니다. 70-80년대는 사회정의구현이라는 명제가 아주 분명했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을 주축으로 교회가 눈부신 활약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제가 발전하고 사람들의 생각들도 많이 개인주의적으로 변해가면서 문제가 복잡해지고 있는 것같습니다. 다원화된 복잡한 사회에서 이제 사람들은 직접대면이나 서로 몸을 부딪치며 친교를 나누기보다는 인터넷이라는 소통구조로 대화를 나누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인터넷, 이것 어찌보면 공간을 초월해서 서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고마운 도구라 생각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없이 개인과 개인을 소외시키고 직접적인 대면접촉을 저해하는 가로막이 될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주일학교 어린이들도 성당에 가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공부하기보다는 집에서 컴퓨터하고 노는게 더 재미있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니까요. 이제는 사람들의 다양화된 관심과 처지를 고려한 "문화 사목" 쪽으로 나가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정구사 신부님들의 사회정의 구현 활동도 그러한 큰 물줄기 안에 포함될 수도 있는 세상이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비신자 감소의 원인을 교회 탓이냐 아니면 전반적인 사회 변화 탓이냐를 따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내탓"이 선행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일방적으로 사제중심의 교회구조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기보다는 신자들의 인식과 태도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세상이 변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부평1동 성당의 경우처럼 요즘 신자들 좀 똑똑하고 무섭습니까? 사목자가 잘못했다고 대번 홈페이지 만들어 띄워버립니다. 평신도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교회내 많은 역할들이 평신도로 이양되어 가면서 어떤 식으로 평신도 자신이 어떻게 자신을 규정하고 자신의 역할을 자리매김할 거냐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신학 연구소가 추구하는 평신도 신학은 의미가 있을 겁니다. 다만 최근 부산 M 성당 사례에 대해 보여준 태도는 지나쳤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학을 모르는 평신도들의 목소리를 너무 가볍게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M 성당 신부님과 성당측은 여러 달 대응을 자제해 오다가 공대위와 부모들이 TV에서 신부님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쪽으로 나오자 그에 대응했기 때문에 과도한 반응은 아니었다고 보여지는데도 평신도들의 대응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평한 것은 M 성당 신자들에게 분명 상처를 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평신도 신학이 자칫하면 신학을 아는 평신도들과 모르고 신앙생활하는 사람들 사이의 계층적 위계를 만들어버릴 위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신학을 좀 공부했다고 해서 그렇지 못한 평신도들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평가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평신도 신학을 하시는 분들이 그렇지 못한 절대 다수의 평신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고 리더쉽을 발휘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희망 가져 봅니다.    

 

 

 

 

 

이런생각 (2003-11-18 09:42:07)

 

 

 

사람들은 큰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말과 행동이 어느정도 평신도와 일치하기를 원하지요 그러나 종교적특성상 성직.수도자와 평신도 사이에 벽은 대화로서 풀릴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최선의 방법이긴하나 서로 길이 다르기때문에 변화가 심한 요즘세상에서는 신자수는 많은데 냉담자가 많은 경우도 더욱 종교에 매달리고 싶은데 진작 가서보면 갑갑함을 느끼지요

 

삶의 모습자체가 하느님께 가는 길이 다르기때문일지 모릅니다

 

그래도 오영숙수녀님처럼 현장에서 체험도하시면서 신자의 입장에서 알려고 노력하는모습만이라도 신자들은 좋아합니다 바로 선교하시는 거죠

 

어릴때 아무리 많은체험을 하고 살아도 자신의 길이 또다른 제도에 있으면 생각자체가 달라지기때문에 갭이 커질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braveheart  (2003-11-18 12:17:42)

 

 

 

오영숙 수녀님같이 눈에 확 뜨일정도로 두드러지게 현장에 뛰어 들어 살고 계신 수도자나 성직자들도 계시지만 보이지 않게 일하고 계신 분들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꼭 뭔가를 신자들에게 보여주고 감명을 주는 사제나 성직자여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신학같은 학문으로 풀릴 수 있는 문제만는 아닌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삶의 방식의 문제이고 어찌 보면 문화적인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런데 오영숙 수녀님처럼 특수 사목을 맞고 계신 수도자와는 달리 본당 신부님같은 경우 각종 성무들과 행사, 그리고 신설 본당같은 경우는 성전 신축 등 각종 "사업"들에 메달리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더 어려움이 많은 것 같습니다. 열심히 하시다 보면 신자들 개개인들의 요구보다는 "사업" 자체가 주가 되는 경우도 생기고 앞에서 너무 열심히 이끌어 나가시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권위주의적으로 비추어 지는 경우도 있구요.

 

 

 

어쨋든 단순히 말을 통한 대화가 되었든 행동을 통한 묵언의 대화가 되었든 의사소통 구조는 꼭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사제가 권위주의적으로 행동함으로써 벽을 만들고 신자들에게 갑갑함을 초래하고 있다고 해서 평신도들도 그러한 사제를 소극적인 자세로 외면해버리거나 불쏘시게같은 싸이트에다 각종 음모론이나 소문을 퍼뜨리는 식으로 대응해 버리고 만다면 서로간의 의사소통은 일방적인 것으로 변모해 버리고 막혀있게 됩니다. 잘못하면 헤어나오기 어려운 불신의 늪으로 빠지게 되버릴 수 있습니다. 사제도 신자들도 모두 잃는 게임을 한 샘이죠. 옥수동 신부님 사례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우선 신뢰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 중요할텐데 평신도가 먼저냐 사제가 먼저 시작하느냐가 문제일 것 같습니다.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그러한 구조도 고쳐 나가야 겠구요. 제 바램이 있다면 평신도 신학이 지나치게 사제와 평신도간에 대립각을 날카롭게 세우는 방향으로는 나아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필요할 때는 과감한 충고와 의견을 개진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말입니다. 요즘은 미국 가톨릭 교회의 성추행 사건을 계기로 사제들에 대한 비판이 언론을 통해 전파되면서 사제 고유의 인권마저 무시되거나 억압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들이 발생함을 보게 됩니다. 평신도 신학이 성직자들과 보통 평신도들 사이의 의사소통의 가교가 되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리고 삶으로써 감동을 주는 사제, 성직자도 무척 요구되고 중요하지만 마찬가지로 삶으로써 감동을 주는 평신도들 역시 더욱 많아져야 할 것 같습니다. 예비자 감소와 같은 한국 가톨릭 교회의 위기는 단순히 사제 탓으로만 돌릴 것이 아니라 평신도들도 그 십자가를 나누어 지는 적극성을 가져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생각 (2003-11-18 14:19:35)

 

 

 

교회내에서는 자매님들이 거의 다 차지하고 있습니다 형제님들이 적어 사실상 평행을 유지하기 어렵지요 큰일들은 사목위원에서 다 하고 있고 그외 수녀님을 통해 이야기가 되고 있지만 끝에가서는 이해라고는 없이 제도적이고 이론적인 원칙에 못을 박지요

 

그래서 깊이있고 허심탄회한 대화는 될수가 없습니다 사실 수십년을 레지오활동부터 시작해서 열심히 살아오신 할머니대부분이 미사때 신부님얼굴만 알고 있는 분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대화를 하는 사람만 계속 이야기를 하게 되죠 그리고 신부님이 독신이라 자매님일 경우 이야기하는쪽은 아무렇지도 아는데 주위의 시선이 따갑죠

 

평신자가 적극성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중 또 하나는 분위기가 근엄하기에 밖에서는 활발한 사람도 성당에 들어오면 갑자기 엄숙해 지는곳에서 적극성을 발휘할수가 없죠

 

이미 권위가 분위기를 타고 전달 되므로 평신자는 거의 수동적자세에서 벗어날수가 없습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다른분위기를 나타내면 이미 신자들사이에서 이상하다고 소문이 난답니다

 

십자가를 나누어 가지고 싶어도 적극성을 분출할 틈을 주지도 않는데 어떻게 짐을 질수가 있습니까 적극성은 편안하고 부더러운 분위기가 이루어지고 대화가 될수있는 모티브가 되어있을때 가능한 경우이지요 이런건 되고 저런건 안된다고 자르는 권위앞에서는 언제나 수동적일수 밖에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열정을 가지고 와서 말없이 떠나는 경우는 그냥 밥먹기 싫어서 냉담하는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숱하게 고민하고 북받치는 울음도 참아가면서 하느님을 떠나는것입니다 평신자도 성직.수도자못지않게 하느님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고 실천하면서 살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진실된 현실적인 통로를 발견하지 못하여 도움을 청하고 싶은데 높은벽이 가로질러 있어 돌아가는 양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작은이  (2003-11-18 17:35:28)

 

 

 

적극적으로 하라고 해줘도 안 하더군요..... 단 한 번의 경험은 아니니 뭐라 하지 마십시오... 10년간 젊은 청년들이 그런 꼴을 지켜봐왔습니다......    

 

 

 

 

 

braveheart  (2003-11-18 18:21:21)

 

 

 

저도 작은이님과 비슷한 생각입니다. 예비자 감소의 원인을 모두 성직자들에게만 돌리는 것은 상황을 너무 단순하게 바라본 것이라 생각합니다. 평신도들의 적극성도 사회 문화적인 급변과 세속화에 의해 떨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 명퇴 시대에 당장 먹고 살 길에 관심이 있는 요즘, 어떻게든 로또 당첨되어 대박 터뜨리기만을 인생 최대의 행복으로 알고 있는 요즘, 종교에 대한 무관심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경제 지표가 올라갈수록 이는 당연한 결과라 생각합니다. 이를 둔화시켜보자는 노력은 있을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제 생각의 요지는 예비자 감소 추세의 원인을 단순히 사제의 잘못으로만 돌리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분석인 것 같고 오히려 그에 관련된 유관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은 문제라는 것입니다. 물론, 사제 한 사람의 변화로부터 다른 평신도들의 변화를 이끌어 내겠다는 발상은 하나의 접근법으로서의 가치가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오늘날 대다수의 신부님들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braveheart  (2003-11-18 20:18:22)

 

 

 

이런 글이 있군요. "복음은 깨달음과 느낌을 바탕으로 삶의 현장에서 그 정신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도와 성사(聖事)를 발판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으로 눈을 돌리고 발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박순석·요한 /서울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이 생각이 가장 균형잡혀 있게 느껴지네요. 제도와 성사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면서도 세상을 향해 열려있고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교회의 모습, 아마도 가장 이상적인 교회상이 아닌가 합니다.^^    

 

 

 

 

 

이런생각 (2003-11-19 08:24:24)

 

 

 

문제요지의 파악을 잘못 알고 있군요

 

긴말하기 싫어서 짧게 쓴 글이고 하나 하나 짚고 넘어가면 쓸데없는 꼬리가 늘것같아 줄여 쓴 글입니다

 

아무리 사이버 공간이지만 입이 있다고 다 말하지 못하고 느낌을 가지고 있다고 다 글로 쓸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부님 자체를 원망한것이 아니고 전체적인 틀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크게 나타나는 것중에는 노조관계부터 천주교와 관련된 행정에 있어서도 타협하지 못하는 여러가지 현상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자세에서 관점을 두고 글을 비판한다면 완벽한 글은 없읍니다

 

왜 BOX가 생각나는지 모르겠습니다   

 

 

 

 

 

braveheart  (2003-11-19 08:56:01)

 

 

 

"이런 생각"님께서 함축적으로 생각을 표현하셔서 제가 요지를 잘못 짚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말씀하시는 "전체적인 틀"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조적인 문제를 말씀하시는 건지 아니면 사제 개인적인 품성이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풍토를 말씀하시는 건지.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수고스러우시겠지만 조금 더 지면을 할애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면 이해가 쉬울 것 같군요. BOX 이야기도 좀 해주시구요. 그리고 진지한 대화 나눌 수 있어서 무척 반갑습니다.^^    

 

 

 

 

 

이런생각 (2003-11-19 10:06:24)

 

 

 

’전체적인 틀’이란 둘 다를 말할수 있습니다 넓은의미로는 구조적인 문제에 더 가깝겠지요

 

BOX는 고정관념을 뜻합니다 더이상 대화의 대상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여러 게시판에 보면 훌륭하고 좋은글들이 여과되지 않아서 자신이 올다고 주장하면서 백날 싸움만 하다가 다음글이 올라옵니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무언가 열려있는 구석이 보여야 대화도 진지하게 풀어나갈수 있고 인간미가 흘러나옵니다

 

천주교신자가 고백성사때는 형식적으로 하고 신부님께 상의하고 말씀드려야 할것을 스님한테 허심탄회하게 말하수 있다면 무언가 잘못되도 크게 잘못된게 아니겠습니까   

 

 

 

 

 

작은이  (2003-11-19 13:46:09)

 

 

 

뭐... 아무에게나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다면 뭐가 문제겠습니까? 신부님의 본업이 심리상담이 아닌 바에야 말이지요.... ^^ 전 신부님들은 고해성사 잘 주고 미사 안 빼먹고 잘 하면 장땡이라고 생각하는 평신도입니다. 그 외의 일들은 평신도들도 잘 할 수 있는 것들이거든요... 우리 신앙생활에 특별히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고...    

 

 

 

 

 

이런생각 (2003-11-19 16:11:55)

 

 

 

음..

 

 

 

심리상담까지 나올정도로 글이 왜곡 되었군요!   

 

 

 

 

 

braveheart  (2003-11-19 16:12:16)

 

 

 

"이런 생각"님께서는 특별한 체험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혹시 구체적인 사례가 있으셨다면 듣고 싶습니다. 사제에 대한 실망은 그분들께 대한 지나친 기대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요? 저는 사목위원같은 직책을 맡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가까이서 성직자들을 대면하는 분들께서는 그런 실망을 많이 표출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고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거리에 서 있으려 하는 쪽입니다. 너무 가까이 있으면 그분들도 인간인 이상 좋지 않은 것을 보게 될거 같아서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사제들에게서도 저의 양심 판단으로 좋고 선한 것만 가려서 듣고 나머지는 흘려 버리자는 쪽입니다. 나머지는 그분을 다스리는 분이 책임지셔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달리 보자면, 지나치게 제도 교회와 사제들을 비판하는 일면에는 사제들에 대한 지나친 의존과 성직자 중심주의가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문을 가져 봅니다. 그래서 자신이 응당 수행해야 할 역할들을 그분들에게 미루면서 탓하는 안일한 생각이 자리잡고 있지는 않나 의구심을 가져 봅니다. 사실 성직자 수도자, 제도 교회가 뒷받침해주고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세상에 구현되어야 할 정의는 반드시 그분들의 승인이나 뒷받침 없이도 시작되거나 실천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당넷이 생긴 것도 제도 교회가 명했거나 인정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웃의 불쌍한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 등의 작은 선행들은 반드시 제도 교회의 승인없이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의 사업도 처음부터 제도 교회의 인정을 받았던 것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간략하게 언급하셨던 노조 파업(아마도 성모병원 노조와 명동성당 농성 노조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의 경우도 제 좁은 소견으로 보기에는 노조 측에서 무리수를 둔 면이 컸던 것 같습니다. 사제들의 권위주의적인 태도도 어느 정도 문제가 커지는데 일조했겠지만 노조 측에서도 지나치게 강공 일변도의 전략을 구사하는 잘못을 했던 것은 노조 자체 내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바입니다.

 

 

 

물론 제도 교회나 성직자들에 대한 문제 의식마저 막아버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굿뉴스나, 성당넷 같은 인터넷 싸이트에서라도 성직자 수도자 분들께서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말씀해주시고 의견을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인터넷 시대에 적극적으로 신부님들께서 인터넷을 통한 의견교환을 통해 평신도들이 납득할 수 있는 공개적인 방식으로 본당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업들을 추진해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인터넷을 과신할 수는 없겠지만 사람들이 갑갑해하는 벽을 허무는데 인터넷이 어느정도 기여할 수 있겠다는 희망 가져봅니다. 그런 점에서 각 본당 게시판과 굿뉴스 게시판이 보다 활성화되고 역동적인 의견 교환의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작은이  (2003-11-19 16:48:37)

 

 

 

신부님이나 수도자님들의 생각이 왜 중요합니까? 초대교회 신자들은 신부님이나 수도자분들이 잘 이끌어서 그랬습니까?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요?

 

평신도들이 스스로 잘 해 나갈 수 있는 시기가 아닌가요? 쩝.    

 

 

 

 

 

이런생각 (2003-11-19 17:15:40)

 

 

 

하하하...

 

저를 그렇게 심각하게 보셨나요 오랜시간 보았고 또 느끼고 했던 일반적인 견해일 뿐입니다

 

그리고 나이 헛먹었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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