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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3주일 (자선 주일)]의심을 품지 않는 이(마태 11,2-11)

190 김종업 [rlawhddjq] 2019-12-15

2019년 12월 15일 주일

 

 

12/15 대림 제3주일 자선 주일 🔮🔮🔮 JOY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백성이 시온에 모여 기쁨과 즐거움으로 환호할 것이라고 한다. (이사35,1-6ㄴ.10)
1 광야와 메마른 땅은 기뻐하여라. 사막은 즐거워하며 꽃을 피워라.
2 수선화처럼 활짝 피고 즐거워 뛰며 환성을 올려라. 레바논의 영광과, 카르멜과 사론의 영화가 그곳에 내려  그들이 주님의 영광을, 우리 하느님의 영화를 보리라.
3 너희는 맥 풀린 손에 힘을 불어넣고 꺾인 무릎에 힘을 돋우어라.
4 마음이 불안한 이들에게 말하여라. “굳세어져라,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너희의 하느님을! 복수가 들이닥친다, 하느님의 보복이! 그분께서 오시어 너희를 구원하신다.”
5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6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10 주님께서 해방시키신 이들만 그리로 돌아오리라. 그들은 환호하며 시온에 들어서리니 끝없는 즐거움이 그들 머리 위에 넘치고  기쁨과 즐거움이 그들과 함께하여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라.

 

야고보 사도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야고 5,7-10)
7 형제 여러분, 주님의 재림 때까지 참고 기다리십시오. 땅의 귀한 소출을 기다리는 농부를 보십시오. 그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맞아 곡식이 익을 때까지 참고 기다립니다.
8 여러분도 참고 기다리며 마음을 굳게 가지십시오.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습니다.
9 형제 여러분, 서로 원망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심판받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심판자께서 문 앞에 서 계십니다.
10 형제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말한 예언자들을  고난과 끈기의 본보기로 삼으십시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고백하였지만(요한 1,34 참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마태 11,2-11)
그때에 2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5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6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7 그들이 떠나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고운 옷을 걸친 자들은 왕궁에 있다.
9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10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내가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대림 제3주일 제1독서 (이사35,1-6ㄴ 10)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5~6ㄱ)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5)

본절부터 7절까지는, 종말에 선민 이스라엘의 땅에 넘칠 환희과 기쁨을 예고하는 35장 1-2절에 이어, 다시 하느님께서 가져오실 당신 백성들과 그들의 땅의 역동적 회복을 예언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역동적 구원은 부분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활에서 성취되었다.

특히 5절과 6절은 세례자 요한이 감옥에 갇힌 후, 예수께서 자신이 메시아되심을 입증하면서 답하신 말씀과 동일한 것이다(마르7,37 ; 루카7,22 ; 마태11,2-6).

즉 이것은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된 예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본문 서두에 제시된 '그때에' 에 해당하는 '아즈'(az ; then)일차적으로는 메시아 시대를 나타낸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이것은 주님께서 도래케 하시는, 온전한 회복의 나라,영원한 나라 즉 새 하늘과 새 땅을 통해 이루어질 그 나라로 귀결된다.

 

한편, 하느님께서 회복케 하시는 역사(役事)가 이루어질 날에 일어나게 될 사건으로 먼저 제시되는 것은 맹인의 눈이 밝아지는 것이다.

여기서 '열리고'에 해당하는 '티파카흐나'(thiphaqahna)는 '열다'의 의미를 지닌 '파카흐'(phaqah)의 수동형으로서, '열릴 것이다'는 의미가 된다.


이처럼 이 단어가 수동형으로 사용된 것은 그것이 저절로 되어지는 것이 아님을 나타낸것이다.

즉 맹인의 눈이 열리는 역사가 전적으로 주 하느님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아울러 이것은 문자 그대로 맹인이 눈을 뜨고 보게 된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으며, 영적 어두움 속에서 멸망의 길을 걷던 자들이 진리의 빛을 보고, 생명의 길을 가게 된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또한 이것은 하느님을 거역하던 백성에게 내려졌던 책벌이 풀리는 것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이사6,10; 29,18).

그들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바로 보게 될 것이며,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참된 가치관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더 이상 무익한 이방의 강대국이나 헛된 이방의 우상이 아닌, 완전한 구원이신 주 하느님만을 의지하게 될 것이다.

 

한편, 이어지는 본절 후반부는 '눈먼 이의 눈' 에서 '귀먹은 이의 귀'로 바뀌었을 뿐,  앞 부분과 동일한 의미를 전달하는 평행 대구 문장으로 풀이된다.

 

여기서는 청각기관인 '귀'란 표현이 사용되어,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도 않고 깨닫지도 못했던 자들이, 복음의 말씀을 통해 그 귀가 열리고 진리를 깨닫게 되는 역사가 이루어 진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 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떠뜨리리라.' (6ㄱ)

예수님은 벳자타 못 가에서 서른 여덟 해나 누워있던 병자를 치유하셔서  그로 하여금 걷게 하셨으며(요한 5,2-9),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의 '아름다운 문'에 앉아 있던 앉은뱅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유해 그로 하여금 사슴처럼 뛰게 하였다.(사도 3,1-9)

이처럼 메시아 시대가 되면, 절름발이도 건강한 다리를 갖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영적으로 해석하면, 불완전한 신앙을 가졌던 자들이 신앙을 회복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로 알아들을 수 있고, 죄의 굴레에 얽매여 바르게 사는 데 있어 제한을 받던 자들이, 그 굴레를 떨쳐버림으로 인해, 진리의 길을 마음껏 활보한다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 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란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활 중 갈릴리 지방에서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치유하셔서, 그로 하여금 말을 분명하게 하신 사건(마르코 복음 7,31-37)을 연상케 한다.

 

이것 역시도 영적인 의미를 지니는데, 과거에는 하느님을 찬양하지 못했던 자들이 하느님을 찬양하게 되며, 하느님의 진리를 침묵하던 자들이 입을 벌려 담대히 그 진리를 증거하는 자들이 된다는 것으로 알아 들을 수 있다.

 

한편, 앞의 5절의 경우는, 메시아의 활동으로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 표현이 모두 수동형으로 사용되어,하느님의 주도적인 역사가 강조되었다.

그러나 본절의 경우, 발로 걷고 입으로 말하는 역사가 이루어진 것에 대해서는 강조 능동형과 능동형 동사가 사용되었다.

 

이것은 메시아 시대의 회복의 양상이 하느님의 주도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한 자들의 적극적인 순종과 증거를 통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날 것임을 나타내고자 하는 의도가 들어있는 것이다.

 

2016. 12. 11 대림 제3주일(마태 11,2-11)/<메시아 시대의 신앙인>

 

< 메시아 시대의 신앙인>

“그런데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마태 11,2-3).”
여기서 세례자 요한이 했다는 말만 보면, 그가 예수님을 의심한 것으로 생각하기가 쉬운데,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서 직접 물어보라고, 또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직접 보고 믿으라고 시킨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세례자 요한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요한 1,6-7).”
또 세례자 요한이 이렇게 증언했다고 기록했습니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요한 1,33-34).”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알게 되고 믿게 되고, 또 그것을 사람들에게 증언한 세례자 요한 자신이  예수님을 의심했다고(안 믿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고, 요한의 제자들이 그의 증언을 믿지 않아서  예수님을 의심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어떻든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마태 11,4-6).”
이 말씀의 뜻은,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을 너희 눈으로 직접 보아라. 그리고 나를 믿어라.”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는 것을 보았다면, 또는 체험했다면,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믿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장애자들과 병자들이 치유되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는 말씀은 ‘메시아의 구원’을 뜻합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다면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게 됩니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라는 말씀은 바로 그런 뜻입니다.
(여기서 ‘행복하다.’를 ‘구원을 받는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돌아간 뒤에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요한에 대해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고운 옷을 걸친 자들은 왕궁에 있다.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마태 11,7-9).”

사람들이 광야에 간 것은 경치를 구경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부귀영화를 얻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그들은 ‘회개의 세례’를 받으려고 회개를 선포한 예언자 요한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단순히 회개를 선포하기만 한 예언자가 아니라,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메시아에게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안내자였기 때문에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입니다. (요한을 만났다면 그 다음에는 메시아를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의 신앙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가 성당에 가는 것은 성전을 구경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부귀영화나 출세나 재물 같은 것을 얻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단순히 성전 건물을 구경하기 위해서나, 또는 부귀영화 같은 세속적인 복을 빌기 위해서 성당에 간다면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사실상 성당에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마태 11,11).”
이 말씀은 세례자 요한을 칭찬하시는 말씀이기도 하고, 당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암시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이라는 말은 그냥 ‘사람들’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구약시대 예언자들을 가리킵니다.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라는 말씀은, “요한은 구약시대 예언자들 가운데에서 가장 위대한 예언자이다.” 라는 뜻입니다.
그가 그렇게 위대한 것은  하늘나라를, 또는 메시아 시대를(신약시대를) 미리 준비한 예언자이기 때문입니다.
(신약시대는 구약시대보다 더 위대하다는 것을 강조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라는 말씀은, 신약시대 신앙인들은 구약시대 신앙인들보다 더 큰 은총을 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세례자 요한을 깎아내리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메시아 구원의 위대함을 강조하시는 말씀입니다.
구약시대는 율법의 시대였고, 아직 메시아께서 오시기 전이었고, 메시아의 구원을 기다렸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는 메시아께서 오셔서 새로 시작된 새 시대이고, 본격적으로 구원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은총의 시대입니다.
그래서 신약시대는(메시아 시대는) 구약시대보다 더 위대합니다.

이 말을 지금의 각 개인의 신앙생활에 적용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저 심판이 두려워서 계명과 율법을 지키는 것만 신경 쓰는 사람은  구약시대 수준의 초보적인 신앙생활만 하는 신앙인이고,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능동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면서
참 기쁨과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 신앙인이  제대로 메시아 시대의 신앙인답게 신앙생활을 하는 신앙인이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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