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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교리
미사의 재발견 (영성체)

23 수유1동성당 [suyu1] 2008-02-20

 
 


 
1. ‘주님의 기도’와 평화의 인사 등으로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한 다음에 성체를 영한다. 예수님이 현존하시는 성체를 영함으로써 우리는 그분과 일치를 이룬다. 2천 년 전에 인간의 구원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성체를 통해 내게 오시어 이렇게 약속하신다. ‘내가 너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나를 바쳤고, 계속 너를 위해 곁에 있을 것이다.’ 인간들끼리도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온전히 헌신한다는 것을 알면 큰 힘이 된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죄인인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치셨고, 부활하시어서 계속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안다면 살아가는 데에 무한히 큰 힘을 될 것이다. 예수님의 이런 헌신적인 사랑을 어떤 아버지의 자식 사랑에 견주어 생각해본다.

   2. 꼽추 아버지를 둔 한 젊은 여인이 있었다. 그 여인은 결혼을 앞두고 넉넉하지 못한 친정 형편 때문에 부유한 시댁에서 행여나 흉잡힐까봐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꼽추 아버지의 손을 잡고 많은 하객들 앞에 나선다는 것은 정말 생각하기도 싫었다. 그래서 결혼식장에서만큼은 큰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하게 해 달라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 때문에 오빠에게 따귀를 얻어맞았지만, 정작 아버지는 시집가는 딸이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 염려를 하면서 이렇게 얘기했다. “걱정 말거라. 요즈음은 하루가 다르게 허리가 아파 오니 내 그 날은 식장에도 못 갈 것 같구나. 그러니 마음 아파하지 말고 네가 원하는 대로 해라.” 결혼식 당일에 큰아버지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선 딸은 집에 홀로 남아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을 아버지를 떠올리며 결혼식 내내 울고 말았다. 결혼하고서 임신을 하게 된 딸은 입덧에 시달리며 친정 음식을 그리워했다. 어느 날 그 딸은 시댁 식구들과 나들이 차 나서던 차에 먼발치로 동네 단골 슈퍼마켓 근처에서 있는 아버지를 보았지만, 그냥 못 본 채 지나쳤다. 그 날 저녁에 슈퍼마켓 아주머니가 보따리 하나를 전해 주었다. 그 속에는 아버지가 연필로 삐뚤빼뚤 쓴 쪽지와 함께 음식이 들어있었다. “네 어미가 오려고 하다가 일 나가서 못 오고 내가 대신 가지고 왔다. 하나는 청국장이고 하나는 겉절이다. 배곯지 말고 맛있게 먹어라.” 아버지는 딸의 시집 근처에 몰래 와서 딸을 위해 음식과 쪽지만 전해주고 돌아 간 것이다.

   3. 꼽추 아버지는 딸이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고 냉대를 했어도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어 주었다. 예수님도 당신에게 등을 돌리는 인간들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어주셨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 소식을 전하면서 자비로운 하느님을 선포하셨지만, 인간들은 이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기쁜 소식을 선포한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음에로 내몰았다. 하지만 예수님은 미움과 원망으로 대응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의 구원을 위한 희생 제물로 당신 자신을 내어 놓으셨다. 십자가상에서도 당신을 죽이는 이들을 위해 하느님 아버지께 용서를 청하셨다(루카 23,34). 또한 예수님은 당신을 버리고 도망갔던 못난 제자들을 용서하시고 다시 사도로 삼아 세상에 파견하셨다(요한 20,21). 이런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시는 예수님이 성체를 통해 우리에게 오신다. 세례성사를 통해 모든 죄의 사함을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난 우리는 미사 때마다 영성체로써 우리에게 오시는 하느님의 아들의 큰 사랑을 받으면서 영적으로 양육된다. 영성체를 하면서 예수님의 무량한 사랑을 깨닫고 마음에 새겨두고 산다면, 절망의 나락에 떨어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4. 그런데 예수님은 나만이 아니라 모든 이를 위해서 죽으셨다. 바꾸어 말하면, 내 마음에 들지 않아 상대하기 싫은 사람을 위해서도 십자가에서 당신을 바치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을 본받아서 서로가 서로를 위해 자신을 바치기를 원하신다.l 그러므로 성체를 영함으로써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룬 사람은 예수님처럼 자신을 바치는 사람으로 변화되어서 형제자매들과 친교를 이루려고 노력해야 한다. 예수님의 큰사랑을 받은 사람은 자기 이웃에게, 특히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나누어 줘야 한다. 이런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바로 교회다. 그렇다면 교회는 분명히 세상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능력 없는 사람, 병든 사람, 나이 든 사람을 외면하며 밖으로 밀어내는 경향이 점점 더 강해진다. 하지만 교회는 이런 세상과는 대조적으로 내쳐진 이들을 보듬어주는 가족 같은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런 모습의 교회를 어느 중학교 교실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통해서 그려본다.

   5.어느 중학교에서 한 교사가 점심시간이 끝나고 1학년 5교시 수업에 들어갔다. 날씨가 제법 쌀쌀한데도 아이들은 창문을 모두 열어놓은 채 몸을 웅크리고 떨고 있었다. 춥지 않느냐고 물으니 아이들은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웃기만 하였다. 그 교사는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오다가 그 반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 “김 선생님! 선생님 반은 추운데도 모두들 문을 열어놓고 있던데요. 아이들은 젊어서 그런지 안 추운가 봐요.” 그 선생님의 입에서는 뜻밖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사실은 우리 반의 아이가 4교시 수업이 끝날 무렵에 실수를 했어요.” 그 학급에는 특수학급에서 온 아이가 한 명 있는데, 그 아이가 수업 시간에 그만 설사를 했다는 것이다. 옷을 버린 것은 물론이고 교실 바닥까지 지저분해졌다. 거의 난리가 난 상황인데, 두 학생이 자발적으로 나서더니 선생님을 제쳐놓고 오물을 치우고, 그 아이를 숙직실로 데리고 가서 목욕까지 시켜 자신들의 체육복으로 갈아 입혔다. 그리고 그 아이의 속옷과 교복까지 빨아주었다. 결국 그 반 아이들은 친구의 실수를 덮어주기 위해 다른 선생님에게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6. 매일 미사를 거행하면서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는 교회 공동체는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보잘것없는 이들을 포함해서 모든 이를 하느님의 가족으로 한 데 모으는 노력을 해야 한다.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고 다양한 사람들이 친교를 이루는 교회는 세상 마지막 날에 완성될 하느님 나라, 곧 모든 이가 어울려 흥겹게 먹고 마시는 혼인잔치로 비유되는 하느님 나라(마태 22,1-10)를 이미 보여주고 있다. 초대교회는 바로 이런 친교의 공동체를 이루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사도 2,42) 이렇게 모두가 함께 빵을 떼어 나누는 ‘식사 공동체’, 즉 미사를 삶의 중심에 두고 서로 친교를 이룬 초대교회는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사도 2,46)  

   7. 우리의 순교선열들도 호감과 매력을 주는 친교의 공동체를 실현하였다. 이런 사실은 순교자 황 일광 알렉시오의 증언을 통해서 드러난다. 그는 조선시대의 천민 계층인 백정 출신으로서, 신앙에 입문한 다음에 박해를 피해서 산속 깊은 곳에 있는 교우촌(敎友村)으로 숨어들어가 살았다. 여기서 신자들은 서로를 “교우”, 즉 “믿음의 벗”이라고 불렀다. 신분구별이 뚜렷했던 조선시대에 양반이 천민보고 “형제”, “벗” 라고 불렀다는 것은 파격 중의 파격이다. 교우촌에 살다가 체포된 황 일광은 취조를 받으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백정으로 태어나 이제껏 사람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나는 천주교인이 됨으로써 어떤 학문이나 이치가 아닌 신앙의 삶을 통해 천주교가 참됨을 깨우치게 되었다. 나에게는 천국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아직 오르지 못한, 곧 가게 될 이승 너머의 곳이고 또 하나는 지금 이 생활이다. 양반인 천주교 형제들은 금수와 같이 취급되는 나를 형제라 부르면서 나를 친형제처럼 사랑으로 대하여주었다. 우린 하느님 아버지와 성모 어머니께 한마음으로 묵주기도를 드렸고 함께 고생했다. 나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황 일광 순교자는 신분의 높은 벽을 뛰어넘어 천민인 자신을 한 형제로 받아 줄 정도로 깊은 친교를 나누는 교우촌을 지상의 천국으로 체험하였고, 거기서 힘을 얻어 하느님을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 바쳤다. 매일 미사를 거행하면서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교회라면 신자들 간에도 깊은 친교를 이루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이런 친교의 공동체는 우리의 신앙을 키워주는 영적 양식이 된다. 우리는 하느님 말씀으로써, 성체를 영함으로써, 그리고 신자들 서로 간에 친교를 나눔으로써 영적으로 양육되어 우리의 신앙이 자라고 튼튼해진다. 비유로 말하자면 부모님의 가르침과 그분들이 마련해주시는 음식 그리고 화목한 가정 분위기 속에서 자식들이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하겠다. 

   8. 성체를 통해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은 이렇게 권고하시면서 우리를 회개하도록 인도하신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나를 바쳤고, 계속 너희를 위해 곁에 있을 것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나와 하나 되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그리고 나와 일치를 이루는 너희들은 서로 사랑을 나누는 친교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특히 세상이 외면하는 미소한 이들을 나의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공동체가 되도록 애써야 한다. 그래서 다툼과 분열로 어두워지고 혼탁해진 세상을 비추고 변화시키는 빛과 소금(마태 5,13-14)이 되어라.”

  <생활성서> 2008년 3월호에 게재 / 손희송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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