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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2주일 (인권 주일)]회개하여라 (마태 3,1-12)

189 김종업 [rlawhddjq] 2019-12-08



    2019년 12월 8일 주일

[대림 제2주일 (인권 주일)]회개하여라 (마태 3,1-12)

 

 

이사야 예언자는 메시아 시대가 다가옴을 알린다. 메시아는 참평화의 시대를 열 것이다. (제1독서이사11,1-10)
그날 1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2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
3 그는 주님을 경외함으로 흐뭇해하리라.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결하지 않고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리라.
4 힘없는 이들을 정의로 재판하고 이 땅의 가련한 이들을 정당하게 심판하리라. 그는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막대로 무뢰배를 내리치고  자기 입술에서 나오는 바람으로 악인을 죽이리라.
5 정의가 그의 허리를 두르는 띠가 되고 신의가 그의 몸을 두르는 띠가 되리라.
6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7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8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
9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도 사람들은 악하게도 패덕하게도 행동하지 않으리니  바다를 덮는 물처럼 땅이 주님을 앎으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10 그날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리라. 이사이의 뿌리가 민족들의 깃발로 세워져  겨레들이 그에게 찾아들고 그의 거처는 영광스럽게 되리라.

 

 바오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의 자손으로 태어나신 것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고 다른 민족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임을 상기시킨다. (제2독서 로마15,4-9)
형제 여러분, 4 성경에 미리 기록된 것은 우리를 가르치려고 기록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서 인내를 배우고 위로를 받아 희망을 간직하게 됩니다.
5 인내와 위로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의 뜻에 따라 서로 뜻을 같이하게 하시어,
6 한마음 한목소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을  찬양하게 되기를 빕니다.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기꺼이 받아들이신 것처럼, 여러분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서로 기꺼이 받아들이십시오.
8 나는 단언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께서 진실하심을 드러내시려고  할례 받은 이들의 종이 되셨습니다. 그것은 조상들이 받은 약속을 확인하시고,
9 다른 민족들은 자비하신 하느님을 찬양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그러기에 제가 민족들 가운데에서 당신을 찬송하고  당신 이름에 찬미 노래 바칩니다.”

 

세례자 요한은 말과 행동으로 회개의 삶을 권고하며 메시아께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예언한다. (마태복음 3,1-12)
1 그 무렵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유다 광야에서 이렇게 선포하였다.
2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3 요한은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4 요한은 낙타 털로 된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다.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들꿀이었다.
5 그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요르단 부근 지방의 모든 사람이 그에게 나아가,
6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7 그러나 요한은 많은 바리사이와 사두가이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
8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9 그리고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고 말할 생각일랑 하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
10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
11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12 또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시어,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

 

 

  대림 제2주일 제1독서(이사11,1~10)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6)

 

이사야 11장 3-5절에서는 주님을 경외함에서 우러나온 메시아 공의의 통치의 면모를 묘사하였다.

이제 이사야서 11장 6절이하 9절에서는 메시아 통치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신(新)세계적 평화의 나라를 상징적 언어를 사용하여 묘사하고 있다.

 

이 단락은 신,구약 성경 중에서 매우 큰 사랑을 받는 본문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구절들을 애송함으로써 고단한 삶 가운데에서 평화와 용기를 얻고 있다.

 

먼저 이같은 평화의 나라가 성취되는 시기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육화)과 재림 사이 교회의 시간에 성취된다고 하는 해석이다.

이에 따르면 이 왕국은 교회와 동일시되며 그리스도안에서 거듭난 교회에서는 원수와 싸움이 없고 평화와 사랑이 넘쳐나게 될 것임을 본단락이 예언한 것이 된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성취된다고 보는 해석이다.

즉 이 나라를 늑대와 새끼 양이 함께 뛰노는 세상이며, 젖먹이가 독사 굴 속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어도 아무런 해입지 않는,  생태계의 기본 원리인 천적 관계조차 사라진 완전한 평화가 이루어지는 신세계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 해석이 보다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왜냐하면 본단락의 묘사가 교회의 시간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아무리 교회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다 할지라도 거기에는 여전히 인간의 죄악된 본성이 남아 있으며, 슬픔과 근심,걱정과의 싸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새 하늘과 새 땅이 되면 죄와 죽음은 사라지고 슬픔도 근심도 눈물도 존재하지 않는다(묵시21,4.5).

그야말로 전혀 새로운 개념의 새 세상이 펼쳐지는 것이다.

 

따라서 이사야 예언서 11장 6절이하 9절의 예언은 교회의 시간에는 부분적으로 성취되다가 그리스도 재림 이후 완전하게 성취됨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메시아 왕국의 본질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왕국은 성경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나라이다.

실제로 새끼 양이 늑대와 함께 놀아도 해를 받지 않고, 사자 등 육식 동물이 옆에 있는 먹이조차도 물지 않는 세상이 된다.

즉 약육강식의 동물 세계에서도 천적 관계가 없어지는 완전한 평화의 세계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둘째, 이 왕국은 영적인 나라인 것이다.

이 동물들은 인간의 다양한 영적 상태를 대표하는 것이 된다.

사나운 사람들, 압제적인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영적 세상에서는  가장 무력하고 연약한 자들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서로 평화롭게 지낸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일은 이 세상 가운데서 성령을 통해 거듭난 사람들 사이에서도 볼 수 있는 일이다.

교회 안에서 가라지가 밀이 되듯이 악인이 변해 선한 사람이 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사야 예언자는 이러한 일이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시점을 메시아 통치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시점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셋째, 이 왕국은 메시아 왕국에서 죄와 죽음의 모든 위험이 다 사라진다는 사실을 비유를 사용하여 묘사한 것으로 보는 해석이다.

 

이상에서 설명한 메시아 왕국의 실현 시기와 본질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각각 나름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모든 해석의 가능성들을 열어 놓는 가운데 조심스럽게 이 단락에 접근하는 것이 좋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강생과 관련된 예언인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 재림 이후 완전히 성취될 예언이며 영적인 현상에 대한 예언인 동시에 종말에 그리고 종말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가운데 실제로 이루어질 예언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예언은 이사야 예언서 65장 25절에서 다시 한번 반복되어 강조된다.

 

한편, 메시아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세상에 나타나는 첫번째 현상으로서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사는 것이 제시된다.

'늑대'(이리) '제에브'(zeeb)는 매우 사나운 들짐승으로서 새끼 양이나 새끼 염소와 같은 연약한 동물들을 먹이로 삼는다(요한10,12).

늑대(이리)의 이러한 점은 스바이냐 예언자가 탐욕스럽고 불의한 판관들을 '이리'로 표현하였고(스바3,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는 것은 마치 양들을 이리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신 데서도 잘 드러난다(마태10,16).

 

또한 '새끼양'에 해당하는 '케베스'(kebes)는 아직 장성하지 않은 어린 숫양 의미한다(민수15,11).

이러한 '새끼양'은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다.

그러나 이처럼 사납고 잔인한 늑대가 새끼양과 함께 산다는 것이다.

천적 관계를 형성하는 이런 동물들이 함께 산다는 것은 그러한 천적 관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나타낸 것이다.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여기서 표범은 앞서 제시된 늑대와 동일한 이미지를 새끼 염소는 새끼 양과 동일한 이미지를 전달한다.

그리고 '지내리라'에 해당하는 '이르빠트'(irbats)의 원형 '라바츠'(rabats)는  네 발 가진 동물들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옆으로 드러눕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이다.

 

약육강식의 관계에서 서로 먹고 먹혀야 할 천적 관계에 있는 두 짐승은 한편은 먹기 위해 웅크리고, 다른 한편은 먹히지 않기 위해 경계하고 도피하고 도주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들 두 짐승이 함께 나란히 누워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것 역시 메시아가 새롭게 창조하는 세상의 모습을 선명하게 묘사하는 것으로서 이 세상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경이로운 광경이다.

이러한 내용은 이어지는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라는 표현에서도 계속된다. 

 

'어린 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앞선 내용은 흉폭한 동물과 약한 동물, 육식 동물과 초식 동물이 천적 관계를 형성하지 않고 평화롭게 공존함을 열거법을 사용하여 묘사하였다.

이제 본문은 단지 짐승들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짐승들과 인간들 사이에도 평화가 이루어짐을 보여준다.

 

특히 인간 가운데 가장 연약한 어린 아이가 초식 동물은 물론 사자나 표범 같은 사나운 육식 동물들을 몬다는 것태초에 하느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인간에게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창세1,28)고  축복하신 것이 다시 회복됨을 의미한다.

 

메시아가 통치하는 새 세상이 되면 과거와 다른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지만 그것은 전혀 이상하거나 생소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파괴된 창조 질서와 섭리가 다시 완벽하게 회복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본문의 '어린 아이'에 해당하는 '나아르 카톤'(naar katon)또 다른 측면에서 메시아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메시아는 어린 아이처럼 연약하면서도 동시에 죄를 모르는 순수한 분으로서 죄와 무관한 새로운 세계, 죄를 청산하고 새롭게 조성될 새 하늘과 새 땅의 지도자로 적합하기 때문이다.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7)

 

이사야서 11장 6절에 이어 7절에서도 암소와 곰이 평화롭게 공존하며, 그것들의 새끼들도 함께 어울림을 묘사하고 있다.

원문에 보면 '곰'에 해당하는 '도브'(dob)는 여성형, 즉 암곰을 가리킨다.

잠언 17장 12절에서는 매우 사나운 짐승으로 '새끼잃은 암곰'을 제시하고 있다.

사실 새끼잃은 암곰은 몹시 민감하여 새끼에게 다른 짐승이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시아가 통치하는 왕국에서는 이러한 동물의 본능까지도 변하게 될 것임을 묘사하고 있다.

 

또한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는다고 묘사된다.

'여물'(풀)에 해당하는 '테벤'(theben)볏단을 말려 작두로 썬 짚을 지칭하는 것으로서(창세24,32),

이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집에서 기르는 소의 먹이이다.

육식을 하는 사자가 그 습성을 버리고 여물을 먹게 되는 것은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날카로운 송곳니도 평범한 어금니로 변해야 하고 그 체질도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장차 메시아가 통치하는 나라에서 이루어질 완벽한 평화가 어떤 것인지를 함축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젖먹이가 독사 굴위에서 장난하며'  (8)

 

이사야서 11장 8절은 젖먹는 아이가 독사 굴에 손을 넣고 장난하는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젖먹이의 피부는 유약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이처럼 유약한 아이가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독사굴에 손을 넣는 장면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끔찍한 결과만이 예상된다.

 

그러나 본절에서 이사야는 그렇게 해도 전혀 해가 없을 것이라고 서술한다.

이것은 메시아가 통치하는 평화의 나라에서는 해를 받는 일이 전혀 없을 것임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여기서 '장난하며'에 해당하는 '웨쉬아샤으'(weshyashah)원형 '샤아으'(shaah)는  어린 아이가 소리를 지르며 즐겁게 노는 모습을 나타내는 단어이다(이사66,12).

이것은 세말에 이루어질 메시아 왕국의 도래에 따른 놀라운 변화, 제한없고 완전한 평화의 구현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선명하게 확증하고 있다.

 

한편 이처럼 젖먹이, 젖뗀 아이가 아무런 염려도 없이 독사굴에 손을 넣고 장난하는 이러한 일은 독사의 이빨이 빠지고, 그 독이 완전히 제거된 것을 전제로 한다.

 

여기서 독사의 이빨이나 독은 악의 요소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메시아를 통해 구현될 새로운 세계에서는 악의 요소가 자취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완전히 제거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어떻게 주님의 길을 잘 닦을 것인가? -회개, 위로, 기쁨-2017.12.10. 대림 제2주일

본능대로 살지 아니하고

 

찬미 예수님 , 사랑합니다.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태초부터 영원한 사랑입니다. 그분에 대한 우리의 마음이 흔들렸지 그분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 시간 영원한 하느님의 사랑에 머물 수 있는 은총이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당신의 숨, 영을 불어 넣어주신 은혜에 감사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오늘 1독서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보면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쩌 가고, 어린 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이사11,6-7).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믿기지 않는 일입니다. 사자나 늑대는 사나운 이빨을 가지고 있고 난폭합니다. 양과 염소, 송아지는 그들의 먹이가 됩니다. 더군다나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이 말씀은 사자나 늑대가 사나운 이빨과 발톱을 가지고 있지만 제 본능대로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난폭한 습성을 버리고 오히려 양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에제36,26).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언제 이루어졌느냐 하면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한 다음 수 백 년이 지나서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이루어졌습니다.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는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어울리며 먹고 마신다고 불평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삶이 변했습니다. 몸을 파는 창녀가 제 습성대로 살지 않고 깨끗하고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예수님 앞에 끌고 왔을 때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을 던져라.”하셨습니다. 그러자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 둘 다 떠났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다시는 죄짓지 마라.” 그는 더러운 습성을 버리고 주님의 자비를 입었습니다.

 

 사납게 굴던 마귀들린 사람이 예수님의 한마디로 온순하게 되었고, 남을 등쳐먹던 세리 자캐오가 자기습성이나 본능을 버리고 가난한 사람에게 자기 재산을 내놓았습니다. 손해를 끼친 사람에게 네 곱절로 갚았습니다. 서로 미워서 등진 사람들이 사랑하게 되고, 심지어 죽었던 나자로가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가르치고 때로는 기적을 행하시며 하느님의 권능을 드러내셨습니다. 주님이 계신 곳에는 은총이 충만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둠의 세력에 사로잡힌 일부를 제외하고는 본능이나 습성대로 살지 아니하고 자신의 삶을 바꾸었습니다.

 어부가 그물을 버리고 가족을 놔두고 그야말로 삶의 터전을 떠나 기꺼이 주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리하여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본능적으로 살았을 때에는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을 박해하고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았습니다. 그가 “나는 죄인 중에 가장 큰 죄인”이라고 고백하고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내 달리고 있습니다.” 하며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 매달린 강도도 자기 마음대로 살았던 큰 죄인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님,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오실 때 저를 꼭 기억하여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여 바로 그 자리에서 낙원에 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구원을 얻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세례자 요한은 유다 광야에서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3,20).하고 선포하였습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바로 자기 본능대로 살지 않고 악습대로 살지 아니하며 잘못된 것을 버리고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새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저도 하나의 못된 습성이 생겼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도 모르게 컴퓨터 앞에 앉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눈을 뜨고 양치질을 하면서 컴퓨터를 켜는 겁니다. 그리고는 뉴스를 확인하고 이메일을 체크하고 있더라고요.

아침미사를 봉헌하기에 앞서 기도하고 준비해야 하는데 성경을 읽으면서도 한눈으로는 컴퓨터에 눈이 가있어요.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미사 봉헌, 아침기도를 끝내기 전에는 컴퓨터를 켜지 않는다.

 

 잠자기 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에는 강론 테이프를 듣다가 자든지 묵주기도를 하다가 자든지 했는데 텔레비전을 보다가 자는 겁니다. 자다가 깨보면 텔레비전이 켜있어요.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도 자기도 모르게 좋은 것을 잃어버리고 나쁜 습성에 젖어 들 수 있습니다. 사실 드라마나 코미디프로를 볼 시간은 있어도 성경을 읽을 시간은 없습니다. 더더욱 좋은 시간을 마련하여 꾸준히 기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저는 전에는 밤에 자다가 깨면 ‘조금 더 자야 하는데….’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주님께서 기도하라고 깨워주셨구나’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아주 편합니다.

새벽 3시가 되었든 4시가 되었든 성당에 갈 때도 있고, 성모자상 앞으로 갈 때도 있고.. 그리고 또 졸리면 잡니다. 어찌 되었든 좋지 않은 습성을 바꾸어 마음을 하느님께로 향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얘기를 하면 그래도 봐 줄 수 있는데 남 얘기를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요. 남이야 상처를 받건 말건, 상대방을 위하는 척 하면서 뒤로는 온갖 것을 다 떠벌립니다. 그것이 사실이건, 거짓이건 진실성은 사라지고 자기 본능대로 있는 말 없는 말 다 해요.

 평상시에는 저는 말 주변이 없어서하고 꽁무니를 빼던 사람도 남 을 흉볼 때는 어찌나 그리 말을 잘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사람이 정말 주님을 영접하려면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 사자와 늑대, 표범이 사나운 입을 다물고 새끼염소나 송아지와 함께 지내듯 사나운 입을 다물고 절제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저 신부님께서 누구에게 무슨 얘기를 들으셨기에 저런 말씀을 하실까? 누굴 두고 하는 말씀일까? 하고 생각합니다. 누굴 두고 하는 얘기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지요. 자기영혼의 상태를 비추어 보고 고칠 것을 고치면 되는데 남에게 먼저 관심을 두고 있으니 그것이 문제입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먹고 싶은 대로 다 먹고, 쓰고 싶은 대로 다 써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폭음과 폭식을 하고는 탈이 나서 고생하는 사람도 있고요, 사촌이 땅을 사서 배아파하는 사람도 있고 시기와 질투로 마음고생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실 사촌이 땅을 사서 배가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더 열심히 노력해서 그보다 더 넓은 땅을 사면됩니다. 그런데 노력은 하지 않고 절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을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혹시라도 이런 마음이 있다면 오늘 그 본능적인 마음을 주님의 마음으로 변화시켜 주시기를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주님의 길을 마련하고 그분의 길을 곧게 한다는 것은 우리 삶의 자리에서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들은 회개한 증거를 행실로써 보여라.(사도 26,20)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니 나의 좋지 않은 습관, 삶의 태도를 한 가지라도 바꿀 수 있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복음 3장 10절에는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 진다.”고 적혀 있습니다. 도끼가 뿌리에 닿아있다는 것은 결국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은총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내일로 미룰 것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서 마음을 바꿔야 합니다. 작심삼일이 되더라도 지금 좋은 일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선을 이끄시는 하느님께서 좋은 열매를 맺어 주실 것입니다.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속에 태워버리실 것이다”(마태3,12). 하셨으니 여러분은 부디 알곡이 되어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시기 바랍니다.

 

 벌써 두 번째 대림초에 불이 당겨졌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만큼 밝아 졌기를 희망하고 준비된 마음 안에 아기 예수님을 낳아드리시기를 기도합니다.

콜로새서 말씀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생활을 함으로써 언제나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온갖 좋은 일을 행하여 열매를 맺으며 하느님을 더욱 잘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사랑합니다.


사제 -반영억라파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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