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수유동성당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0일 (토)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2018년 11월 2일 금요일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 셋째 미사
입당송
  로마 8,11 참조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하느님은 우리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우리의 죽을 몸도 다시 살려 주시리라.
본기도
 하느님,
   외아드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하늘 나라로 건너가게 하셨으니
   세상을 떠난 하느님의 종들도 이 세상의 죽음을 이기고
   창조주요 구원자이신 하느님을 뵈오며 영원히 기뻐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티 없는 삶이 곧 원숙한 노년이다.>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4,7-15
  7 의인은 때 이르게 죽더라도 안식을 얻는다.
   8 영예로운 나이는 장수로 결정되지 않고 살아온 햇수로 셈해지지 않는다.
   9 사람에게는 예지가 곧 백발이고, 티 없는 삶이 곧 원숙한 노년이다.
   10 하느님 마음에 들어 그분께 사랑받던 그는
   죄인들과 살다가 자리가 옮겨졌다.
   11 악이 그의 이성을 변질시키거나
   거짓이 그의 영혼을 기만하지 못하도록 들어 올려진 것이다.
   12 악의 마력은 좋은 것들을 무색하게 만들고
   솟구치는 욕망은 순수한 정신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13 짧은 생애 동안 완성에 다다른 그는 오랜 세월을 채운 셈이다.
   14 주님께서는 그 영혼이 마음에 들어
   그를 악의 한가운데에서 서둘러 데려가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고
   그 일을 마음에 두지도 않았다.
   15 곧 은총과 자비가 주님께 선택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 당신의 거룩한 이들을 돌보신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23(22),1-3.4.5.6(◎ 1 또는 4ㄱㄴㄷ)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또는
   ◎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 돋우어 주시고, 당신 이름 위하여, 나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시네. ◎
   ○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 저에게 위안이 되나이다. ◎
   ○ 원수들 보는 앞에서, 제게 상을 차려 주시고,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 제 술잔 넘치도록 가득하옵니다. ◎
   ○ 제 한평생 모든 날에 은총과 자애만이 따르리니, 저는 오래오래 주님 집에 사오리다. ◎
제2독서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6,3-9
  형제 여러분,
   3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모두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4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5 사실 우리가 그분처럼 죽어 그분과 결합되었다면,
   부활 때에도 분명히 그리될 것입니다.
   6 우리는 압니다.
   우리의 옛 인간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죄의 지배를 받는 몸이 소멸하여,
   우리가 더 이상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7 죽은 사람은 죄에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8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9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시어
   다시는 돌아가시지 않으리라는 것을 압니다.
   죽음은 더 이상 그분 위에 군림하지 못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필리 3,20 참조
  ◎ 알렐루야.
   ○ 우리는 하늘의 시민, 하늘에서 구세주로 오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네.
   ◎ 알렐루야.
복음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5,1-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2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4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5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6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7 그러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을 챙기는데,
   8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나누어 다오.’ 하고 청하였다.
   9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11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지만,
   12 그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13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바치는 이 제물을 인자로이 받으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고이 잠든 주님의 종들이
   이 특별한 제사로 죽음의 사슬에서 풀려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위령 감사송 1 :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부활의 희망>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 복된 부활의 희망을 주셨기에
   저희는 죽어야 할 운명을 슬퍼하면서도
   다가오는 영생의 약속으로 위로를 받나이다.
   주님,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
   세상에서 깃들이던 이 집이 허물어지면
   하늘에 영원한 거처가 마련되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필리 3,20-21 참조
  우리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네. 그분은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바꾸어 주시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바친 이 제사를 받으시고
   세상을 떠난 주님의 종들에게 풍성한 자비를 베푸시어
   일찍이 세례의 은총을 받은 그들이
   영원한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로마 미사 경본』: 943-946면 / 『미사 독서』3: 460-470면 )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은 죽은 모든 이, 특히 연옥 영혼들이 하루빨리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날이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오늘 세 대의 위령 미사를 봉헌해 왔다. 이러한 특전은 15세기 스페인의 도미니코 수도회에서 시작되었다. 교회는 ‘모든 성인 대축일’인 11월 1일부터 8일까지 정성껏 묘지를 방문하여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말씀의 초대
 지혜서의 저자는, 예지가 곧 백발이고 티 없는 삶이 곧 원숙한 노년이라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믿는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유하신다(복음).
오늘의 묵상
 열 처녀의 비유는 우리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할지를 일깨워 주는 복음입니다. 우리가 맞이할 신랑은 이 세상을 마치고 만나 뵙게 될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그 시간과 그 때를 알지 못하기에 우리는 늘 깨어 죽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신랑 때문에 기름을 준비하지 못해 당황하는 어리석은 처녀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은 의학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장수의 세상에 들어섰습니다. 그렇다고 오래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지혜서는 “의인은 때 이르게 죽더라도 안식을 얻는다.”고 말하고, “영예로운 나이는 장수로 결정되지 않고 살아온 햇수로 셈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래 살면서 추하게 늙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악에 타협하고 살아 이성이 변질되면 “좋은 것들을 무색하게 만들고, 솟구치는 욕망은 순수한 정신을 훼손”하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행복하려면 먹고 살아야 할 물질적인 필요는 채워져야 합니다. 그러나 가난하다고 불행한 것은 아니며, 병들고 외로운 사람이 실패한 인생이 되라는 법은 없습니다. 심리학자들은 행복이란 내가 기대하지 않았던 일상의 작은 기쁨이 누적되어 찾아오는 만족감이라고 말합니다. 한마디의 위로, 작은 물질적 나눔, 환한 미소와 따뜻한 손길, 희망의 복음이 세상 너머의 희망의 표지가 됩니다.
   세례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과 함께 죽고 부활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죽음은 인생의 마지막 말이 될 수 없습니다. 시편 저자의 노래처럼, 주님께서 나의 목자이시기에, 세상살이가 각박해도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이제 그 행복을 찾아 나갑시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