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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19일 (금)부활 제3주간 금요일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2018년 11월 5일 월요일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입당송
  시편 38(37),22-23 참조
  주님, 저를 버리지 마소서. 저의 하느님, 저를 멀리하지 마소서. 주님, 제 구원의 힘이시여, 어서 저를 도우소서.
본기도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은총을 베푸시어 저희가 하느님을 합당히 섬기고
   영원한 행복을 바라보며 거침없이 달려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같은 생각을 이루어, 나의 기쁨을 완전하게 해 주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입니다. 2,1-4
  형제 여러분,
   1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격려를 받고
   사랑에 찬 위로를 받으며
   성령 안에서 친교를 나누고 애정과 동정을 나눈다면,
   2 뜻을 같이하고 같은 사랑을 지니고
   같은 마음 같은 생각을 이루어,
   나의 기쁨을 완전하게 해 주십시오.
   3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4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31(130),1.2.3
  ◎ 주님, 제 영혼을 당신의 평화로 지켜 주소서.
   ○ 주님, 제 마음은 오만하지 않나이다. 제 눈은 높지도 않사옵니다. 감히 거창한 것을 따르지도, 분에 넘치는 것을 찾지도 않나이다. ◎
   ○ 오히려 저는 제 영혼을, 다독이고 달랬나이다. 제 영혼은 마치 젖 뗀 아기, 어미 품에 안긴 아기 같사옵니다. ◎
   ○ 이스라엘아, 주님을 고대하여라, 이제부터 영원까지. ◎
복음 환호송
 요한 8,31-32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되어 진리를 깨달으리라.
   ◎ 알렐루야.
복음
 <네 친구를 부르지 말고,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을 초대하여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2-14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을 초대한 바리사이들의 한 지도자에게 12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13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14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바치는 이 제물을 거룩한 제사로 받아들이시어
   저희에게 주님의 자비를 가득히 베풀어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6(15),11 참조
  주님, 저에게 생명의 길 가르치시니, 당신 얼굴 뵈오며 기쁨에 넘치리이다.
  
  <또는>
  
  요한 6,57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살아 계신 아버지가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천상의 성사로 저희를 새롭게 하셨으니
   저희에게 주님의 힘찬 능력을 드러내시어
   주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고, 자기 것만 아니라 남의 것도 돌보아 주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잔치를 베풀 때에는 보답할 수 없는 가난한 이들을 초대하라고 하신다(복음).
오늘의 묵상
  ‘유유상종’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게 잘해 주는 사람에게 끌리고, 나하고 관심과 취미가 맞는 사람과 어울리기 마련입니다. 남녀가 서로의 차이를 매력으로 느껴 평생의 동지가 된 부부도 있겠지만, 그 서로의 다름이 쉽게 상처가 되고 다툼이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 시대나 우리 시대나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식사를 하며 친교를 다지는 일은, 나를 중심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방식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잘해 주는 이유는 그도 나에게 잘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는 것이고, 밥을 한 번 사고, 선물을 줄 수 있는 여유도 그와 관계를 이어 가면서 내가 얻게 될 보답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꼭 그것이 물질적인 보상이 아니더라도 정서적인 위로나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인간관계는 쉽게 끊어집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우리의 관계의 정석을 깨십니다. 잔치를 베풀 때에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고 하십니다.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진정한 이웃 사랑은 조건 없는 나눔과 베풂이고, 그 사랑의 행위 자체로 기쁨을 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이들은 결코 나의 호의를 같은 방식으로 갚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물질적 보답은 못해도 나를 위하여 기도해 주고, 사람들 앞에서 나를 칭찬하고,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진정한 사랑의 소통을 이룹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기심이나 허영심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낮추고 남을 돌볼 것을 바라십니다. 오늘날 혼례와 장례 때 부조를 하는 일이 마음의 진정한 표현이 아닌, 채무 형태로 바뀌는 세태를 생각하면, 내 주변에서 정말 힘든 이웃과 애정과 동정을 나누는 일이 그리워집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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