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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5년 11월 1일 (토)모든 성인 대축일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가톨릭 성인/축일
    성 아우도마로 (Audomar)
    같은이름 아우도마루스 , 오도마로 , 오도마루스 , 오메르 , 오도마르
    축일 11월 1일
    신분 주교
    활동지역 테루안(Therouanne)
    활동연도 +670년경

       성 오메르(Omer)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성 아우도마루스(Audomarus, 또는 아우도마로)는 6세기 말 또는 7세기 초에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Normandie) 지방의 쿠탕스(Coutance) 교외에서 태어났다. 그는 10대의 나이에 어머니를 여윈 뒤 아버지와 함께 뤽세이유(Luxeuil) 수도원에 들어가 베네딕토회 수도승이 되었다. 그는 성 골룸바노(Columbanus, 11월 23일)가 설립한 뤽세이유 수도원의 제2대 수도원장인 성 에우스타시오(Eustasius, 4월 2일)의 제자로서 20여 년 동안 수도 생활에 정진하였다. 638년경 프랑크 왕국의 다고베르 1세(Dagobert I)는 갈리아 북부 파드칼레(Pas-de-Calais)의 저지대 습지에 살던 모리니족(Morini)에게 복음을 전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이 지역은 이미 복음이 전해져 테루안과 불로뉴(Boulogne)를 포함해 여러 교구가 설립되었으나 5세기에 야만족의 침략으로 무너지면서 다시 이교도 지역처럼 변했다. 이때 성 아우도마로가 적임자로 추천받았는데, 처음에는 수도원을 떠나기를 꺼렸으나 받아들이고 테루안의 주교로 축성되었다.

       당시 테루안 교구는 오늘날 프랑스의 파드칼레와 벨기에의 플랑드르(Flandre) 지역을 포함하고 있었다. 성 아우도마로는 이교에 빠진 사람들을 다시금 신앙의 길로 인도하고자 열정적으로 활동하여 많은 사람이 개종하고 세례를 받았다. 그는 교구 내의 이완된 신앙과 윤리를 바로 잡고자 노력하는 한편 구호사업을 대대적으로 전개하여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지속적인 선교 사업을 위해 뤽세이유 수도원에 선교사 파견을 요청했고, 그 응답으로 시티우(Sithiu)의 성 베르티노(Bertinus, 9월 5일)와 나중에 누아용(Noyon)의 주교가 된 성 뭄몰리노(Mummolinus, 10월 16일)와 성 베르트란드(Bertrand, 1월 24일)가 와서 수도원을 건립하고 선교 활동을 펼쳤다. 성 아우도마로는 생모믈랭(Saint-Momelin) 마을에 세운 첫 번째 수도원이 늘어나는 수도승을 받는 데 한계에 이르자 부유한 한 개종자가 기증한 아르투아(Artois) 지방 아강(Aa R.) 기슭의 시티우의 땅에 새로운 수도원을 건설하도록 했다. 이 수도원은 나중에 성 베르티노의 이름을 따서 생베르탱(Saint-Bertan) 수도원으로 명명되었고, 수도원을 중심으로 성장한 시티우 마을은 오늘날 성 아우도마로 주교의 이름을 따서 생토메르(Saint-Omer)라는 도시로 발전하였다.

       성 아우도마로 주교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다만 그는 663년경부터는 완전히 시력을 잃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사목적 열정을 떨어뜨리지는 않았다. 그는 670년경 선종하여 수도원에 묻혔고, 그의 무덤을 중심으로 그에 대한 공경이 퍼져나갔다. 옛 “로마 순교록”은 9월 9일 목록에서 테루안 지역에 성 오메르 주교가 있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성 아우도마로 주교가 선종한 날로 알려진 11월 1일로 축일을 옮겨, 오늘날 프랑스에 속한 테루안 지역에 뤽세이유 수도원의 원장이었던 성 에우스타시오의 제자이자 테루안의 주교로 임명된 성 아우도마로가 그 지역의 그리스도교 신앙을 새롭게 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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