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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1월 29일 (목)연중 제3주간 목요일등불은 등경 위에 놓는다.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을 것이다.
가톨릭 성인/축일
    성 아프라테스 (Aphraates)
    같은이름 아프라떼스 , 아프라아떼스 , 아프라아테스 , 아프라하트 , 아프라핫
    축일 1월 29일
    신분 은수자
    활동지역 시리아(Syria)
    활동연도 +378년경

       성 아프라테스는 3세기 말 오늘날 시리아에 속한 페르시아 국경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는 페르시아 가문의 이교도 부모에게 태어나 교육을 받고 성장하였다. 그리고 동방박사의 발자취를 따라 팔레스티나의 베들레헴으로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그 후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도시인 에데사(Edessa, 오늘날 튀르키예 남동부의 샨리우르파[Sanlıurfa])로 가서 은수자로서 철저한 고독과 금욕을 실천하였다. 그는 시리아 그리스도교의 공동 수도원 제도의 초기 형태인 ‘언약의 자녀들/계약의 회원들’(Members of the Covenant) 중 한 명으로 철저한 금욕과 독신을 지킨 것으로 보인다. 그 후에 그는 다시 안티오키아(Antiochia, 오늘날 튀르키예 남부의 안타키아[Antakya])로 가서 수도원에서 멀지 않은 도시 외곽에 작은 은둔소를 짓고 극도의 금욕 생활을 실천했다. 그의 높은 성덕을 알고 수많은 사람과 제자들이 조언을 구하러 찾아왔고, 그가 많은 기적을 행했다고 한다.

       그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아리우스주의(Arianismus)에 빠져 정통 신앙을 부정하고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발렌스 황제(364~378년 재위)에 의해 안티오키아의 주교인 성 멜레시오(Meletius, 2월 12일)가 추방되었을 때 은둔소에서 나와 아리우스파와 맞서는 이들을 돕고 설교와 저술을 통해 가톨릭 신앙을 옹호하였다. 그는 발렌스 황제와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 황제가 “은수자가 은둔소를 떠나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비유를 들어 대답하였다. “집에 불이 났고 딸이 의자에 앉아 있는데 어떻게 가만히 앉아서 불타도록 내버려 두라고 권하시겠습니까? 비난받아야 할 사람은 불을 끄러 온 내가 아니라 내가 끄려고 애쓰는 불길에 기름을 붓는 사람들입니다.” 황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발렌스 황제가 378년에 사망한 후 교회가 다시 평화롭게 지내게 되자 성 아프라테스는 자신은 은둔소로 돌아가 살다가 378년경 선종하였다.

       성 아프라테스의 삶에 대한 위와 같은 내용은 시리아 북부 키루스(Cyrrhus)의 주교이자 역사가인 테오도레트(Theodoret)가 자신의 저서인 “필로테우스”(Philotheus)와 “교회사”(Historia ecclesiastica)에 기록함으로써 전해졌다. 옛 “로마 순교록”은 4월 7일 목록에서 발렌스 황제 시대에 시리아에 성 아프라테스가 있었고, 그가 기적의 힘으로 아리우스파에 맞서 가톨릭 신앙을 수호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동방 정교회와 같은 1월 29일로 축일을 옮겨 오늘날 튀르키예에 속한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근처에 성 아프라테스가 있었는데, 그는 페르시아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고 동방박사의 발자취를 따라 베들레헴에 와서 개종한 후 에데사에서 은수자로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안티오키아에서 설교와 저술을 통해 아리우스파로부터 가톨릭 신앙을 옹호했다고 기록하였다.

       어떤 학자들은 성 아프라테스가 메소포타미아 모술(Mosul, 오늘날 이라크 북부의 도시) 근교에 있는 마르 마타이(Mar Mattai) 수도원의 주교였으며, 336년과 345년 사이에 그리스도교 교리와 실천에 관한 주제로 23편의 글을 쓴 ‘페르시아의 현자’로 불리는 아프라테스와 동일 인물로 보고 있다. 이 글들은 시리아 그리스도교 문학의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23개 주제를 ‘Demonstrations’라는 단어로 설명을 시작하기에 총칭하여 “논증들/시범적 설명들” 또는 “강론들”(homilies)로 부르고 있다. 이 주제 중 11~22편은 페르시아에서 그리스도교에 대한 샤푸르 2세(Shapur II, 309~379년 재위) 왕의 박해가 절정에 달한 345년경에 작성되었다. 그래서 종말론적 주제와 함께 박해를 견디어낸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삶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성 아프라테스는 성 아프라하트(Aphrahat)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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