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성인/축일
-
- 성 야고보 인테르치소 (James Intercisus)
같은이름 야고버 , 야고부스 , 야코보 , 야코부스 , 자크 , 제임스 , 인테르치수스 , 인테르키소 , 인테르키수스 축일 11월 27일 신분 순교자 활동지역 페르시아(Persia) 활동연도 +420년경
성 야코부스 인테르키수스(Jacobus Intercisus, 또는 야고보 인테르치소 또는 야고보)는 4세기에 오늘날 이란 서부 후제스탄주(Khuzestan州)에 있는 베트 라파트(Beth Lapat, 페르시아의 군데샤푸르[Gundeshapur]로 수사[Susa]와 슈슈타르[Shushtar] 사이에 샤푸르 1세가 건설한 도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저명한 시리아계 그리스도인 귀족 가문 출신으로 타고난 혈통과 뛰어난 자질로 인해 페르시아 제국 야즈데게르드 1세(Yazdegerd I, 399~420년 재위) 왕의 궁정에서 중요한 지위에 올랐다. 당시 페르시아의 그리스도교는 샤푸르 2세(Shapur II, 309~379년 재위) 왕의 죽음으로 잔혹하고 긴 대박해가 끝나고 야즈데게르드 1세 왕의 치세까지 비교적 평화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마르티르폴리스(Martyropolis)의 성 마루타스(Maruthas, 2월 16일) 주교는 야즈데게르드 1세 왕을 설득해 박해로 인해 무너진 하느님의 교회를 재건하고 다시 조직하는데 헌신하였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했다. 420년에 수사(Susa, 오늘날 이란 서부 후제스탄주의 슈시[Shush]에 있었던 고대 도시)의 주교인 성 아브다스(Abdas, 5월 16일)가 선교 열정에 불타올라 아르골(Argol)에 있는 페르시아의 성소인 피라에움(Pyraeum, 불의 사원)을 불태워버렸다. 이에 분노한 야즈데게르드 1세는 성 아브다스 주교가 사원을 재건하지 않으면 모든 그리스도교 성당을 파괴하겠다고 경고했다. 성 아브다스는 우상을 숭배하는 사원을 재건하는데 한 푼도 낼 수 없다며 제안을 거부하고 동료들과 함께 순교를 선택했다. 이를 계기로 그리스도교에 대한 광범위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이때 성 야고보는 박해를 모면하기 위해 신앙을 포기하였다. 420년 1월 21일 야즈데게르드 1세가 페르시아 귀족들에 의해 암살당한 후 그의 아들인 바흐람 5세(Bahram V, 420~438년 재위)가 왕위를 계승한 후에도 박해는 계속되었다.
야즈데게르드 1세가 사망한 후 성 야고보의 어머니와 아내가 그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 그 편지에서 세상의 왕이 누리는 권력과 장차 썩어 없어질 재물을 위해 하느님을 버렸다는 말을 들었다며, 지금 그 왕이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죽어 먼지가 되었는데, 끝까지 하느님을 배신한다면 하느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성 야고보는 편지를 읽고 깊이 감동하며 부끄러움에 지난 일들을 후회하였다. 그리고 바흐람 5세의 궁정에서 누리던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스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 그가 다시 그리스도교로 돌아섰음이 밝혀져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 그는 심문과 고문을 받으면서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왕의 호의를 무시한 배은망덕한 사람으로 낙인찍혀 모든 재산이 몰수되고 가장 잔인한 형벌인 ‘인테르치소’를 받는 사형이 선고되었다. 이는 손가락과 발가락을 차례로 자른 다음 발, 손, 팔, 다리를 절단한 후 참수로 마감하는 형벌이었다. 그로 인해 성 야고보는 온몸이 절단되었다는 뜻에서 성 야고보 인테르치소(Jacobus Intercisus, James the Mutilated)로 불리게 되었다.
성 야고보가 순교한 후 왕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자의 유물을 공경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의 유해를 불태우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기회를 노려 조각난 유해를 확보한 후 관에 넣고 40일 동안 걸어서 예루살렘의 이베리아 수도원에 안치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모두 11월 27일 목록에서 페르시아에 성 야고보 인테르치소 순교자가 있었다고 전해주었다. 그는 비잔틴 제국의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Theodosius II, 408~450년 재위) 시대에 페르시아의 야즈데게르드 1세 왕에게 복종해 그리스도를 부인했지만, 엄하게 질책하는 어머니와 아내의 편지를 받고 회개하여 후임 왕인 바흐람 5세 앞에서 용감하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였다. 그러자 분노한 왕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며 그를 조각조각 자르고 참수하라고 명령하였다. 이 시기에 페르시아에서는 성 야고보 외에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순교하였다.♣
- 성 야고보 인테르치소 (James Intercisus)

본당소개
미사시간/찾아가는길
본당주보
굿뉴스 본당 갤러리
매일미사
가톨릭 주요기도문
성경
가톨릭성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