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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5년 9월 26일 (금)연중 제25주간 금요일예수님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
가톨릭 성인/축일
    성 닐로 (Nilus)
    같은이름 닐루스
    축일 9월 26일
    신분 수도원장
    활동지역 그로타페라타(Grottaferrata)
    활동연도 +1004/1005년

       성 닐루스(또는 닐로)는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Calabria) 지방 코센차(Cosenza)의 로사노(Rossano)에서 910년경에 태어나 니콜라(Nicola)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는 이탈리아에 정착한 유력한 비잔틴 가문의 아들로 좋은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당시 칼라브리아 지방에는 이슬람을 피해 그리스에서 넘어온 성 대 바실리오(Basilius Magnus, 1월 2일)의 수도 규칙을 따르는 많은 그리스계 수도원과 수도승들이 생활하고 있었다. 성 닐로는 서방과 동방의 두 문화가 만나는 지점에서 라틴어와 그리스어 모두 능통했기에 두 문화 사이의 가교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젊어서 고향에서 세무 관련 일을 맡아 보았고, 젊은 여인과 동거하며 딸을 하나 낳았다고 한다. 그 후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한 기록에 따르면, 940년에 전염병으로 아내와 딸을 모두 잃고 그 또한 중병에 걸렸다고 한다. 이런 커다란 슬픔을 경험한 후 나폴리(Napoli) 근처 팔마캄파니아(Palma Campania)에 있는 비잔틴 수도원에 들어가서 40년을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역사가들은 이러한 전승에 대해 대체로 동의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는 어려서부터 은수자나 수도승이 되고 싶어 했고, 940년경 살레르노(Salerno) 남쪽 산마우로라브루카(San Mauro La Bruca)에 있는 성 바실리오 수도원에 들어가 닐로라는 수도명을 받고 수도승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바실리카타(Basilicata) 지방 포텐차(Potenza) 근처 메르쿠리온(Mercurion) 산악지대로 들어가 은둔 생활을 시작했는데, 많은 사람이 그의 조언을 구하러 찾아왔다. 그런데 사라센인들이 칼라브리아를 침략하자 성 닐로는 수도승들을 데리고 나폴리 근처 팔마캄파니아로 가서 수도원을 세웠다. 사라센인들이 떠나고 다시 칼라브리아로 돌아온 그는 당시 방치되었던 한 수도원에 우선 정착했고, 955년에 무슬림에 의해 파괴되었던 코센차(Cosenza) 근처 산 데메트리오 코로네(San Demetrio Corone) 성당을 복원하고 그곳에 수도원을 세웠다. 뛰어난 성덕과 지혜로 유명했던 그는 새 수도원의 원장이 되면서 더욱 널리 알려졌고, 로사노(Rossano)의 대주교직을 제안받았으나 사양했다고 한다.

       978년에 다시금 사라센인들이 쳐들어왔을 때 성 닐로는 산 데메트리오 코로네 수도원의 수도승들과 함께 피신해야만 했다. 그는 수도승들과 함께 몬테카시노(Monte Cassino)와 인접한 곳으로 피신했고, 979년에 베네딕토회의 도움으로 발레루체(Valleluce)에 있는 산탄젤로(Sant’Angelo) 수도원을 받아 정착하였다. 1004년 임종을 앞둔 성 닐로는 로마 외곽 투스쿨룸(Tusculum) 남쪽의 수도원을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성모 마리아가 환시 중에 나타나 이곳이 그의 공동체가 영구히 정착할 곳임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그는 훗날 교황 베네딕토 8세(Benedictus VIII)가 될 인물로부터 오래된 건물을 선물 받아 그곳에 성 바실리오의 수도 규칙을 따르는 새로운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그로타페라타(Grottaferrata)의 산타 마리아(Santa Maria) 수도원의 시작이었다. 성 닐로는 수도원 건축이 시작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그로타페라타에 묻혔고, 그의 제자이자 제3대 수도원장인 성 바르톨로메오(Bartholomaeus, 11월 11일)가 수도원을 완공하였다. 하지만 그로타페라타 수도원은 성 닐로를 설립자이자 초대 수도원장으로 공경하고 있다.

       성 닐로는 이탈리아 남부에서 그리스 수도원 전통을 대표하는 뛰어난 인물로 그리스 수도승들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누르시아(Nursia)의 성 베네딕토(Benedictus, 7월 11일)와 안키라(Ancyra)의 성 닐로(11월 12일)를 위한 찬미가와 사도 성 바오로(Paulus, 6월 29일)에 대한 시를 지었다. 비잔틴 전례를 따르는 그로타페라타 수도원은 천 년 동안 성덕과 학문의 전당으로 자리 잡았다. 필사본 제작에 힘썼던 이 수도원은 오늘날에도 많은 사본들을 과학적으로 보존하고 있다. 옛 “로마 순교록”은 9월 26일 목록에서 프라스카티(Frascati) 지역에 그로타페라타 수도원의 설립자이자 뛰어난 성덕을 지닌 ‘복자’ 닐로 수도원장이 있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로마 근처 투스쿨룸의 전원 지대에 그리스 출신으로 거룩한 삶을 추구하며 참회와 겸손, 순례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던 성 닐로 수도원장이 있었는데, 예언의 영과 교리에 대한 지혜로 유명했던 그가 동방 교부들의 가르침에 따라 그로타페라타라는 유명한 수도원을 설립했다고 했다. 그리고 90세의 나이에 성당에서 하느님께 자신의 영혼을 바쳤다고 기록하였다. 동방 정교회와 가톨릭교회에서 성인으로 공경받는 성 닐로는 로사노의 성 닐로로도 불리고, 안키라의 성 닐로와 구분하기 위해 성 소 닐로(Nilus minor/the Younger)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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