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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5년 10월 16일 (목)연중 제28주간 목요일아벨의 피부터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예언자들의 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가톨릭 성인/축일
    성 제라르도 마젤라 (Gerard Majella)
    같은이름 게라르도 , 게라르두스 , 제라드 , 제라르두스 , 제라르드 , 게르하르트 , 마이엘라
    축일 10월 16일
    신분 수사
    활동연도 1726-1755년

       성 게라르두스 마젤라(Gerardus Majella, 또는 제라르도 마젤라)는 1726년 4월 6일 이탈리아 남부 포텐차(Potenza) 인근 무로 루카노(Muro Lucano)에서 가난한 재단사의 다섯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2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성 제라르도 마젤라는 어려운 가정 형편을 돕기 위해 양복공의 도제로 들어가 재단 일을 배웠다. 그는 작업장의 감독으로부터 모욕과 매질을 당하면서도 화를 내지 않고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어려서부터 신심 깊었던 그는 사제직에 대한 열망을 이루고자 4년간의 견습 생활 중에 카푸친 작은 형제회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어려서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기에 입회가 허락되지 않았다. 그 후 그는 그 지역 라체도니아(Lacedonia) 주교관의 일꾼으로 들어가 일했다. 1745년에 주교가 선종한 후 그는 어머니와 형제들과 함께 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받아 양복점을 열었다. 그는 재단사로 일하면서 얻은 수입으로 가족과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고, 연옥 영혼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고, 매일 밤 몇 시간씩 기도하며 지냈다.

       그러던 중 성 제라르도 마젤라는 1749년에 비로소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1732년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Alfonsus Maria de Liguori, 8월 1일)가 설립한 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Congregatio Sanctissimi Redemptoris, C.Ss.R.)에서 파견된 한 사제가 무로 루카노에서 대중을 상대로 선교 활동을 펼치자 그에게 가서 자신을 평수사로 받아달라고 청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건강이 좋지 않아 거절당했고, 어머니 또한 집에 머물기를 바랐다. 하지만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다음 날 아침 침실에 “어머니, 저를 용서해 주세요. 저는 성인이 될 겁니다.”라는 쪽지를 남기고 침대보를 밧줄 삼아 창문 밖으로 빠져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거의 20km 정도를 뛰어가 앞서간 선교사 일행을 만나 결국 수사로 입회하는 것을 허락받았다. 그의 열정과 겸손함을 눈여겨본 성 알폰소는 그의 수련 기간을 줄여 주어 1752년에 종신서원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 후 그는 마테르도미니(Materdomini)에 새로 설립된 수도원에서 문지기와 성구 담당자 소임을 맡아 성실히 봉사했다.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하면서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을 돌보는 데도 힘썼다. 그는 몇 가지 초자연적 은사를 받았는데, 탈혼과 환시, 예언과 분별의 은사, 동시에 두 장소에 나타나거나 공중에 몸이 뜨는 능력을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평수사임에도 불구하고 몇몇 수녀원의 영적 지도자로 임명되었고, 죄인들을 회개시키는 일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성 제라르도 마젤라의 성덕과 애덕이 널리 알려지면서 곤란한 일을 겪기도 했다. 1754년 그는 선교 여행 중에 자주 방문했던 가정의 네리아 카기아노(Neria Caggiano)라는 임신한 10대 소녀와 불미스러운 관계를 맺었다는 혐의로 고발당했다. 그는 한마디의 변명도 없이 그 모든 굴욕을 달게 받으며, 외부와의 접촉이 금지된 채 엄격한 고행을 해야 했다. 얼마 후 그 소녀는 양심을 가책을 느껴 성 알폰소에게 성 제라르도 마젤라에 대한 모든 비난이 거짓이었음을 고백하였다. 그가 모든 비난을 인내심을 갖고 견뎌내자 성 알폰소는 “제라르도 형제는 성인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고행을 위해 나폴리(Napoli)로 보내졌던 성 제라르도 마젤라는 그를 만나려는 방문객들이 너무 많이 몰려오자 마테르도미니 근처 카포셀레(Caposele)로 보내졌다. 그는 마지막 수도 생활을 카포셀레에 있는 구속주회 집에서 문지기로 일하며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몇 달은 카포셀레에 새 건물을 짓기 위한 기금을 모금하는 데 힘썼고, 1755년 10월 16일 불과 29살의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숨을 거두었다.

       마테르도미니에 있는 성 제라르도 마젤라의 무덤은 그 후 수많은 이들이 찾는 중요한 순례지가 되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성인 중 한 명인데, 특히 임산부와 임신을 원하는 여성과 출산하는 여성들 그리고 조산사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래서 그는 ‘행복한 출산의 성인’ 또는 ‘어머니들의 천사’로 불린다. 이는 다음과 같은 일화에서 유래하였다. 어느 날 성 제라르도 마젤라가 한 가정을 방문하고 가면서 손수건을 떨어뜨렸다. 그 가정의 딸 중 한 명이 달려와 손수건을 돌려주었지만, 그는 “그냥 가지고 있게나. 언젠가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거야.”라고 말했다. 몇 년이 지나 그 소녀는 결혼하고 출산하던 중 치명적인 위험에 처했는데, 그 손수건을 가져다 달라고 하자 기적적으로 모든 고통이 사라지고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출산하는 어머니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게 되었다. 실제로 많은 병원이 그의 이름을 딴 산부인과를 운영하고 있다.

       성 제라르도 마젤라는 1893년 1월 29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04년 12월 11일 교황 성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옛 “로마 순교록”은 10월 16일 목록에서 무로 루카노 출신으로 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평수사였던 성 제라르도 마젤라가 기적에 대한 명성으로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성인 반열에 올랐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캄파니아(Campania) 지방 마테르도미니에 하느님에 대한 강렬한 사랑에 사로잡혀 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의 수사가 된 성 제라르도 마젤라가 있었는데, 그는 하느님과 영혼에 대한 열정에 휩싸여 아직 젊은 나이에 경건하게 잠들었다고 기록하였다. 성 제라르도 마젤라는 이탈리아에서 성 제라르도 마이엘라(Gerardo Maiella)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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