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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5년 7월 6일 (일)연중 제14주일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를 것이다.
가톨릭 성인/축일
    복자 토마스 알필드 (Thomas Alfield)
    같은이름 도마 , 오필드 , 토머스 , 앨필드
    축일 7월 6일
    신분 신부 , 순교자
    활동지역 영국(UK)
    활동연도 +1585년

       토마스 오필드(Thomas Aufield)로도 불리는 복자 토마스 알필드는 1552년 영국 잉글랜드 서부 글로스터셔(Gloucestershire)에서 태어나 버크셔(Berkshire)의 이튼 칼리지(Eton College)와 케임브리지(Cambridge)의 킹스 칼리지(King’s College)에서 교육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프로테스탄트 신자로 성장한 그는 가톨릭 신앙으로 개종하고 나서 사제가 되기 위해 1576년 9월 프랑스 북부 두에(Douai)의 영국 대학으로 갔다. 그러나 그의 개종을 의심스러워해 그해 11월 잉글랜드로 되돌아왔다. 1580년 그는 다시 랭스(Reims)의 영국 대학으로 가서 수학한 후 1581년 3월 4일 프랑스 북동부 샬롱쉬르마른(Chalons-sur-Marne)에서 사제품을 받고 바로 영국 선교 길에 올랐다.

       그는 주로 잉글랜드 북부에서 활동한 것 같은데, 1582년 5월 2일 체포되어 런던탑에 갇혔기에 많은 활동을 하지는 못했다. 감옥에서 고문을 이기지 못한 그는 배교하고 프로테스탄트로 돌아섰고,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 글로스터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는 이듬해 4월 랭스로 가서 자신의 배신에 대해 진심으로 뉘우치고 새로운 결의를 다지며 가톨릭교회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온 그는 신자들과 함께 비밀리에 가톨릭 서적을 출판하고 배포하는 일에 전념했다. 그러던 중 1584년 3월 25일 이전에 체포되어 다시금 런던탑에 갇히게 되었다. 그는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여왕의 통치 중에 여왕에게 반대하는 어떠한 서적의 출판도 금지한 법을 어긴 혐의를 받고 뉴게이트(Newgate) 감옥으로 이송되었고, 고문과 재판을 거쳐 반역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1585년 7월 6일에 런던의 타이번(Tyburn)으로 끌려가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복자 토마스 알필드 신부는 1929년 12월 1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순교한 날인 7월 6일에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그리고 200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후에는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성된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와 종교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이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5월 4일 전례 안에서 기념하게 되면서 복자 토마스 알필드 또한 그날 함께 축일을 기념하게 되었다. 이날은 종교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7월 6일 목록에서 처음에 고문을 받으며 가톨릭 신앙을 부인하고 추방되었던 복자 토마스 알필드 신부가 회개하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치하에서 가톨릭 신자들을 옹호하는 서적을 배포한 죄로 고통을 겪고 런던의 타이번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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