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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5년 7월 1일 (화)연중 제13주간 화요일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가톨릭 성인/축일
    성 도미시아노 (Domitian)
    같은이름 도미시아누스 , 도미시안 , 도미씨아노 , 도미씨아누스 , 도미티앙 , 도미티아노 , 도미티아누스 , 도미티안
    축일 7월 1일
    신분 은수자 , 수도원장
    활동지역 베브롱(Bebron)
    활동연도 +5세기

       성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또는 도미시아노)는 4세기 중엽 이탈리아의 로마(Roma)에서 태어났다. 귀족 출신의 그리스도인이었던 그의 부모는 아리우스파(Arianismus) 사이에서 가톨릭 신앙을 지키며 큰 고통을 겪었다. 아리우스파에 의해 아버지가 살해당하고 어머니마저 슬픔에 잠겨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고아가 되었다. 성 도미시아노는 미래에 대해 얼마간 고민하다가 영적인 삶을 살기로 하고 자신의 모든 소유물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노예를 해방한 후 수도자가 되었다. 그런데 로마 제국의 전통 신앙을 부활하려는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361~363년 재위)가 모든 수도자를 군대에 강제 징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로마를 떠나서 바다 건너 갈리아 루그두넨시스(Gallia Lugdunensis, 프랑스 남부 지방에 있었던 로마 제국의 속주)의 마르세유(Marseille)로 갔다. 그는 레랭(Lerins) 수도원에 잠시 머물다가 성 힐라리오(Hilarius, 5월 5일)와 함께 아를(Arles)로 갔고, 그 후에 다시 광야로 나가 베브롱(오늘날 리옹[Lyon]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7세기의 순교자 이름을 따서 생랑베르앙뷔제[Saint-Rambert-en-Bugey]로 변경되었다)이란 곳에서 은수자로 정착해 기도와 금욕 생활에 전념하였다.

       성 도미시아노가 은수자로 살던 지방에 아리우스주의를 신봉하는 부유한 저명인사가 있었는데, 그에 의해 가톨릭 신앙으로 돌아온 후 상당한 재산을 기증하였다. 성 도미시아노는 점점 늘어나는 제자들을 위해 기증받은 땅에 수도원을 세웠고, 그가 설립한 베브롱 수도원은 후대에 생랑베르앙뷔제 수도원으로 이름이 바뀐 뒤에도 오랫동안 수도 생활이 이어졌으나 프랑스 혁명 이후 폐쇄되었다. 성 도미시아노는 440년경 고령으로 선종하여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모두 7월 1일 목록에서 리옹 교구의 베브롱에서 그 지역 최초로 은수 생활을 시작한 성 도미시아노에 대해 전해주었다. 그는 덕행과 기적으로 많은 사람을 모아 하느님을 섬기도록 했고, 수도원장으로서 하느님의 일에 전념하다가 노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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