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성인/축일
-
- 성 야고보 큐세이 토모나가(성모 마리아의) (James Kyushei Tomonaga of St. Mary)
같은이름 기세이 , 또모나가 , 야고버 , 야고부스 , 야코보 , 야코부스 , 자크 , 제임스 , 쿠세이 축일 9월 28일 신분 신부 , 순교자 활동지역 나가사키(Nagasaki) 활동연도 1582-1633년
‘성 라우렌시오 루이스(Laurentius Ruiz)와 성 도미니코 이바녜스 데 에르키시아(Dominicus Ibanez de Erquicia)와 성모 마리아의 성 야코부스 큐세이 토모나가(Jacobus Kyushei Tomonaga de Santa Maria, 또는 성모 마리아의 성 야고보 큐세이 토모나가)와 13명의 동료 순교자들’은 일본 나가사키(長崎) 지방에 교회를 설립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당국에 의해 체포되어 1633년, 1634년, 1637년에 모두 순교하였다. 그들은 체포된 이후 잔혹한 고문을 당했고, 그 시신마저도 불태워진 후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순교자의 유해를 공경하지 못하도록 나가사키 바다에 뿌려졌다. 이들 16명의 순교자를 출신 국가별로 보면 일본인 9명, 에스파냐인 4명, 프랑스인 1명, 이탈리아인 1명, 필리핀인 1명이다. 신분으로 보면 9명은 도미니코회 사제, 2명은 협력자(수련자) 형제, 2명은 제3회원, 그리고 3명은 평신도였다. 도미니코회 3회원이었던 오무라(Omura)의 성녀 마리나(Marina)와 성 안토니오 곤살레스(Antonius Gonzalez) 신부를 제외한 모든 순교자는 나가사키 해안 근처에 있는 니시자카(西坂, Nishizaka) 언덕에서 순교하였다. 이곳은 1697년에 일본 최초의 순교자들인 성 바오로 미키(Paulus MIki, 2월 6일)와 동료 순교자 25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했던 곳이며, 또한 1617년에서 1632년 사이에 순교한 205위의 복자 중 다수가 순교했던 곳이었다.
에스파냐 출신의 도미니코회 사제인 성 도미니코 이바녜스 데 에르키시아가 1633년 8월 14일 처음 순교한 이후 필리핀 마닐라(Manila) 출신 평신도인 성 라우렌시오 루이스가 1637년 9월 29일 순교할 때까지 이들의 순교는 계속되었다. 총 16명의 순교자 중 13명이 도미니코회 사제이거나 수련자 또는 3회원이고 나머지 3명도 그들과 연관되어 있었다. 이들 순교자 대부분은 자기 나라에서 필리핀을 거쳐 일본으로 들어왔다. 성모 마리아의 성 야고보 큐세이 토모나가는 1582년 일본 나가사키의 오무라(Omura)에 있는 쿠이데츠(Kuidetsu)에서 귀족 출신 그리스도인 부모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젊은 시절에 나가사키의 예수회 대학에서 수학한 후 교리교사로 활동하다가 1614년에 일본에서 추방되었다. 그는 필리핀의 마닐라로 와서 작은 형제회의 3회원이 되어 활동하다가 도미니코회에 입회하여 1626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1627년에 포르투갈어로 ‘아름다운 섬’이란 뜻의 ‘포르모사’(Formosa)로 불린 대만(臺灣)으로 파견되었다. 그리고 1630년에 다시 마닐라로 돌아와 설교하다가 1632년 선교사로서 10명의 동료와 함께 고국인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는 박해로 고통받는 사람들 속에서 선교하면서 생명의 위협과 굶주림 등으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다. 1633년 7월에 성 야고보 큐세이 토모나가는 일본인으로 그의 동료이자 교리교사였던 성 미카엘 쿠로비오예(Michael Kurobioye)가 체포된 후 고문을 이기지 못해 그의 은신처를 밝힘으로써 체포되었다. 성 미카엘 쿠로비오예는 곧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신앙을 고백했다. 결국 성 야고보 큐세이 토모나가는 체포되어 사제로서 신앙을 전파했다는 죄목으로 모진 고문을 당하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1633년 8월 15일 성 야고보 큐세이 토모나가와 성 미카엘 쿠로비오예는 ‘아나츠루시’(Ana-tsurushi)라는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처형되었다. 이는 죄인을 밧줄로 묶어 거꾸로 매달고 관자놀이에 작은 구멍을 내 머리로 쏠린 피를 조금씩 빼내며 더러운 오물로 가득한 구덩이에 몸통을 집어넣는 잔혹한 고문이었다. 그들은 구덩이에서 이틀 동안 고통을 겪고 8월 17일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당시 성 야고보 큐세이 토모나가는 51살로 순교자들 가운데 가장 연장자였다. 두 순교자의 시신은 화장된 후 재는 바다에 버려졌다.
‘성 라우렌시오 루이스와 성 도미니코 이바녜스 데 에르키시아와 성모 마리아의 성 야고보 큐세이 토모나가와 13명의 동료 순교자들’은 1981년 2월 18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 10월 22일)에 의해 순교자 대부분과 인연이 있는 도시인 필리핀의 마닐라에서 복자품에 올랐다. 이는 역사상 처음으로 로마 밖에서 거행된 시복식이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 1987년 10월 18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8월 17일 목록에서 일본 나가사키에서 도미니코회(설교자회)의 사제인 성 야고보 큐세이 토모나가와 성 미카엘 쿠로비오예가 최고 통치자인 도쿠가와 이에미츠(德川家光) 쇼군이 통치하던 시대에 그리스도를 위해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기록하였다. 개정 “로마 순교록”은 ‘일본의 16위 순교자들’이 순교한 날에 그들의 행적을 기록해 기념하도록 하고 있는데, ‘성 라우렌시오 루이스와 15명의 동료 순교자들’로서 16위 순교자 모두를 함께 기념하는 날은 9월 28일로 정해졌다.♣
- 성 야고보 큐세이 토모나가(성모 마리아의) (James Kyushei Tomonaga of St. M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