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화)
(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성모성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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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5-03 ㅣ No.685

[레지오 영성] 성모성월에

 

 

얼마 전 신부님들과 교황청 경신성사성에서 나온 ‘대중 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도서: 원칙과 지침’ 145항에 나오는 ‘고통의 성모님’을 읽고 나누면서, 문득 내 가슴에 신선하게 다가오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고통 기념’은 교리적으로나 사목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소홀히 하지 않도록 권고하여야 한다. <하략>

 

– 성모님의 탄식(Planctus Mariae). <중략> 이러한 슬픔은 흔히 성모님께서 죄 없으시고 거룩하시며 선하신 당신 아드님의 죽음 때문만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의 잘못과 인류의 죄 때문에 탄식하신다.<하략>

 

– 비탄의 시간(Ora della Desolata). <중략> 이러한 신심 행위는, 라틴 아메리카 일부 지역에서 El Pesame라고 불리는데, 슬퍼하는 어머니 앞에서 감정을 표시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오히려 부활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구속적 사랑과 거기에 동참하신 성모님의 위대함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지만, 이번에 특별히 신선하게 다가온 이유는, ‘성모님의 탄식’이라는 항목에서 어머님께서 “죄 없으시고 거룩하시며 선하신 당신 아드님의 죽음 때문만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의 잘못과 인류의 죄 때문에 탄식하신다.”라는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님의 사체를 끌어안고 슬픔에 잠긴 피에타상을 바라보면서, 어머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죽음을 얼마나 안타까워하시고 괴로워하셨을까 하는 묵상을 해왔습니다. 아울러 ‘비탄의 시간’이라는 항목의 글귀에도 나오듯이 “수 세기에 걸쳐 자식을 잃은 슬픔을 맛보았던 모든 어머니의 모습을 본다.”라는 내용처럼, 자식을 먼저 보내 가슴에 묻은 어머니들의 마음들을 헤아려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성모님께서 비단 당신 아드님의 죽음만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의 잘못과 인류의 죄 때문에 탄식하신다는 글귀가 제 가슴을 울렸습니다. ‘정말 어머니는 예수님의 어머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어머님이시구나!’ 하는 마음이 새삼 끓어올랐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예수님은 정말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우리의 죗값으로 당신 자신을 십자가상에서 희생 제물로 바치신 분이 아니신가? 그러기에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 역시 당신 아드님의 죽음만을 슬퍼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아니 아들이 생명을 바치면서까지 구하신 우리의 잘못과 죄때문에 아파하시며 우리를 돌보시는구나 하는 깨달음이 새삼 메아리쳤습니다.

 

 

우리의 잘못과 죄때문에 아파하시며 우리를 돌보시는 성모님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며, 어머님께 청하는 우리의 모습을 어머니 마리아는 어떻게 바라보고 계실까? 어쩌면 인간적인 생각과 느낌만으로는 우리의 기도가 역겹고 내쳐버리고 싶으실지 모릅니다. 자식 예수님을 죽음에 이르게까지 한 우리가 계속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못하게 하고 탐욕과 시기에 가득 차서 거듭 이것저것 달라고 주님께 바라고만 있으니, 그 꼴을 어찌 받아들이실 수 있으실까? 어머님이 비단 예수님의 어머니이시기만 하다면, 그 어머니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기는커녕 아예 뒤돌아 앉으실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악을 씻으시고 구하려 하셨던 아들 예수님의 어머니이시기에, 또 살아생전에 우리를 어머님의 자녀로 맡기셨기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오늘 교회의 어머니로서 더 나아가 모든 인류의 어머니로서 우리 구원을 위해 계속 주 하느님께 기도하고 계심이 가슴이 저미도록 스며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비탄의 시간’ 항목에 나오는 다음 글귀에 머물 수 있게 됩니다. “슬퍼하는 어머니 앞에서 감정을 표시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오히려 부활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구속적 사랑과 거기에 동참하신 성모님의 위대함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아버지 하느님의 인류 구원의 의지를 아시기에, 아들 예수님의 구원사업에 동참하고 계시기에, 어머니 마리아는 우리를 품어 안고 계십니다. 우리는 흔히 ‘자식 이기는 부모를 보았냐’는 소리를 자주 접해왔고, 더 나아가 성경에서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를 버릴지라도 주님께서는 나를 받아 주시리라.”(시편 27,10)라는 글귀에서 커다란 위안을 삼아왔습니다. 오늘 이 글귀에서 새삼 다시 어머니 마리아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어머니 마리아를 통해 우리를 구원에로 이끌고 계시는 주님의 깊은 사랑을 절절히 되새깁니다. 자식이 목숨을 바쳐 구한 우리를, 반복되는 그 숱한 실망스러움과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끌어안고 계시는 어머니.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우리 중에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 바라시”(2베드 3,9)는 주님 앞에 서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다가갑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은 죽음의 슬픔과 고통으로 주저앉아 계시는 분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우리의 주님이 되신 분이십니다. 어머니 마리아 역시 아들의 죽음에 시름시름 앓고 계시는 분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을 따라 마지막 날 우리 모두를 구원하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시며 우리를 품어 안고 계십니다. 부활의 영광을 믿고 바라는 우리는 그러기에 주님 앞에 다시 일어서서, 주님께 다가가 주님 사랑의 흔적을 가슴 깊이 새기고, 주님 사랑을 담은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나와 내 가족의 안위와 행복뿐만 아니라, 형제자매들과의 나눔과 그 나눔으로 인한 기쁨이 진정 나의 기쁨과 구원의 생명임을 깨닫고 살아가렵니다.

 

어머니, 우리 어머니, 주 예수님과 함께 찬미와 영광을 받으소서. 아멘.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5월호, 심흥보 베드로 신부(서울대교구 수색 예수성심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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