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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 칼럼: 삶을 변화시키는 인생 가이드, 그린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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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6-22 ㅣ No.1206

[영화 칼럼] 삶을 변화시키는 인생 가이드, 그린북(2019, 피터 패럴리 감독)

 

 

내 마음속의 편견을 버릴 때

 

초록은 자연의 색입니다. 평화와 안전과 치유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그 색과 이름으로 1936년부터 1966년까지 미국에서 나온 흑인 운전자를 위한 안내서 ‘그린북(Green Book)’은 그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배려도 존중도 아닙니다.

 

그린북은 이렇게 말합니다. 흑인이 여행을 하려면 평화로운 휴가를 위해서 잠은 이곳에서만 자고, 밥은 이곳에서만 먹어라. ‘이곳’은 사회가 쳐놓은 차별의 울타리인 유색인 전용 호텔과 식당들입니다. ‘집처럼 편안하다’, ‘미식가를 위한 훌륭한 식사’란 수식어가 달려 있지만, 과연 그럴까요.

 

토니 발레룽가(비고 모텐슨 분)는 낡고 지저분한 호텔을 보고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로서는 당연합니다. 그는 백인입니다.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으니 순진하게 그린북을 믿은 거지요. 그러나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 분)는 “여기가 맞다”고 말합니다. 천재 뮤지션(피아니스트)으로 백인들의 초청을 받지만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그도 “그냥 검둥이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2019년 아카데미 작품상, 각본상, 남우조연상을 받은 영화 <그린북>은 1962년 미국 남부를 순회 연주하는 돈과 그의 운전사로 고용된 토니가 8주 동안 만나고, 보고, 겪고, 부딪친 차별과 편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주먹과 거친 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이탈리아 출신의 가난한 백인과 천재적 재능과 교양, 품위를 가진 여유 있는 흑인이란 인물과 그 관계 설정부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렇게 출발에서부터 낡은 고정관념을 깨버린 영화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로 차별과 편견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때론 유쾌하게, 때론 날카롭게, 때론 가슴 뭉클하게 깨우쳐줍니다. 노예해방을 선언한 지 1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흑백차별이 남아있는 미국 남부에서는 흑인이라면 누구도 차별로부터 예외일 수 없습니다. 비슷한 시절을 그린 영화 <헬프>(2011년)의 가사도우미들, <히든 피겨스>(2017년)의 미항공우주국 비행연구소의 여직원들도 그랬으니까요. 돈 역시 백인들의 연주에 초청되지만, 식사는 함께하지 못합니다. 화장실 사용도 금지입니다. 심지어 양복점에서 새 옷을 한 번 입어볼 수도 없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전통이고 규칙이라고 말합니다. 비뚤어진 눈과 기울어진 마음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런 무지와 맹목에 맞서 이기려면 폭력이 아닌 품위, 틀을 깨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식당 출입을 막자 버밍햄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거부하고 대신 길 건너 흑인 식당에 들어가 처음으로 신나게 연주하는 돈과 그의 선택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는 토니처럼.

 

정반대처럼 보였지만 토니와 돈은 결국 같은 존재였습니다. 이유는 달랐지만, 백인이면서 백인에 속하지 못하는, 흑인이면서 흑인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흰 돌들 가운데 놓인 검은 돌’이었던 거지요. 그 사실을 깨달으면서 진정한 우정은 피어납니다. 타인에 대한 이해와 사랑, 존중의 시작은 이렇게 편견을 버리고 마음을 여는 것인가 봅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기꺼이 다가간 예수님처럼.

 

[2020년 6월 21일 연중 제12주일 서울주보 5면, 이대현 요나(국민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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