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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대중문화 속 그리스도의 향기: 영화 리틀 포레스트(Little Fo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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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7-22 ㅣ No.1217

[대중문화 속 그리스도의 향기] 영화 ‘리틀 포레스트’(Little Forest)


‘아주 심기’를 준비하는 마음

 

 

어느 해 명절 연휴에 우리 부부는 부모님을 찾아뵙는 대신 피정을 떠났다. 너무 지쳐 있었고 세상의 어떤 것도, 심지어 각자의 원가족조차 진정한 쉼을 줄 수 없다고 느꼈기에 도망치듯 떠난 피정이었다. 사흘 동안 고즈넉한 강가에서 먹고, 자고, 기도하고, 산책했을 뿐인데 우리는 놀랍도록 회복했다.

 

 

배고파서 내려왔어

 

영화 ‘리틀 포레스트’(2018, 감독 임순례) 속 혜원은 서울에서 임용 고시를 준비하며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인스턴트 음식으로 버티다가 시험에 떨어지고 복잡한 마음으로 고향 마을로 내려간다. 서울살이가 고단했던 이유는 단지 몸이 피곤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매일 열심히 사는데도 여전히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자책, 나의 존재를 가벼이 여기는 세상의 시선이 예원을 속부터 곪게 만들었다.

 

친구 은숙이 왜 갑자기 내려왔냐고 다그치자 “나 배고파서 내려왔어.”라며 멋쩍어하는 혜원의 대답은 진심일 것이다. 인스턴트 음식으로는 깊은 허기를 채울 수 없었던 혜원을 다독여 준 것은 엄마의 요리다. 이제는 엄마가 없는 고향 집에서 혜원은 예전 엄마 요리를 조금씩 다르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만든다. 그래도 자연의 시계를 따라간다는 점만은 엄마와 꼭 닮았다.

 

봄에는 봄나물과 꽃을 넣고 파스타를 만들고, 가을엔 밤을 주워 달콤한 밤조림을 만들면서 사철 자연의 맛을 음미한다. 자연이 주는 영양분을 몸과 마음에 조금씩 쌓아가는 혜원을 보며 “이제 내가 온 땅 위에서 씨를 맺는 모든 풀과 씨 있는 모든 과일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창세 1,29) 하신 하느님 말씀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나도 이곳 토양과 공기를 먹고 자란 작물이야

 

재하도 혜원처럼 대학 진학을 기회로 고향을 떠났다가 도시 생활에 상처받고 일찌감치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산다. 반면 은숙은 고향을 지겨워하며 늘 도시를 동경한다. 고향에 대해 품는 생각은 달라도 셋은 이 마을 풍경에 너무나도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혜원의 말처럼 그들 또한‘고향의 토양과 공기를 먹고 자란 작물’이기 때문이다.

 

식물이 땅에서 뽑히면 생기를 잃듯 우리도 마음의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하면 살아갈 수가 없다. 그 뿌리를 탄탄하게 만드는 것은 충분한 쉼이다. 열심히 내달리느라 턱밑까지 차오른 호흡을 가다듬으며 마음의 긴장을 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는 동안 우리 마음속에 보드라운 새 흙이 덮인다. 메마르고 딱딱한 땅을 파고드느라 지쳤던 마음의 뿌리는 그제야 비로소 마음껏 기지개를 켠다.

 

하느님께서도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창세 2,2). 그리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2,3). 쉼은 우리에게 허락된 정당한 권리이자 하느님 백성의 의무이기도 하다. 또한 하느님의 피조물들 사이를 자연스럽게 거닐 때 우리는 그분의 쉼을 조금이나마 체험할 수 있다.

 

 

‘아주 심기’를 준비하고 있는지도 몰라

 

혜원의 엄마는 기다릴 줄 알아야 최고로 맛있는 겸 맛볼 수 있다고 했다. 긴긴 겨울밤 동무가 되어 줄 막걸리가 발효되는 시간, 수제비 반죽이 숙성되는 시간, 가을에 딴 감이 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말랑말랑한 곶감이 되는 시간…. 혜원도 어느새 시간은 기다릴 줄 알게 된다. 심지어 날씨 때문에 흉작인 농사나 간단한 식료품 하나를 사러 자전거로 40-50분을 달리는 수고까지도 받아들인다.

 

우리도 코로나19 때문에 원치 않는 기다림과 쉼, 불편을 경험했다. 사실 이 기다림은 인간의 안전보다는 자연의 회복을 기다리는 시간이 된 것만 같다. 인간이 활동을 멈추자 미세 먼지는 줄어들었고, 강은 다시 맑아졌으며, 생태계는 회복의 조짐을 보였다. 자연이 오랜만에 겨우 자신을 돌볼 기회를 얻은 것이다.

 

처진 어깨로 고향을 찾은 혜원의 뒷모습은 지치고 팍팍한 청년의 모습일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하다. 오로지 경제적 성공과 발전만을 외치며 우리가 돌아갈 고향인 자연을 몽땅 망가뜨린다면 과연 어디서 쉴 수 있을까? 아니, 살아남을 수는 있을까?

 

재하는 혜원이 고향에 돌아온 일이 ‘아주 심기’를 준비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씨앗이 발아할 때까지만 머무는 모종판이 아니라 평생토록 뿌리내리고 살아갈 땅을 준비한다는 의미이다. 많은 사람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인류가 가야 할 길을 모색하느라 분주하다. 나는 그 해답을 아주 심기에서 찾는다. 이 지구를 잠시 쓰고 버릴 모종판이 아니라 인류가 마지막으로 뿌리내린 ‘아주 심기 밭’이라는 걸 되새기는 일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촉구한 ‘생태적 회개’가 아닐까?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 206항에서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말을 인용한다. “환경 훼손의 문제는 우리의 생활양식을 반성하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2010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 11항). 이제는 생존의 문제로 성큼 다가온 이 반성의 결과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과 일치를 이루며 더불어 살아가는’(「찬미받으소서」, 216항) 삶으로 증명해야 한다.

 

그렇다고 갑자기 우리 모두가 도시를 버리고 귀촌할 수는 없다. 다만, 가끔이라도 우리 자신에게 자연 속에서 온전히 쉬는 ‘하느님의 쉼’을 허락해 줄 수는 있지 않을까? 그리고 창조주의 솜씨에 감탄하고 감사하며, 아주 심기하는 마음으로 이 땅과 함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 김연기 라파엘라 - 연세대학교에서 심리학, 사회학을 전공하고 방송 작가, 문화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중고등학교사목부 교육 자원 봉사자로 ‘미디어 리터러시’를 비롯한 가톨릭 가치를 담은 인성 교육 강의를 했으며,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문화의 복음화, 삶의 복음화’ 등 문화, 선교 프로그램을 구성해 왔다.

 

[경향잡지, 2020년 7월호, 김연기 라파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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