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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세계]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15: 레지스트룸 그레고리의 제국의 네 영토를 상징하는 여성과 오토 2세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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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9-01 ㅣ No.1285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15) 레지스트룸 그레고리의 ‘제국의 네 영토를 상징하는 여성과 오토 2세의 초상’


주교의 지팡이 목장(牧杖)을 든 황제, 교황권을 누르다

 

 

레지스트룸 그레고리(Registrum Gregorii), ‘제국의 네 영토를 상징하는 여성과 오토 2세의 초상’, 20×27㎝, 양피지에 그린 세밀화, 985년경, 프랑스 샹티이 성(城)의 콩데미술관.

 

 

샤를마뉴 제국의 붕괴

 

유럽의 아버지, 샤를마뉴가 사망하자 카롤링거 왕조는 세 부분으로 나뉘었다. 샤를에게는 공식적인 아내가 다섯이었고, 자녀들은 18명이었다. 샤를이 814년에 사망하고 루도비쿠스 1세 피우스(Ludivicus I Pius)가 뒤를 이었다. 840년 루도비쿠스 1세마저 세상을 떠나자 제국은 그의 세 아들에게 나누어 상속되었다. 큰아들 로타리우스 1세(Lotharius I)는 중프랑크 왕국을, 셋째 아들 루도비쿠스 2세 게르마니쿠스(Ludovicus II Germanicus)는 동프랑크 왕국을, 배다른 막내 카롤루스 2세 칼부스(Carolus II Calvus)는 서프랑크 왕국을 상속받고 843년 베르덩에서 각자 서명을 했다. 그래서 이를 두고 ‘베르덩(Verdun) 조약’이라고 한다.

 

870년에 이르러 이탈리아 땅을 중심으로 받은 중프랑크는 로타링거 왕조를 세우고 국호를 이탈리아로, 루도비쿠스 2세의 동프랑크는 독일로, 카롤루스 2세 칼부스의 서프랑크는 프랑스로 명칭을 변경하는데 이를 ‘메르센 조약(Treaty of Meerssen)’이라고 한다.

 

서프랑크의 카롤루스 2세 칼부스의 아들 샤를 3세 일 그로쏘가 888년에 사망하자 사실상 카롤링거 왕조의 몰락과 샤를마뉴의 제국은 붕괴되고, 유럽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이후, 이 왕국들에서 등장하는 여러 왕은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개 중세기 유럽을 떠받치게 될 봉건주의 체제 속에서 지방 토호 세력에서 선출되었다. 그중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가문이 프랑스의 카페 왕조와 독일의 작센 왕조다.

 

 

익명의 마에스터가 그린 세밀화

 

소개하는 작품은 세밀화다. 프랑스 샹티이 성(城)의 콩데미술관에 소장된 레지스트룸 그레고리(Registrum Gregorii)라는 익명의 마에스터가 그린 ‘제국의 네 영토를 상징하는 여성과 오토 2세의 초상’이라는 작품이다. 985년경, 양피지에 그린 세밀화로 크기는 가로 20cm, 세로 27cm의 작은 그림이다. 앞서 언급한 바 있는 카롤링거 르네상스 시기에 꽃을 피운 문화 혁명의 하나가 양피지로 만든 책을 보급하는 일이었고, 책의 장식으로 세밀화 기법이 널리 확산되었다.

 

세밀화는 말 그대로 ‘세밀한’ 기법으로 그린 소형의 그림이다. 가는 붓을 사용하여 매우 정교하게 그린 그림이다. 책의 첫 글자나 문단의 첫 글자를 그림 형태로 그리는 데 주로 활용되었다. 서방에서 세밀화의 역사는 고대 이집트에서 파피루스에 그리던 것이 그리스-로마를 거쳐 중세 유럽에 이르러 양피지에 그리면서 크기가 달라지기도 했다. 중세기 세밀화는 카롤링거 르네상스 시대에 가장 꽃을 피웠다. 채색의 아름다움을 이용하여 종교화가 꽃을 피웠고, 점차 역사화, 풍속화 등으로 발전하며 ‘동-식물 세밀화’, ‘페르시아 세밀화’, ‘터키 세밀화’, ‘이슬람 세밀화’ 등으로 확대되었다.

 

이 작품을 완성한 작가는 레지스트룸 마스터(Registrum Master), 그레고리 마스터(Gregory Master)라고 한 레지스트룸 그레고리(Registrum Gregorii)라고 불리던 스승(마에스터)으로 10세기에 활동한 익명의 기록관이자 세밀화 작가다. 트리어(Trier)에서 에그버트(Egbert) 주교 재임 시절에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완성한 ‘그레고리 기록’, ‘트리어의 두 성사’, ‘에그버트 코덱스’, ‘생트 샤펠(Sainte-Chapelle)의 복음서’ 등이 트리어 국립도서관, 프랑스 샹티이 성(城)의 콩데미술관, 파리 국립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독일 신성 로마 제국의 탄생

 

작품 속에 등장하는 오토 2세는 오토 1세의 아들로 독일의 작센 왕조 출신이다. 흔히 ‘오토 왕조’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토 2세의 이야기는 936년 독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헨리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아버지 오토 1세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토 1세는 선친이 이룩한 왕국의 정치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바꾸어 강력한 왕권을 회복하는 데 주력한 인물이다. 지방 토호 세력인 봉건 영주들의 힘이 막강한 것을 보고 황제는 직접 각 지역의 영적 지도자인 주교를 공작으로 임명하여 ‘주교-공작’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그에게 많은 혜택을 주었다. 그 대가로 황제는 ‘주교-공작’들로부터 조건 없는 충성을 약속받고 전쟁 시에는 군사적인 지원까지 받았다. 중세기 봉건주의 시스템에서 지방의 토호 세력인 봉건 영주들을 주교로 임명한 것이다. 이것은 결국 세속 봉건 영주들의 힘을 빼고, 왕권을 극대화하는 방식이었다. 주교-공작은 자손이 없었기 때문에 그가 사망할 시, 그 땅과 함께 모든 주권이 황제에게 귀속되기 때문이다.

 

이에 힘입어 오토는 독일 지역을 평정하고 이탈리아 영토에까지 들어와 정치적 군사적 통제를 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탈리아 왕국은 왕권을 놓고 여러 가문이 싸우고 있었고, 심각한 정치적 분열이 이어지는 가운데 교황은 제국의 지원은커녕 분쟁의 중심에서 시달리고 있었다. 게다가 당시 이탈리아의 남부지방은 비잔틴의 통제하에 있었다. 오토 1세는 로타리우스 2세의 부인 아델라이드의 요청에 따라 이탈리아 반도 문제에 개입하여 영토를 평정하였다.

 

960년, 성탄을 기해 요한 12세 교황도 오토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교황은 그 대가로 오토에게 제국이라는 칭호를 약속했다. 962년 2월 2일, 오토 1세는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황제의 대관식을 가졌고, 북부 이탈리아 땅을 포함한 독일 신성 로마 제국이 공식적으로 탄생하였다.

 

 

교황권, 황제의 보호 아래

 

대관식을 통해 황제가 되고 며칠 지나지 않은 2월 13일, 오토 1세는 확보한 강력한 힘을 토대로 ‘오토의 특권(Privilegium Othonis)’을 선포했다. 그것은 교황권을 황제의 보호 아래 둔다는 것이었다. 이 문서를 통해 오토는 “교황은 황제 앞에서 충성을 맹세해야 하고”, “황제는 교황을 심판할 수 있고”, “교황권은 황제권에 복속되며”, “황제는 게르만 민족에서만 나올 수 있다”고 천명했다. 교황 선출도 황제의 동의와 그가 보낸 대표자들의 입회하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명시했다. 황제는 로마 시에서 군사적인 행동을 할 수 있고, 앞서 피핀 3세와 샤를마뉴가 교황에게 기증한 영토들을 승인하는 우선권자라고도 했다. 이것은 이후 역사에서 교회와 제국이 오랫동안 교황파와 황제파로 나뉘어 격렬하게 충돌하는 계기가 되었다.

 

 

작품 속으로

 

오토 2세는 여성으로 표현된 4개 지방,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알레만니아에서 공물을 받고 있는 것을 표현했다. 알레만니아는 오늘날의 프랑스 알자스, 독일의 바덴과 슈바벤, 독일어권 스위스, 오스트리아의 포어아를베르크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황제가 앉은 의자는 주교좌인 카테드라다.

 

왼손에는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성체를 들고 있고, 오른손에는 사목자 주교의 지팡이 목장(牧杖)을 들고 있다. 오토 2세는 아버지 오토 1세의 뒤를 이어, 이탈리아에서 교황권을 누르고 황제 권력을 강화했고, 사망한 후에는 바티칸에 묻혔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8월 30일, 김혜경(세레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이탈리아 피렌체 거주)]

 

* 그림 파일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것입니다.

원본 : https://www.wga.hu/art/m/master/gregorii/registr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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