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영성의 삶: 어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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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9-14 ㅣ No.1474

[영성의 삶] 어둔 밤

 

 

영성생활은 삶 속에서 주님을 만나고,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이 생활은 기쁘고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행복의 근원이신 주님과 함께 살아가기에 그 어떤 곳에서도 얻을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을 맛보게 됩니다. 그렇지만 누구나 경험하듯이 영성생활이 항상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이유도 없이 영적 메마름으로 힘든 시간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기쁜 영성생활 중에 왜 이런 어려움을 겪게 될까요? 그리고 이런 시간을 겪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상황은 잘못된 영성생활로 인해 일어나기도 하지만 바른 영성생활 중에 일어나기도 합니다. 영성생활을 마음으로 하지 않고 형식적이거나 의무적으로 행할 때는 당연히 영적 메마름을 경험하게 됩니다. 주님과의 만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는 마음으로 주님을 만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면 조금씩 나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마음으로 주님을 만나며 살아가는 이들도 영적 메마름을 경험하게 됩니다. 영성가들은 이러한 상황을 ‘영적 어둠’, ‘어둔 밤’ 등으로 표현했습니다. ‘어둔 밤’1)이 무엇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겪는 고통 중에서 가장 큰 고통은 무엇일까요? 지옥의 영혼들은 어떠한 고통을 겪을까요? 가장 큰 고통은 ‘하느님의 부재’에서 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것이 가장 큰 고통입니다.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지옥의 고통은 우리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지상생활 속에서도 하느님이 없는 삶을 산다면 그 자체가 지옥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영성생활은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할 우리의 삶 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보다 기쁘고 행복한 것은 없습니다. 주님과 더 깊은 만남이 이루어진다면 기쁨과 행복 또한 더 커질 것입니다. 어둔 밤은 주님을 더 깊이 만나기 위해 겪게 되는 시간입니다. 갑자기 주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영적 메마름을 겪게 될 때 우리는 주님을 찾기 위해 더욱 노력하게 되지요. 엄마의 손을 놓친 아이가 엄마를 찾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가서는 사랑하는 이를 찾기위해 밤거리를 헤매는 여인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들려줍니다.2) 가로등 하나 없는 시골길을 걷는다면 작은 불빛 하나라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불빛을 찾으면 그것만 보고 걸어가게 됩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부재를 경험하게 되면 영적 메마름으로 고통을 겪지만 더욱 열정적으로 주님을 찾게 됩니다. 이러한 열정은 더 깊이 주님을 만날 수 있는 바탕이 되어 영성적으로 성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 안에서 ‘어둠의 밤’이라는 시간을 바라본다면 이것은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좀 더 자신을 성숙시켜 하느님을 깊이 만나게 되는 소중한 시간임을 깨닫게 됩니다.

 

걷지도 못하는 어린 아이가 걸음마를 배울 때를 생각해 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걸음마를 가르칠 때 부모는 아이의 손을 잡고 조금씩 걸을 수 있게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손을 놓고 조금 떨어져 아이가 걸어오기를 기다립니다. 아이는 처음으로 혼자 서서 걸어야 하는 상황이 당황스럽고 두려워 몇 걸음 걷다 주저앉아 버립니다. 처음으로 부모의 손에서 벗어나 혼자가 된 상황, 스스로 걸어야 되는 상황이 아이에게는 어둔 밤의 상태와 같습니다. 이때의 어둔 밤은 아이에게 힘든 시간이 될 수 있지만 스스로 걸을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시간이 됩니다. 처음에 울며 당황하던 아이는 부모에게 다가가기 위해 조금씩 걷기 시작할 것입니다. 혼자 걷게 되면 기어 다닐 때와 달리 많은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부모에게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안기기도 하고, 부모와 함께 많은 곳을 갈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아이에게 어둔 밤은 부모와 더욱 깊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과정이 됩니다.

 

이처럼 어둔 밤은 주님을 찾기 위한 열정을 키워 믿음, 희망, 사랑이 더욱 굳건해지게 합니다. 터널을 통과하면 밝은 빛을 다시 볼 수 있는 것처럼 어둔 밤은 터널 안의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터널을 통과하면 그 전에 보았던 빛보다 더 밝은 빛을 만나게 됩니다. 이렇게 어둔 밤을 통해 우리는 더 밝은 빛속에 머물게 되고, 더 깊이 주님을 사랑하게 되며, 더 참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어둔 밤은 언제든지 우리들에게 닥칠 수 있습니다. 주님께 가는 여정 중에 언제든지 어둔 밤을 경험할 수 있고, 그 경험을 통해 더욱 성숙될 수 있습니다. 어둔 밤의 시기는 오래 갈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어둠이 아주 짙을 때도 있고 옅을 때도 있으며 여러 번 겪기도 합니다. 어둔 밤이 찾아왔을 때 각자 다른 상황이겠지만 중요한 것은 힘들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걷는 것이 힘들어 그냥 주저앉아 버린다면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지 못 하게 됩니다.

 

어둔 밤을 겪게 될 때 어떻게 극복해낼 수 있을까요? 먼저 이런 상황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그래야 당황하지 않고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찾아가게 됩니다. 그런 다음 주님과 더 깊이 만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다만 그 노력은 자신의 능력으로 주님을 찾고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버리고 온전히 주님께서 이끌어 가시도록 맡기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능동적으로 주님을 찾았다면, 점점 수동적으로 주님의 이끄심에 자신을 내어 맡기는 자세로 바뀌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때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마리아의 자세3)처럼 온 마음을 기울이고 주님을 향한 열정을 더욱 불태워야 합니다. 어둔 밤을 겪을수록, 이러한 노력을 기울일수록 주님께 맡기는 마음은 커져가게 되고, 그분과의 만남은 한없이 깊어지게 됩니다. 이런 만남은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적 기쁨과 평화를 누리게 합니다. 어둔 밤을 통한 성숙은 이렇게 점점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겨드리는 삶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통을 피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고통이 더욱 주님께 손을 내밀고 그분만을 바라보게 만드는 시간이 될 수 있다면 피해야 할 것이 아닌 오히려 좋은 선물이 됩니다. 많은 성인들은 고통을 통해 성숙했고 더 주님께 나아갔습니다. 어둔 밤이 자신에게 고통으로 다가오겠지만 주님께서 주신 사랑의 선물이라는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또 다른 기쁜 세상이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어둔 밤은 주님의 사랑입니다.

 

1) 고요한 호수에 돌을 하나 던지면 물결이 뭍까지 퍼져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적인 어둠’은 영성의 역사에서 오랜 시간 동안 이야기되어 온 내용입니다. 14세기 무명 저자의 영성 서적인 『무지의 구름』에서부터 십자가의 성 요한의 저서 『어둔 밤』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성가들은 영적 어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 아가 3,1-4

 

3) <빛>잡지 8월호 참조

 

[월간빛, 2020년 9월호, 서보효 라이문도 신부(교구 성직자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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