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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사유하는 커피18: 커피의 본능과 신앙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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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9-15 ㅣ No.606

[사유하는 커피] (18) 커피의 본능과 신앙고백


한 잔의 커피, 유혹 또는 신앙고백

 

 

커피의 본능은 무엇일까? 지그시 눈을 감게 만드는 향기, 정신을 바짝 들게 하는 각성, 멈출 수 없는 중독성….

 

프랑스 혁명의 시기를 뜨겁게 살아간 탈레랑(1754~1838)은 “커피의 본능은 유혹”이라고 은유했다. 그가 왜 ‘유혹’이라는 답을 내놓았는지에 대해 설명이 없지만, 이어지는 말에서 의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커피의 진한 향기는 와인보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은 키스보다 황홀하다.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와 같이 순수하고 사랑처럼 달콤하다.”

 

탈레랑의 이 말은 처음으로 나온 커피 관능에 관한 문학적 표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잔의 커피가 탈레랑으로 하여금 악마, 지옥, 천사, 사랑이란 의미심장한 단어들을 떠오르게 한 연유는 무엇일까? 커피의 위력일까, 인간의 깊은 사유가 만들어낸 관념일 뿐일까? 아니면, 실제 커피에 스며 있을지 모를 악마의 농간 탓일까?

 

같은 시기, 독일 바이마르의 한 카페에서 커피를 탐닉하는 젊은이들을 보고 있던 괴테(1749~1832)는 “분명, 시커먼 액체에 인간을 홀리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직관했다. 괴테가 커피를 화학자 룽게에게 보내 인간을 유혹하는 물질을 찾아내라고 한끝에 마침내 카페인의 존재가 확인됐다. 이로써 괴테에게 커피의 본능은 카페인으로 정의됐다. 본능이란, 사전적으로는 생명체에게만 부여된다. 어떤 생물체가 경험이나 교육에 의하지 않고 선천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인데, 그 능력이란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이기도 하다.

 

카페인의 화학구조는 인간의 신경전달물질인 아데노신과 비슷하다. 신체가 피곤해지면 방어체계가 작동된다.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느님께서 창조의 시기에 미리 넣어둔 장치이다. 체력이 떨어질 때면 자동으로 분비되는 아데노신은 중추신경에 작동해 인간을 잠들게 한다. 그런데 이때 커피를 마시면 아데노신과 비슷하게 생긴 카페인이 아데노신이 결합해야 할 자리에 대신 들어가 거꾸로 잠을 쫓는 신호를 보낸다. 밤새워 일하는 사람들이 커피를 이용해 잠을 극복하는 메커니즘이 바로 이것이다.

 

반면, 탈레랑의 유혹은 ‘치명적 매력’이라는 은유 이상의 무엇이 있다. 탈레랑에게 유혹은 문학적 서사가 아니라 종교적 묵상이다. 탈레랑은 외교관이기에 앞서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직자였다. 그는 바스티유 습격 1주년 기념 미사를 집전했다가 ‘혁명의 주교’로 찍혀 교황에게서 파문당했다. 마지막 순간 교회와 화해하고 성사를 받았는데, 정치에 몸담아서도 사실 그의 행보는 몹시 신앙적인 것이었다. 개신교 국가였던 네덜란드 연합왕국에서 가톨릭 세력을 주축으로 한 벨기에 독립을 이끌어 낸 것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신앙을 공기처럼 호흡한 탈레랑에게 커피는 신앙의 또 다른 모습이었을 뿐이다. 유혹, 꼬드김, 꾐은 특정인의 마음을 움직여 행동하게 한다는 점에서 같지만, 유혹은 쾌락을 제공함으로써 죄에 빠트린다는 점에서 다르다.

 

유혹을 의미하는 템테이션(temptation)은 라틴어 ‘tentatio’(텐타시오)에서 왔다. 가톨릭교회에서의유혹은 인간이 신에 충실한지, 신앙이 진실한지를 시험하는 ‘영적 시련’이다. 200여 년 전 한 잔의 커피를 대할 때마다 지치지 않고 “나는 과연 신의 섭리를 따라 살고 있는가”를 되물었을 탈레랑이 떠오른다. 그에게 커피의 본능은 신앙고백이었으리라….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9월 13일, 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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