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3일 (목)
(녹)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가톨릭 교리

생활교리: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로마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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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11-12 ㅣ No.6405

[생활교리]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로마 5,20)

 

 

예나 지금이나 원죄 교리만큼 자주 오해되거나 잘못 해석된 교리도 드물다. 베네딕토 16세 교황 역시 이렇게 지적한다. “현대신학과 사목이 처한 가장 심각한 문제점의 하나는 ‘원죄’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과 원죄를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이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그래도 로마가 중요하다』 91). 그렇다면, 우리는 원죄 교리, 특히 ‘첫 인간의 죄가 후손에게 전해진다’는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겠는가?

 

1. 죄의 연대성? 원죄는 아담과 하와가 창조주 하느님께 불순종하여 그분의 뜻을 거스른 죄로, 그 결과 인간은 하느님과의 친교를 상실하게 되었으며, 그 영향은 모든 인류에게 미치게 되었다. 물론 “원죄의 전달은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의 신비이다”(『교리서』 404). 다만 원죄의 전달은 일부에서 오해하듯, 조상의 죄가 후손에게 ‘대물림’되어 악영향을 준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의 첫 범죄 이후 이미 ‘구원의 약속’(창세 3,15 참조)을 주셨으며, 유일한 중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친교를 회복해 주셨다.

 

따라서 원죄는 세례를 통해 이미 용서된다. 또한 각자의 죄는 각자에게 책임이 지워지지만, 원죄는 우리가 “짊어진”(『교리서』 404) 죄로서, 개인의 자유의지로 지은 죄가 아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개인적 책임이 따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는다”(1코린 12,26)라는 말씀처럼, 한 사람의 죄는 그 개인에게만 머무르지 않고, 그가 속한 공동체에 어떤 방식으로든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인류가 하느님 앞에서 서로 책임을 지는 하나의 형제적 공동체라는 점을 고려하면, 원죄의 전달은 ‘죄의 연대성’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곧 원죄가 후손들에게 전해진다는 것은, 인간이 하느님 안에서 형제자매로서 서로 연대하며 그 결과를 함께 짊어진다는 의미이지, 죄 그 자체나 그에 대한 개인적 책임이 후손에게 전가된다는 뜻은 아니다(『죽은 이를 위한 올바른 기도』 24 참조).

 

2. 은총의 연대성? 원죄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 ‘구원’과 연결하여 바라보아야 한다(『교리서』 407).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 5장 12-21절에서 아담으로부터 비롯된 죄와 죽음을 말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크게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지는 은총과 생명을 강조한다. 이는 원죄 교리의 핵심이 단지 인간의 타락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은총임을 명확히 드러낸다. 곧 “모든 사람에게 구원이 필요하고, 그 구원은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모든 사람에게”(『교리서』 389) 주어진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 ‘은총의 연대성’은 아담으로 시작된 ‘죄의 연대성’보다 더 크고 앞선다.

 

이런 의미에서 파스카 찬송이 노래하는 “오, 복된 탓이어라”라는 역설적인 찬미는 원죄 교리의 참된 의미를 드러낸다. 곧 원죄 교리의 중심에는 “하느님 없이, 하느님보다 앞서서, 하느님을 따르지 않고, 하느님처럼 되[려는]”(『교리서』 398) 인간의 죄가 자리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진리는 하느님의 은총이 결코 지워지거나, 취소되거나, 철회될 수 없는 사랑의 선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2025년 11월 9일(다해)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평신도 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8면, 윤태종 토마스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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