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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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학: 그리스도인의 소유(신학적 인간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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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학] 그리스도인의 소유(신학적 인간학)
우리 마음 안에는 저마다 쉽게 놓지 못하는 욕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물건, 관계, 인정, 성공등 형태는 달라도 무언가를 소유하고자 마음을 쏟으며 살아가지요. 그러나 소유는 잠시 우리에게 풍요로움을 주는 듯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언젠가 가진 것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불안도 안겨 줍니다. 법정 스님께서 《무소유》(1976)에서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고 하신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무소유의 역설’은 그리스도인에게도 깊은 신앙적 의미를 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말씀하시며, 이들이 “하늘 나라를 차지하고 하느님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약속하십니다.(마태 5,3-8 참조) 이 말씀은 비움이 단순한 절제가 아니라, 하느님을 향해 마음을 여는 신앙의 태도임을 보여 줍니다. 마음의 가난과 물질적 가난이 같은 것은 아니지만, 소유가 적을수록 더 쉽게 하느님께 향할 수 있고, 은총이 삶을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욱 선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프랑스 신학자 앙리 드 뤼박(1896-1991)은 이 점을 더 깊이 밝혀줍니다. 그는 인간이 본래 하느님을 향한 갈망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인간이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심어주신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가장 깊은 자리에는 언제나 하느님을 향한 열림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 본성을 잊은 채 다른 욕망으로 마음을 채우다 보면, 하느님을 향한 그 고유한 갈망은 점점 흐려지고 말지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더 큰 행복을 위해 비움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비움은 인간의 의지나 훈련만으로 이루어지는 금욕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우리를 인격적으로 만나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셨고, 스스로를 비우시어 우리에게 은총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먼저 다가오시는 하느님의 사랑 덕분에, 우리는 비로소 걱정과 집착을 내려놓을 힘을 얻게 됩니다. 마음에 은총이 머무를 자리를 내어 드릴 때, 우리의 소유욕은 자연스레 누그러지고 하느님을 향한 본래의 갈망은 다시 깨어납니다.
우리의 여정은 비움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비움을 통해 하느님 안에 머무를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참된 풍요는 ‘무엇을 버리는가’가 아니라 ‘누구 안에 머무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하느님 안에 머무를 때, 비움은 충만으로, 가난은 자유로 변화합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의 비움은 덜 가지기 위한 절제가 아니라, 하느님께 마음을 내어드리는 사랑의 응답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한 가지 진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소유를 내려놓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모든 것이 본래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2025년 12월 7일(가해) 대림 제2주일(인권 주일, 사회 교리 주간) 서울주보 5면, 전인걸 요한보스코 신부(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교수)] 0 5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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