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성극ㅣ영화ㅣ예술

순교극: 착한 악마 치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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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0-30 ㅣ No.6

순교극 : 착한 악마 치뽈

 

 

등장인물: 루치펠, 욕심악마, 시기악마, 교만악마, 루치뽈, 순이, 루포.

 

 

1막 

 

(무대 한 가운데 악마대왕 루치펠이 앉아 있고 그 좌우로 욕심악마, 시기악마, 교만악마가 앉아 있다.)

루치펠 : 여러분을 여기까지 오시라고 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왕자 치뽈이 때문이오. 도대체 태어나서부터 여태까지 한번도 나쁜 짓을 한 적이 없으니 내 어찌 걱정이 되지 않겠소.

(악마들이 루치펠의 눈치를 살피며 이해하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루치펠 : 이제 내 나이도 나이인지라 곧 왕위를 물려 주어야 할 텐데 악마나라의 왕자라는 놈이 그 모양이니…. 어디 여러분에게 좋은 생각이 있거든 주저하지 말고 말해보시오.

(욕심악마가 벌떡 일어선다.)

욕심악마 : 욕심을 심어주는 욕심악마가 한 말씀 아뢰겠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왕자님의 병을 치료하는데는 돈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듯 하옵니다. 자고로 돈이란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사악하게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루치펠 :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미안하지만 그 방법은 이미 오래전에 써 본 것이오. 

그리고 더군다나 왕자는 도대체 돈이 무엇에 쓰는 것인지도 모르고 있오.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겠소?

시기악마 : (일어서며) 왜 없겠읍니까? 

루치펠 : 어디 시기악마가 말해보시오.

시기악마 : 왕자님께는 돈보다는 시기심이 더 좋은 처방일 듯 하옵니다.

루치펠 : 좀 자세히 말해 보시오.

시기악마 : 다름이 아니오라 대왕님께서 왕자님을 한분 더 낳으셔서 그 왕자님만을 귀여워해 주신다면 분명 치뽈 왕자님께서는 새로 태어나신 왕자님께 시기심을 느낄것이고 그러면 왕위를 물려받기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나쁜짓을 하지 않겠읍니까.

악마들 : (박수를 치며) 옳소. 옳소.

루치펠 : 조용히들 하시오. (화가나서 시기악마를 노려보며) 모든 악마는 일생에 자식을 단 하나 밖에 나을 수 없다는 것을 그대는 모르오? 아니면 대왕과 농담을 하자는 것이오?

시기악마 : (고개를 숙이며 서서히 앉는다.)

루치펠 :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책상을 힘껏 내리치며) 내가 그대들 같이 멍청한 악마들을 모이라고 한게 잘못이오.

교만악마 : (살그머니 일어서며) 교만악마가 한 말씀 아뢰겠습니다.

루치펠 : (손을 흔들며) 또 농담을 하려거든 아예 그만두시오.

교만악마 : 왕자님을 지상으로 보내시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니까 제 말은 왕자님께 나쁜짓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자는 것입니다.

루치펠 : (자세를 고쳐 앉으며) 그래서?

교만악마 : 대왕님께서도 잘 알고 계신 것처럼 요즘 지상의 인간세계에는 우리 악마들 못지 않게 나쁜짓을 일삼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왕자님께서도 지상세계로 가시면 틀림없이 나쁜짓을 배워 오실게 분명합니다.

루치펠 : (손뼉을 치며)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이오.

교만악마 : 저에게 한가지 흠이 있다면 너무 많이 안다는 것입니다.

루치펠 : 이것으로 오늘 회의는 모두 마치겠오. 다들 돌아가 보시오.

(모든 악마들이 루치펠에게 인사를 한후 사라진다.)

루치펠 : (밖을 향해) 게 누구 없느냐!

(밖에서 "예이"소리가 들린다.)

루치펠 : 가서 왕자 치뽈이를 데려오너라.

(잠시후 치뽈이가 잠이 덜 깼는지 눈을 부비며 등장한다.)

치뽈 : (잠이 덜깬 목소리로) 부르셨어요 아버지?

루치펠 : 그래 이리오너라.

치뽈 : (루치펠의 곁에 가서 앉는다.)

루치펠 : 내가 너를 왜 불렀는지 알겠느냐?

치뽈 : 아니요.

루치펠 : 넌 이제 잠시동안 이 아버지와 떨어져서 지상세계로 가야한다.

치뽈 : 지상세계가 어딘데요?

루치펠 : 사람들이 사는 곳이지.

치뽈 : 그럼 제가 사람이 된단 말이예요?

루치펠 : 그래 잠시 동안만.

치뽈 : 근데 왜 제가 그곳에 가야 하는거죠.

루치펠 : (잠시 생각하다가) 그런건 묻지 말고 넌 그저 지상에 가서 나쁜짓만 열심히 하면 되는거야. 알았지? 그리고 한가지 명심할 것은 남을 도와주는 일 같은건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 남을 도와주면 악마는 그즉시 죽게 되어 있으니까.

치뽈 : 예, 알았어요.

루치펠 : 그럼 잘 다녀 오너라.

(루치펠이 치뽈이 머리에 손을 얹자 치뽈이가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

 

 

2막

 

(지상세계. 루치뽈이 쓰러져 있다.)

치뽈 : (서서히 일어서며) 아함 잘잤다. (두리번 거리며) 근데 여기가 어디지? 아, 그래 여기가 바로 지상세계로구나. 이렇게 좋은 곳인줄 알았으면 진작에 오는 건데. (숨을 크게 들이쉬며) 아, 이 맑은 공기.

(이때 순이가 울면서 등장한다.)

치뽈 : 어, 누가 오네. (순이에게 다가서며) 무슨 일인데 그러니?

순이 : (울먹이는 소리로) 우리 할머니가 관가로 끌려 가셨어. 

치뽈 : 관가가 뭔데?

순이 : 아니 관가도 모른단 말야?

치뽈 : 그거 먹는거니?

순이 : 먹는게 아니라 나쁜 짓을 한 사람에게 벌을 주는 곳이야.

치뽈 : 아, 그러니까 지옥이랑 같은 거구나.

순이 : 지옥?

치뽈 : 그래. 지옥말야. 그런데 대체 너희 할머니는 무슨 죄를 졌길래 그런 곳으로 끌려가셨니?

순이 : (고개를 숙이며) 우리 할머니는 죄를 짓지 않았어.

치뽈 : 아니 그럼 죄를 짓지 않았는데 왜 관가라는 곳으로 끌려가신거야?

순이 : 하느님때문이야.

치뽈 : (하늘을 가리키며) 하늘나라에 계시는 하느님말야?

순이 : 그래.

치뽈 : (어깨를 으슥하며) 그 하느님이라면 나도 알고있어. 직접 만나본적은 없지만 아버지한테 얘기는 많이 들었어. 우리 아버지도 옛날에는 하느님을 모시고 있었데.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순이 : (깜짝 놀라며) 네 아버지가 누군데?

치뽈 : 루치펠이야.

순이 : 루치펠? 세상에 참 희한한 이름도 다있다. 너 혹시 외국에서 왔니?

치뽈 : 외국이 뭔데?

순이 : 그럼 대체 어디에서 온거야?

치뽈 : 난 지옥에서 왔어. 

순이 : (놀라며) 지옥? 너 아무래도 정신이 좀 이상한 아이구나.

치뽈 : 아니. 내 정신은 말짱해.

순이 :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네.

치뽈 : 난 악마나라에서온 왕자 치뽈이야. 악마나라에선 바보 왕자 치뽈이라고 부르지. 왜냐하면 자랑할 건 못되지만 난 나쁜짓을 할 줄 모르거든. 아마 그래서 이곳으로 쫓겨나게 된건지도 몰라. 아버지는 잠시 동안만이라고 하지만.

순이 : 얘가 점점.

치뽈 : (웃으며) 하지만 악마나라보다 여기가 훨씬 맘에 들어. 바보라고 놀리는 사람도 없고.

순이 : (돌아서서 가며) 아무래도 너 빨리 집에 가는게 좋겠다. 부모님이 얼마나 걱정하시겠니.

치뽈 : (순이의 앞을 가로막으며) 내 말을 못믿는 거야? 좋아. 정 그렇다면 보여주는 수 밖에 없지.(치뽈이가 옆에 있는 민들레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민들레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순이 :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어떻게…….

치뽈 : (뽐내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장난이지뭐.

(순이가 빠른 걸음으로 도망하려 하자 치뽈이도 빨리 쫓아가서 다시 앞을 가로막는다.)

순이 : (멈추어 서며) 왜 자꾸 쫓아 다니는 거야?

치뽈 : (고개를 숙이며) 난 갈곳이 없어.

순이 : 또 마술을 부려서 집을 한채 지으면 되잖아.

치뽈 : 그건 눈속임일 뿐이야. 실제로는 그렇게 되질 않아. 

순이 : 그럼 날더러 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야?

치뽈 : 그냥 너희 집에서 잠만 잘 수 있게 해줘.

순이 : 아니 그럼 악마랑 한집에서 살란 말이야?

치뽈 : 왜? 악마가 어때서?

순이 : (잠시 생각하다가) 악마는 매일 나쁜 짓만 하니깐 그렇지.

치뽈 : 내가 얘기 했잖아. 나는 나쁜 짓 같은건 할 줄 모른다고. 그래서 지옥에서 쫓겨났다고 말야. (무릎을 꿇며) 절대로 나쁜 짓 같은건 안할테니까 제발 잠만 잘 수 있게 해줘.

순이 : (망설이다가) 좋아. 그럼 할 수 없지뭐. 하지만 나쁜짓은 절대 안된다. 알겠지?

치뽈 : (기뻐하며) 그래 약속할께.

순이 : 어두워지기 전에 빨리 가자.

(치뽈이와 순이가 사라진다.)

 

“이렇게 해서 치뽈이의 지상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지상생활이라 온통 신기한것 투성이였지만 치뽈이는 열심히 배웠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제법 나무도 할 줄 알게 되었고 밥도 지을수 있게 되었습니다.”

 

 

3막

 

(마당에서 순이가 무릎을 꿇고 있으며 잠시후에 치뽈이가 등장한다.)

치뽈 : (순이를 보고는) 뭐하고 있는거야?

순이 : (일어나 치뽈이를 반겨 맞으며) 치뽈이 왔구나. 대체 언제 들어온거야? 피곤할텐데 어서 씻고 들어가. 내가 얼른 밥상 차려가지고 갈께. 시장하지?

치뽈 : 괜찮아. 근데 조금 전에 뭐하고 있었던거야?

순이 : 응. 기도하고 있었어. 

치뽈 : 기도가 뭔데?

순이 : 하느님께 말씀드리는 거야.

치뽈 : 그러면 뭐가 좋은데?

순이 : 기도를 하면 무한한 힘이 생겨. 그래서 어떤 어려운 일도 참아내고 이겨내고 극복할 수 있게 되지.

치뽈 : 근데 그렇게 좋은거라면 왜 우리 아버지는 나한테 가르쳐 주지 않으셨을까?

순이 : 그건 아마도 너나 네 아버지가 악마이기 때문일거야.

치뽈 : 왜? 악마는 기도하면 안돼?

순이 : 잘 설명해 줄 수는 없지만 하여튼 기도는 착한 사람이 하는 거고 악마는 나쁜사람이니까 아마 악마들은 기도할 수 없을 거야.

치뽈 : 그럼 내가 나쁜사람이란 말이야?

순이 : 그게 아니라…….

치뽈 : (고개를 숙이고는 슬픈 목소리로) 그래 이제야 알겠어. 왜 아버지와 친구들이 자꾸만 나쁜짓을 하라고 얘기했었는지를. (조금 큰 소리로) 그래 나는 악마야. 세상에서 제일 나쁜 아이라구.

순이 : (치뽈이를 잡으며) 아니야 치뽈아. 내가 잘못했어. 내가 말을 잘못한거야.

치뽈 : (손을 뿌리치며) 필요없어. 너는 아직도 나를 믿지 못하고 있었던 거야. 나를 친구로 여겼던게 아니라 나쁜 악마로 보고 있었던 거야. 그래 좋아. 다들 그래 왔었으니까. 우리 아버지도 그랬고, 친구들도 그랬고, 이제는 너까지……. 그래 나는 나쁜 악마야. 악마라구.(흐느끼며 밖으로 나간다.)

순이 : (치뽈이를 따라 나가며) 치뽈아!  

 

 

4막

 

(어두운 산속,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순이가 치뽈이를 찾아 헤매고 있다.)

순이 : (울먹이는 목소리로) 도대체 어디를 간거지? 벌써 여러시간을 찾아 다녔는데도 보이질 않으니……. 이 빗속에 길을 잃은 것은 아닌지……. (이때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혹시 산짐승에게…….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한다.) 하느님, 제발 치뽈이를 보호해 주세요. 제발이예요.  

(이때 어두움 속에서 치뽈이가 서서히 나타난다.)

치뽈 : (조그마한 목소리로) 순이야.

순이 : (치뽈이를 발견하고는) 치뽈아! (달려가 치뽈이의 손을 힘껏 잡으며) 내가 잘못했어. 내가 잘못했다구.

치뽈 : (울음 섞인 목소리로) 아니야 내가 너무 옹졸했어. 정말 미안해.

순이 : 네가 악마라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무척 무서웠었어.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 넌 정말 착한 아이야. 아무리 네가 악마로 태어났다해도 그런건 이미 중요한게 아니야.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중요한거지. 너같이 착한 마음씨를 갖고 있는 아이가 어떻게 악마일 수가 있겠니. 넌 이미 악마가 아니야.

치뽈 : (금시 미소를 지으며) 정말 그럴까?

순이 : (같이 미소를 지으며) 그럼 어떤때 너를 보면 악마가 아니라 천사인것 같아. 이쁘고 귀여운 천사 말이야.

치뽈 : 나도 천사가 될 수 있을까? 하얀 날개를 가진.

순이 : 물론이지. 신부님이 그러셨는데 착한일을 많이 하면 누구나 다 천사래. 그러니까 착한 일을 많이 하면 틀림없이 너도 천사가 될 수 있을거야.

치뽈 : 난 꼭 천사가 되고 말거야.

순이 : 그래, 그래야지. 참! 내 정신 좀봐. 너 배고프지?

치뽈 : 쪼끔.

순이 : 어서 집으로 가자. 내가 맛있는거 차려 줄께.

(순이와 치뽈이가 서서히 사라진다.) 

 

“그날이후 치뽈이와 순이는 매일매일을 더욱 즐겁게 보냈습니다. 나물도 캐러 다니고, 개울가에서 고기도 잡고, 그러나 그런날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지는 않앗습니다. 불행의 그림자가 치뽈이와 순이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5막

 

(밭에서 치뽈이가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잠시 후에 악마 루포가 나타난다.)

루포 : 오래간만이야.

치뽈 : (깜짝 놀라며) 아니 네가 여기엔 웬일이야?

루포 : 그냥 놀러왔지뭐. 그동안 네 소식이 궁금했었는데 마침 잘됐다. 그동안 잘 있었니?

치뽈 : 잘 있었어. 넌 요즘 뭘하고 지내니?

루포 : 나야 뭐 하는게 맨날 그짓이지뭐. 나쁜짓 말야. 사실은 이번에도 아주 큰일을 저질렀지 뭐니.

치뽈 : 무슨 일인데?

루포 :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기 요 앞에 마을 하나 있지? 천주교 신자들이 많이 모여 사는 마을 말이야. 그 마을에 오늘밤 포졸들이 들이닥쳐서 모두 잡아갈거야.

치뽈 : (크게 놀라며) 뭐?

루포 : (간사하게 웃으며) 내가 어제 배교자를 하나 돈으로 유혹해서 관가에 일러바치게 했거든. 너도 구경하고 싶으면 오늘 저녁에 마을로 와봐. 대단히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될테니까.

치뽈 : 정말이니?

루포 : 정말이고 말고. 그럼 나중에 보자. 난 바빠서 먼저 가봐야 겠거든. (가려다가 잠시 멈추어서서.) 참! 한가지 알려줄께 있는데. 너희 아버지가 너때문에 대단히 화나셨다더라. 나쁜짓 배워오라고 지상에 보냈더니 이상한 여자 아이랑 놀고만 있다고. 하여튼 잘해봐. (말을 마치고 바람같이 사라진다.)

치뽈 : (털썩 주저 앉으며) 이거 정말 큰일인데. 요 앞에 있는 마을이라면 순이가 살고 있는 마을밖에는 없잖아. (벌떡 일어서며) 어서 가서 알려줘야겠다. (그러나 가려다가 잠시 멈추어 서서) 근데 이 일을 어쩌지? 남을 도와주면 아버지가 말씀하신대로 내가 죽을텐데. 이를 어쩌지? (다시 주저 앉으며) 아, 왜 나는 악마로 태어난걸까. (잠시 고개를 숙이고 고민한다. 그러다가 벌떡 일어서며) 그래, 내가 죽는게 두려워서 다른 사람의 위험을 모른체 할 수는 없어. 아버지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언젠가는 아버지도 나를 이해하실 날이 있을거야.(빨리 뛰어간다.)

 

 

6막

 

(마당에서 순이가 빨래를 널고있다. 이때 치뽈이가 숨을 헐떡이며 뛰어들어와 마당에 쓰러진다.)

치뽈 : 어서피해.

순이 : (치뽈이에게 다가가서) 아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치뽈 : (힘겨운 목소리로) 오늘밤에 포졸들이 들이닥쳐서 천주교 신자들을 전부 잡아간데. 어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다른 곳으로 도망가.

순이 : 정말이니?

치뽈 : 글쎄 정말이라니까. 내가…….(말을 잇지 못하고 가슴을 움켜쥔다.) 아!

순이 : 왜 그래 치뽈아?

치뽈 : 나는 상관하지 말고 어서 피해. 포졸들이 오기 전에 말야.

순이 : 같이 가자. 어떻게 너를 두고 나혼자 갈 수 있겠니?

치뽈 : (손을 저으며 숨가쁜 목소리로) 난 이미 틀렸어. 악마는 다른 사람을 도와 주면 죽게 된다고 아버지가 그러셨거든. 하여튼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순이 : (치뽈이의 몸을 흔들며 목메인 목소리로) 죽으면 안돼. 치뽈아!

치뽈 : 참. 나도 죽으면 천사가 될 수 있을까? 하얀 날개를 가진 천사말야.

순이 : 그럼. 되고말고.

치뽈 : 아니야. 우리 아버지가 그러셨는데 남을 도와주다가 죽는 악마는 죽어서 바람이 된데. 봄바람 말야. 순이 너도 내가 보고 싶어지면 언제든지 내이름을 불러. 내가 바람을 타고 금방 달려 올 테니까.

순이 : (치뽈이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치뽈아!

치뽈 : (고개를 떨구며) 그럼…….

(고개를 떨군 치뽈이가 그자리에서 먼지처럼 사라진다.)

순이 : (먼산을 향해 울부짖는 목소리로) 치뽈아!

 

[한국순교자영성연구소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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