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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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프란치스칸 영성26: 하느님 모상인 인간은 서로에게 거울과 모범이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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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1-17 ㅣ No.1526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인격 그리고 프란치스칸 영성] (26) 하느님 모상인 인간은 서로에게 거울과 모범이 돼야

 

 

9. 삼위일체와 관계성의 영성 ① 삼위일체 하느님과 관계성 안에서의 인간 이해

 

프란치스칸 영성가인 리처드 로어 신부는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관계성’이라고 규정한다. 상식적인 논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이신 하느님의 본질을 우리가 깊이 묵상해본다면 충분히 이해 가능한 말이기도 하다. 하느님이 삼위이시면서 동시에 한 분이시라는 삼위일체의 본질은 관계성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본질을 잘 설명해준다. 모든 존재는 그런 하느님의 본질이 각인된 채 창조되었는데, 특히 인간은 그런 사랑의 관계성이신 하느님 모상과 유사함으로 창조되었기에 인간이 지니는 품위는 ‘감히 하느님과 유사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아담과 하와가 빠진 자기기만(악마의 유혹)은 자신들의 근본적이고 고상한 품위의 본질을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이미 하느님과 같은 품위를 지닌 자신들의 본질을 저버리고 하느님과 같아지게 해줄 것이라는 거짓을 받아들인 것이다.

 

다른 모든 피조물도 관계성, 즉 존재의 위대한 사슬 안에서 살아가도록 창조되었지만, 특히 인간은 서로의 약함을 끌어안고 화해하고 조화를 이루며 삼위일체의 하느님처럼 살아가도록 창조된 존재들이다. 이것이 바로 다른 피조물과 인간의 현격한 차이점이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도 로마서 8장에서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허무의 지배 아래 든 것은 자의가 아니라 그렇게 하신 분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을 간직하고 있다”(20절)고 말한다.

 

일전에 넷지오-와일드(NetGeo-Wild)라는 채널에서 개미의 생태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개미들의 군집 생활과 여왕개미와 일개미들의 관계, 개미 무리 간의 전쟁 등을 잘 조명해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 중간중간에 개미들의 생태를 보여 주면서 동시에 사람들의 전쟁과 권력 다툼, 살인, 노략질, 인신매매 등의 모습을 중첩된 화면으로 보여 주면서 해설자가 “개미들이 꼭 사람들처럼 살아간다”라는 설명을 했다. 이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들었던 의구심은 ‘하느님이 왜 개미들을 저렇게 살도록 만드셨을까?’였다. 꽤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그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결론에는 이를 수 있었다. 그 해설자의 설명이 틀렸다는 것이다. 즉 ‘개미들이 사람들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개미들처럼 산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하느님처럼 살도록 창조되고 불린 것이지 개미나 다른 동물들처럼 살도록 창조된 존재가 아니다!

 

에페소서의 바오로 사도 말씀을 한번 잘 묵상해보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 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에페 1,3-4)

 

프란치스코와 클라라의 글을 보면 ‘양식(forma)’, ‘모범 혹은 모델(exemplum)’, ‘거울(speculum)’ 등과 같은 단어가 종종 등장한다. 이 말들은 모두가 관계성을 내포하고 있는 단어들이고, 서로 간에 사랑과 존중, 그리고 심지어는 생명(하느님의 생명)까지도 나누며 살아가야 하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잘 드러내 주는 단어들이다.

 

클라라는 자신의 유언에서 성 다미아노 성당을 수리하던 프란치스코의 예언자적 행위를 상기하고 있다. “와서 성 다미아노 수도원을 짓는 데 나를 도와주십시오. 사실 이곳에서 여인들이 살게 될 것인데, 하늘의 우리 아버지께서는 그들의 영예스럽고 거룩한 생활로써 당신의 거룩한 온 교회 안에서 영광 받으시게 될 것입니다.”(「클라라 유언」 4절)

 

클라라는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자매들에게 모두 거울과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에게뿐만 아니라 세속에 사는 이들에게 거울과 본보기가 되도록 우리 생활양식으로 불러주신 우리 자매들에게도 우리를 모형과 본보기와 거울로 삼으셨습니다.”(「클라라 유언」 5절) 우리는 하느님의 “동업자”요 그리스도의 지체의 약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이들로 불린 이들이다.(「아녜스에게 보낸 클라라의 세 번째 편지」 8절)

 

사실 우리는 서로에게, 그리고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자라나는 세상에 사는 모든 이들에게 양식(모델-forma)이 되어야 하는 이들이다. 빙겐의 힐데가르드 성녀도 비슷한 말을 하였다. “인간 역시도 하느님의 창조물이다. 그러나 오직 인간만이 하느님과 함께 창조사업에 협력하도록 불렸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1월 17일, 호명환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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