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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커피22: 길 잃은 양과 썩은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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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0-20 ㅣ No.616

[사유하는 커피] (22) 길 잃은 양과 썩은 커피


‘썩은 원두콩 몇 개쯤이야’ 하다 큰코다쳐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인류가 위협받고 있다. 세계기상기구가 최근 5년간 지구의 평균기온을 살펴봤더니 산업혁명 이전보다 1.1℃ 상승했다. 과학자들은 이 지표가 1.5℃를 넘어서면 지구환경은 기존 상태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거듭 경고해왔다. 호모사피엔스가 적어도 3만여 년간 살아온 환경이 바뀐다는 것은, 결국 종의 멸종을 경고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과학과 역사가 증명한다. 우리에게는 이젠 0.4℃의 여지밖에 없다.

 

지구의 신음이 깊어진다. 기후변화의 가늠자인 남극 빙하의 질량손실이 매년 250기가톤에 달한다. 올림픽 규격 수영장 1억 개를 채울 수 있는 양의 빙하가 해마다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해수면은 연평균 5㎜씩 상승하는데, 이는 아마존 강이 3개월간 바다로 흘려보내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2015~2018년 발생한 기상이변 94건 가운데 76건이 인위적인 기후변화에 영향을 받았다. 이 시기에 가장 극심했던 재해는 폭염과 가뭄이었다. 그린란드, 알래스카, 시베리아 등 북극지방에서까지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지난여름, 프랑스 남부는 역대 최고 기록인 46℃의 폭염으로 인해 그 주변에서 24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인류의 30%가 1년 중 적어도 20일을 죽음에 이를 수 있는 기온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마태오와 루카 복음으로 각각 전해지는 ‘되찾은 양의 비유’에서 지혜를 구해야 한다. 양 아흔아홉 마리를 위험에 둔 채 길 잃은 어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목자에게서 사랑의 본질이 목격된다. 작은 하나에도 소중함이 깃들여 있음을 발견해주며, 죄인을 인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심성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더불어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도 뭉클하다.

 

양은 시력이 좋지 않다. 양은 인간에게 개 다음으로 길들여진 동물이다. 1만여 전 캅카스산맥 일대에 서식하던 산양을 호모사피엔스가 반항적인 종들은 대를 끊는 방식으로 순종하도록 만들었다. 양은 무리를 이뤄 개가 이끄는 대로 졸졸 줄지어 다녔기 때문에 야생의 거친 뿔이 사라지고 시력도 퇴화됐다. 멀쩡한 양들로서도 목자가 길 잃은 양을 찾는 노력에 감사해야 한다. ‘한 마리쯤이야’ 하고 포기하는 구조로 공동체가 운영되면 전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는 것은 뻔한 이치이다.

 

1975년 월러스 브로커가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지구온난화를 경고하며 위험지표를 보여줬을 때, 지구공동체는 귀를 기울여야 했다. 목자가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는데 망설임이 없는 것은 양이 길을 잃게 되는 이유를 깊이 이해하기 때문이다.

 

커피업계도 ‘길 잃은 양의 비유’를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커피 생두에는 벌레 먹거나 곰팡이가 피어 악취를 풍기는 것들이 섞여 있다. 이를 모두 가려내야 향미뿐 아니라 건강에 좋다. 그러나 이런 결점두를 가려낼수록 무게가 줄어들고, 또 강하게 볶으면 악취를 숨길 수 있다는 유혹에 빠져 방관하기 쉽다. 일각에서 이런 관행이 거듭되는 사이 “커피란 자고로 고독처럼 써야 한다”는 그릇된 인식이 퍼졌다. 커피 포대에서 썩은 콩들을 보았을 때, 양이 길을 잃는 이유를 헤아리듯 결점두가 생기는 이유를 찾아내 바로잡아야 한다.

 

향미로 커피의 품질을 가늠하는 이치를 깨우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썩은 콩 몇십 개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상술은 곧 자신들에게 비수가 돼 되돌아온다는 점을 커피 공동체는 성경 구절만큼 무겁게 가슴에 새겨야 한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10월 18일, 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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