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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현대 영성: 오늘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길 - 영적 성장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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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1-11 ㅣ No.1515

[현대 영성] 오늘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길


영적 성장의 길 (1) 신앙생활에 위기가 찾아올 때 기억해야 할 것, ‘과정과 도구’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홀로 자식들을 키우며 하느님을 참으로 많이 원망했어요.” “본당 신부님께서 어떻게 저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사제라면 신자들 마음을 먼저 헤아려야 하지 않나요?” “성령 세미나를 하고 와서 치유를 받고 기쁨에 충만한 삶을 살았는데 두 주일이 지나니 다시 모든 것이 공허해졌어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 온 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무력함과 고통, 혹은 힘겨운 사람들로 인해 가톨릭 신자로서 살아가는 모든 것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는 고백을 듣곤 합니다. 외적으로 육신의 질병이나 삶의 고통 앞에 하느님을 원망하며 교회를 떠나는 이들도 있고, 내적으로 사제나 수도자 혹은 교우들로부터 상처를 받아 신앙생활을 포기하는 경우도 보게 됩니다. 영적으로는 신앙생활의 진보가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무기력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교회를 떠나거나 쉬는 이들이 영적인 측면에서 공통적으로 놓치고 있는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과정’과 ‘도구’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마주하게 되는 모든 것, 영적 기쁨과 충만함, 영적 공허와 어둔 밤, 교회 공동체 내에서의 교우들과의 친교나 갈등 등 모든 것이 예수님과의 일치를 위한 일종의 과정이요, 도구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완성된 이들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만남을 향한 여정 중에 있습니다. 자신이 아직 완성되지 못했듯이 다른 이들도 그 과정 중에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염두에 두지 못하고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고 다른 이들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그들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는 부족합니다. 인간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처럼’ 생각하기보다는 ‘예수님처럼’ 생각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모두는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사랑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완벽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죄인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가톨릭교회 안에서 성사의 도구들뿐만 아니라 주님 사랑을 배우는 다양한 길을 우리에게 선물로 마련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산을 넘고 넘어가는 이 길에서 정상에서의 영적인 기쁨을 맛보기도 하고, 골짜기에서의 어둠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함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로 인해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불편을 느끼기도 합니다. 길을 잃고 방황할 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나와 맞지 않는 힘겨운 사람 때문에 길을 걸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묵묵히 다시 주님을 향한 길을 걸어갈 때 또 다른 정상에 올라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주님의 은총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다음 산에 오르기 위해서 우리는 산을 내려가야 합니다. 사랑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날, 그 모든 여정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요한 14,6) 그분께서 함께하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모든 것이 다 사랑을 배우는 도구들입니다. 심지어 고통과 시련도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힘겨운 사람이 다가올 때, ‘저 사람만 없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저 사람을 통해 주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가?’ 여기에 귀를 기울이며 기도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 사람을 통해 영적인 성장이 이루어집니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왔을 때,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시련이!’라고 원망하기보다는 ‘이 시련을 통해 주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주시고자 하는가?’라고 더 큰 선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그 시련을 통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삶의 여정의 모든 것은 더 큰 사랑을 배우기 위한 과정이요 도구라는 것을 기억할 때 눈앞의 것에 집착하지 않고 영적인 자유로움 안에서 인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020년 10월 4일 연중 제27주일(군인 주일) 가톨릭마산 7면, 박재찬 안셀모 신부(분도 명상의 집)]

 

 

[현대 영성] 오늘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길


영적 성장의 길 (2) 성당에 왜 다니나요?

 

 

“성당에 왜 다니시나요?”라고 가톨릭 신자들에게 물으면 많은 이들이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라고 대답 합니다. 혹은 “어머니나 아내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서” “신자의 의무이기 때문에”라고 답하기도 하고, 교리를 조금 아는 이들은 “구원받기 위해서”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성당에 다니는 모습도 교우들에 따라 다양합니다. 미사만 참례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성당의 많은 단체에서 활동하며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또한 성당에서는 기도와 선행을 하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지만, 정작 집이나 직장에서는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습니다. 분리된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처음에 열심한 이들도 성당에 다니면서 기대했던 마음의 평화를 얻기보다는 오히려 사제나 교우들에게 실망해서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자신의 기도를 들어 주지 않으신다고 원망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성당에 왜 다니는 걸까요? 자기 자신의 내적 위안을 얻기 위해 혹은 타인이나 의무감 때문에 성당에 다니고 있다면, 그리고 이제는 제대로 성당에 다니고 싶다면 이 글을 통해 “진정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기를 빕니다.

 

사실 우리가 성당에 다니는 주된 이유는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하느님께 찬양과 흠숭을 드리고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께 공경을 드리는 것이 그분 나라 백성의 소임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구원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많은 신자들은 자신이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스스로’ 성당에 간다고 생각합니다(물론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유아세례를 받은 이들도 있습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하느님’을 넘어 ‘나의 하느님’을 만나는 과정에 대해서는 다음에 좀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위해서’ 성당에 다닌다고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나 중심’의 신앙에서 ‘하느님 중심’의 신앙으로 건너가는 것, 이것이 바로 영적 성장입니다.

 

하느님을 먼저 생각하고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16) 사랑이신 하느님을 가장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은 바로 우리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Sharing love)입니다. 나아가 우리가 사랑이 되는 것(Becoming love)입니다. 우리가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며 공적 예배를 드리고 개인 기도를 바치는 것은 하느님을 향한 우리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특별히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몸이 되시는 예수님과 사랑으로 일치하는 이 거룩한 순간은 우리 인간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은총의 순간입니다. 사랑이신 예수님과 하나 되어 우리가 사랑이 되는 순간이요,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지금 여기에서 미리 맛보는 순간입니다. 사랑이신 예수님과 하나 되어 ‘나의 사랑’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이웃 사랑입니다.

 

성당은 하느님의 사랑을 가르쳐 줍니다. 성당에서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엄청난 하느님의 사랑의 선물(특히 성사의 은총)을 나눠줍니다. 성당에서의 모든 다양한 활동들과 봉사는 우리가 예수님처럼 사랑하기를 배우는 장입니다. 성당에서의 모든 활동은 자신만을 위하는 사랑을 넘어 다른 이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사랑, 조건 없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을 배우기 위한 도구입니다. 나아가 예수님의 사랑은 성당 안에서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그 사랑을 나누도록 초대합니다. 예수님의 성령은 모든 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보편적인 사랑을 하도록 일깨워줍니다. 이렇게 우리가 예수님의 더 크신 사랑과 하나가 되어 갈 때, 성당에서의 신앙생활과 그 외의 일상생활의 모든 것이 예수님의 사랑을 배우고 나누는 도구임을 깨닫게 됩니다.

 

“성당에 왜 다니나요?” “예수님의 더 큰 사랑을 배우고 그 사랑과 하나 되기 위해서입니다.” [2020년 10월 11일 연중 제28주일 가톨릭마산 3면, 박재찬 안셀모 신부(분도 명상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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