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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성지순례를 다녀오다: 스페인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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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9-15 ㅣ No.1928

[성지순례를 다녀오다] “스페인 이야기들”

 

 

그 흔한 건국신화조차 없이 세상의 끝에서 세상의 중심으로 발전해 온 땅. 강렬한 태양빛이 대륙을 감싸고, 널따란 구릉과 눈부신 해변이 떠오르는 곳. 지중해의 강자 로마의 속주로 그리스도교가 시작된 곳이면서, 이슬람에 800년간 지배받은 곳. 중세 이후 찬란히 빛나는 신비영성의 대가들이 그 경이로움을 드러낸 곳이자, 마녀사냥의 잔인함이 곳곳에 배어 있는 곳.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

 

스페인은, 유럽의 본토에서 보면 평균 해발 2,000m가 넘는 피레네 산맥 아래 위치해 있는 탓에 때로는 아프리카의 일부처럼 여겨져 변방이라 불리던 땅이다. 지중해를 중심에 둔 유럽의 역사에서 그곳은 세상의 끝이었다. 피레네산맥을 제외하고는 모두 바다와 맞닿아 있으면서, 동시에 아주 가까이에 아프리카를 두고 있어 유럽과 아프리카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던 곳이기도 하다. 어쩌면 대륙의 기질과 해양의 기질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땅이지만, 때로는 두 개의 기질이 충돌하여 놀라울 만큼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기도 한다. 유럽에서 가장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이면서 동시에 이슬람 문화를 가장 복합적으로 내재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스페인은 건국신화가 없는 대신, 전설과도 같은 수많은 진짜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가톨릭의 문화와 영성은 여전히 그 이야기들의 맥을 이어주고 있다. 스페인 순례에서 만날 수 있는 이야기들 중 몇 가지만 간추려보자.

 

한니발의 전설은 기원전 3세기 초반에 지중해의 패권을 가지고 다투던 로마 카르타고의 이야기에 등장한다. 세계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장군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 한니발은, 스페인 땅을 카르타고에 복속시킨 아밀카르 바르카 장군의 아들로서 ‘최고의 전술 지략가’라 불린다. 그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작전을 통해 코끼리를 이끌고 피레네와 알프스를 넘어 15년 가까이 이탈리아 전역을 누비며 로마 제국을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갔다. 결국 고전하던 로마가 한니발의 본거지인 스페인 본토를 공격하는 방법을 택하게 되었고, 로마에 있던 한니발의 회군을 이끌어낸다. 승승장구하던 한니발이 스페인에서 로마의 명장 스키피오와의 자마 전투에서 패하면서 그의 전설은 아쉽게 막을 내리게 된다. 그는 카르타고를 떠나 셀레우코스 왕조의 군사고문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에도 여러 가지 설이 전해진다). 놀랍게도 한니발의 이름은 페니키아어로 ‘한니=은총’, ‘발=바알’이어서, 구약성서에서 등장하는 ‘바알(神)의 은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아름다운 고딕 성당으로 유명한 부르고스에는 엘시드의 이야기가 배어있다. 800년 가까이 스페인의 중남부를 차지했던 이슬람을 소위 ‘국토회복운동’으로 몰아내던 오랜 기간, 가장 뛰어난 용사이자 경건한 신앙인이었던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 장군에 대한 이야기이다. 11세기, 그는 카스티야 왕국의 귀족 출신으로 복잡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카스티야 왕국, 레온 왕국, 사라고사 왕국을 떠돌아다니며 용병으로 살아갔다. 마지막에는 그 누구도 주군으로 섬기지 않고 발렌시아 지역을 다스리다가 죽었다. 사실 엘시드는 우리가 아는 흔한 영웅과는 다르다. 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때로는 가톨릭의 군주를 때로는 이슬람의 군주를 섬기며 살아갔다. 한 명의 군주에게 목숨 바쳐 충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당시에는 다수의 용병대장이 그러했다. 가톨릭에서도 이슬람에서도 동시에 존경을 받는 거의 유일한 영웅이 바로 비바르 장군이다. 그를 부르는 호칭 ‘엘시드’는 아랍어이며, 존경의 의미를 담은 ‘주군’이라는 뜻이다.

 

서쪽 해안가에 위치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신앙인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듣게 되는 스페인의 도시 이름이다. 이곳에는 스페인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성인, 성 야고보의 무덤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12사도 중 한 분이신 야고보는 예수님의 부활 이후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서쪽의 세상 끝으로 여겨졌던 땅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떠났는데, 그곳이 바로 지금의 스페인이다. 성경은 성인의 전도 여행에 대해 보도하고 있지는 않으나, 예수님의 제자로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한 그의 열정에 대해서는 초세기부터 교회가 증언하고 있다. 스페인에서의 복음 전파 이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성인은 결국 헤로데에 의해 처형되었다. 이후 성인의 유해가 묻힌 무덤의 행방은 알 길이 없게 되었는데, 수 세기가 지난 후 스페인의 한 동굴에서 별의 인도로 그분의 유해가 발견되었고 당시 국왕이었던 알폰소는 150여 년에 걸쳐 성인의 유해를 모시는 대성당을 건설했다. 이곳의 지명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별빛 들판의 성 야고보)’인 이유다. 산티아고는 야고보의 스페인어식 표기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의 중앙 제대 아래에는 성인의 유해가 은빛 유해함에 모셔져 있다. 이후 844년, 이슬람과의 치열한 전쟁 중 벌어진 클라비호 전투에서 성인께서 스페인의 군대 앞쪽에 나타나 적군을 무찔렀다는 이야기가 증언되면서, 성인에 대한 신심은 스페인을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커가게 되었다. 그와 함께 스페인의 서쪽 끝 대서양 가까운 곳에 위치한 성인의 무덤을 향해 속죄와 희생의 증거를 온몸으로 딛고 걸어가는 까미노가 시작되었다. 그곳으로 향하는 많은 까미노 길 중 우리나라에서는 ‘까미노 프랑세스(프랑스 길)’이 가장 유명하다. 그러나 요즘에는 세계 3대 성지 중 하나인 까미노 길을 아무 의미도 없이 그저 트래킹처럼 해치우고 맛집과 무용담으로 가득한 책을 내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느님과 나, 성인의 도움과 나의 의지, 자연과 인간을 묵상하면서 긴 시간 동안 하느님께서 주신 나의 몸을 도구 삼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길이 바로 까미노임을 잊지 않아야겠다.

 

콜롬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에 대한 이야기는 세비야에서 들을 수 있다. 중세기까지도 유럽의 변방에 위치한 작은 나라였던 스페인이 전 세계를 아우르는 제국이 된 것은 아메리카의 발견이 시작이었다. 같은 이베리아 반도 내에서도 스페인보다 더 작은 나라였던 포르투갈이 아프리카를 돌아 동쪽으로 향하는 무역길을 개척하면서 세계사의 전면에 등장했다면, 거의 동시대에 스페인은 대서양을 지나 서쪽 해양길을 만들어 나갔다. 수천 년 동안 지구는 평평한 대지라고 생각했던 고정 관념을 깬 세계사적 사건이었다. 이미 기원 전 4세기경에 아리스타리코스는 지구가 둥글며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돌고 있다는 학설을 제기했었다. 그러나 이후 천년이 훨씬 넘는 시간 동안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천동설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중세에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지동설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이후 교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회 내부에서조차 지동설에 대한 연구는 끊이지 않았다. 콜롬버스는 지동설에 영향을 받았고, 우여곡절을 거쳐 당시 스페인의 여왕이었던 이사벨라의 후원으로 항해를 떠났다. 그리고 지금의 아메리카 대륙을 만나게 되고(그는 그곳이 인도의 동쪽이라고 생각했다), 유럽인들은 새로운 민족과 인종, 그리고 종교를 만나게 되었다. 물론 스페인이 무력을 통해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을 강제로 개종시키면서 생각지 못한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영화 「미션」을 추천한다. 영화는 아름다운 오보에의 선율과 함께, 복음전파의 사명을 가진 그리스도인으로서 선교의 개념에 관해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아빌라는 스페인의 중서부에 있는 도시이며, 해발 1,100m가 넘는 고도에 위치해 있다. 성벽으로 둘러싸여 멀리서도 천혜의 요새임이 한눈에 보인다. 그러나 아빌라는 그 도시 자체의 위용보다도, 16세기의 위대한 두 성인인 대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의 이야기로 더욱 알려져 있다. 루터의 종교분열이 시작될 때 여섯 살이었던 대 데레사 성녀는, 독일의 루터와는 다르게 ‘교회 내에서의 개혁’을 이루었다. 인간이 지닌 나약함이라는 한계와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가지는 위대한 잠재력, 이 양극단을 정확히 인지하고 몸으로 체현하신 분이시다. 완벽한 삶을 계획하는 인간이지만 또한 인간이 가진 나약성을 받아들여 겸손하게 완덕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아낼 수 있도록 하셨다. 카르멜 수도회는 십자군 시대에 이스라엘의 카르멜 산에서 엘리야와 성모 마리아의 모범을 좇아 시작되었으나, 그 엄격함이 시대를 지나며 흔들리고 완화되고 있었다. 그 혼돈의 시기에, 더구나 남자가 아닌 여자의 몸으로 성녀 대 데레사는 카르멜회뿐 아니라 전 세계 교회 영성의 새로운 획을 그은 위대한 스승으로 자리매김한다. 흐트러진 남자 카르멜회에 회의를 느끼던 젊은 사제 십자가의 요한은 대 데레사를 만나면서 자신이 살아가야 할 길을 깨닫고, 교회 역사상 가장 뛰어난 신비영성의 대가로 거듭나게 된다. 이 두 분이 아빌라 언덕 아래 위치한 카르멜 수도원의 고해소 안에서 철장을 사이에 두고 나눈 이야기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수동적이라는 단어는 흔히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이 두 분에게 수동적이라는 말은 매우 적극적인 내어맡김과 같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정화의 단계를 넘어 하느님께서 우리 자신을 직접 정화시켜 주시는 완전한 수동의 삶, 그것을 지향하는 그 신비로움을 이제 우리도 느껴 보아야 한다. 물질 만능주의로 치닫는 현대사회에는, 두 성인께서 비움과 나약함을 통해 완전한 하느님과의 합일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그 완덕의 길이 더더욱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예수회의 창설자, 적대자들에게 적그리스도라고까지 불리는 그에 대한 이야기도 스페인에서 들을 수 있다. 로욜라의 이냐시오로 불리는 예수회 창설자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진진하다. 귀족의 자제로 태어나 전쟁에서 다리를 다쳐 적군에게 포로로 잡힌 그는 보석금을 지불하고 풀려나게 되는데, 다리를 치료하는 동안 읽었던 성인전을 바탕으로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11개월에 걸친 순례의 시간을 통해 하느님을 체험하고 하느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기로 작정한 후 서른이 넘은 나이에 신학교에 들어가 십대 초중반의 청소년들과 함께 공부한다. 당시 최고의 학교인 파리 대학에 입학하게 된 그는 그곳에서 만난 6명의 동료들과 자신이 체험한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영성수련을 함께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는 예루살렘 순례를 목표로 작은 모임을 시작한다. 이 모임이 예수회의 모태가 된다. 이슬람 세력의 번창으로 예루살렘을 향한 순례는 좌절되고,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다시 한번 이 모임의 새로운 성격이 형성된다. 예수의 형제들로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들의 삶을 봉헌하기로 한 이들은 후일 바오로 3세 교황으로부터 정식 수도회로 인정을 받게 된다. 일반적인 수도회의 기본정신인 “가난, 정결, 순명”의 3덕에 “교회의 수장을 위한 충성”이라는 4번째 원칙을 회헌에 명시한 특별함으로 인해 예수회는 가톨릭교회의 적대자들로부터 지금껏 모함을 받고 있다. 그러나 예수회는 그간의 수도회가 중시하던 수도복과 기도생활보다도 내면적인 변화를 더 중요시하는 새로운 형태의 수도회로서 교회의 변화에 훨씬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일반적인 신자들의 상식보다도 훨씬 커다란 영향력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 이 시대에 와서야 첫 번째 교황을 배출한 것이 아이러니할 정도이다.

 

스페인은 드넓은 면적만큼이나 다양한 지역적 특성이 다수 존재한다. 그만큼 발길이 닿는 곳마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집시들의 애환이 담긴 플라맹고와 이제는 더 이상 열리지 않는 투우 이야기부터 몬세라트 수도원의 검은 성모님 이야기, 스페인 성모신심의 중심지인 ‘기둥 위의 성모’ 이야기,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건축, 피카소의 게르니카까지 열거하자면 끝이 나지 않을 정도이다. 이 많은 이야기들은 오늘날 여러 축제의 형태로 기억된다. 어느 사형수가 마지막 소원으로‘(기쁨을 나누는) 축제일이 아닌 날에 형을 집행해 달라’고 하였는데, 그러자 사형을 집행할 수 있는 날이 하루도 없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이다.

 

스페인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하루도 기쁨의 축제가 아닌 날이 없다는 말을 비틀어본다. “나는 단 하루라도 온 종일 다른 무엇 때문이 아니고 오직 하느님 안에서 기쁨에만 넘쳐 살았던 날이 있는가?”

 

[평신도, 2020년 가을(계간 69호), 김원창 미카엘(평화방송여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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