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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아버지의 집, 아름다운 성당을 찾아서: 청주교구 부강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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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7-20 ㅣ No.738

[아버지의 집, 아름다운 성당을 찾아서] 청주교구 부강성당


동서양 건축미 어우러진 성당, 종소리는 변함없이

 

 

한옥성당은 수녀원과 사제관을 거쳐 지금은 회합실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1962년 봉헌한 지금의 성당은 주변 조경이 아름다워 지역 명소로 꼽힌다.

 

 

근현대 건축물 중에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는 것들이 있다. 세종시 부강면에 자리한 청주교구 부강성당도 그중 하나다. 1957년 공동체 설립 때 성당으로 쓰였던 한옥과 그에 딸린 대문채, 그리고 1962년 지은 지금의 성당이 6월 국가등록문화재 제784호로 등록됐다. 한옥성당에서 북미식 성당에 이르기까지 충북 지역의 성당 변천 과정을 한 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점이 높게 평가됐다. 지난 60여 년, 부강 지역 복음화의 구심점이 된 부강성당을 소개한다.

 

 

옛 정취가 느껴지는 한옥성당

 

성당 입구에 걸린 국가등록문화재 등록 축하 현수막 건너로 기와집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성당이 어디야”라는 생각도 잠시, 대문에 들어서니 입구 좌우에 방이 있는 형태다. 입구채로 불리는 이 건물은 86㎡ 규모로 본당 사무실과 창고 등으로 쓰인다. 입구채를 지나 마당에 들어서면 204㎡ 규모의 한옥성당이 자태를 드러낸다. 한일자 형태의 건물은 지역의 부호이자 왕실의 재산을 관리했던 내장원 경위 김재식이 1934년 지은 집이다. 한옥성당 담 너머로 보이는 ‘ㅁ’자 형태의 한옥도 그의 소유로 성당은 원래 이 한옥의 부속 건물이었다고 한다. 1957년 본당 설립 때 주임이던 메리놀외방선교회 선슈나이더 신부가 매입해 임시성당으로 사용했다. 파란 눈의 신부가 지역 부호 집 문을 두드리며 뭐라고 첫 마디를 뗐을까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한옥성당은 1962년 새 성당이 지어진 후 사제관과 수녀원 등으로 사용하다 지금은 회합실로 쓰고 있다. 한옥성당의 외형은 비교적 잘 보존돼 있지만, 내부는 필요에 따라 여러 차례 공사를 거쳤다. 성당으로 쓰일 때는 내부를 터 한쪽에 제대를 설치하고 남녀 회중석을 구분했고, 수녀원으로 쓰일 때는 벽을 설치해 방을 여러 개 만들었다. 수녀원으로 사용할 때 설치한 방범창이 여전히 달려있다.

 

한옥성당 내부 외합실.

 

 

기와 지붕 덮인 로마네스크풍 성당

 

한옥성당을 나와 입구채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성당이 보인다. 두터운 벽체를 가진 석조 로마네스크풍으로 지어진 북미식 교회 건축양식이라는 게 문화재청의 설명이다. 성당 입구 위쪽은 반원 아치를 이루고 외부는 붉은벽돌과 시멘트로 마감돼 있다. 특이한 것은 지붕이 기와로 마무리된 것이다. 성당 건축 당시 한국의 전통미를 살리고자 한옥 지붕을 채택한 메리놀회 사제들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현재 지붕 기와는 보수 과정에서 중국풍 기와로 바뀐 게 아쉽다. 초기 성당 사진을 보면 지금과 다른 전통 기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성당의 반원 아치 입구 위에는 ‘천주교회 성모 성명 성당’이라 새겨진 석판이 붙어 있다. 성모 탄생 축일 후 4일째 되는 날을 성모 성명 축일로 지냈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에 따라 교회력에서 삭제됐다. 9월 8일 성모 성탄 축일과 중복되기 때문이다.

 

성당의 외형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긴 종탑이 성당 중앙 상단이 아닌 입구 오른쪽에 자리한 것이다. 사각기둥 형태의 종탑 상부는 종소리가 멀리 퍼질 수 있도록 네 벽면에 개구부를 뒀다. 성당 외형에서는 5개의 라틴 십자가를 확인할 수 있다. 상부 바로 아래 3면에 하얀색 라틴 십자가를 배치했고, 종탑 위에도 하나 있다. 마지막으로 위에서 보면 성당 자체가 라틴 십자가 형태를 띠고 있다.

 

종탑 안으로 들어가자 종으로 연결된 줄이 보인다. 종은 과거 성당에서 구호품을 나눠줄 때 쳤다. 지금으로 치면 사회복지 활동인 셈이다. 사제들은 미군 부대 등에서 목재 등을 실어와 인근 지역에 극빈자를 위한 주택 20가구를 건립하며 빈민 구호에 힘썼다. 구호품을 나눠주는 종소리는 더는 들을 수 없지만 지금도 종이 울린다. 미사 전 30분과 미사 전 5분에 종을 쳐 미사 시간을 알리고 있다. 하지만 시끄럽다고 민원을 넣는 이는 아무도 없다.

 

현 성당 내부.

 

 

25일 문화재 지정 감사 미사 봉헌

 

성당 외부와 달리 내부는 본당 설립 50주년에 진행된 리모델링을 통해 많은 것이 변했다. 벽과 천장, 바닥 등이 현대식으로 바뀌었다. 다만 나무 제대와 독서대, 나무로 만든 14처, 좌우에 난 나무 재질에 낡은 창만이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회중석에 앉아 눈을 감으니 열린 문을 통해 새소리가 들린다. 도시 성당의 웅장함과 성스러움에 익숙하기에 시골 성당의 소박하고 정갈한 느낌이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성당을 나와 계단을 내려가면 성모동산이 자리하고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성모동산이지만 조경에서 전문가의 솜씨가 느껴진다. 벽돌 하나, 나무 한 그루까지 조화를 이룬다. 본당 남성 봉사회인 크리스토폴회에서 성당 곳곳을 꾸미고 가꾼다고 한다.

 

성당 옆으로는 둘레만 2~3m, 성당 높이만 한 느티나무 역시 볼거리다. 성당을 봉헌하며 심은 작은 나무가 어느새 성당 높이만큼 자랐다. 굵직한 가지 위에 줄을 매어 그네도 설치했다. 주말이면 성당 어르신들이 나무 밑에 놓인 자연석을 의자 삼아 담소 나누고 아이들은 그네를 타며 재잘거린다.

 

신자들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는 성당들이 세월의 흐름 속에 사라지는 현실에서 부강성당은 국가문화재로 등록되며 우리 곁에 남게 됐다. 문화재 등록을 위해 백방으로 뛰고, 2년 가까이 전 신자들이 기도로 정성을 모아온 결과다.

 

하지만 숙제도 있다. 세월의 흐름 속에 파손되거나 공사로 변형된 성당을 복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영현 주임 신부는 “공동체만의 문화유산을 넘어 많은 시민이 찾는 문화유산이 되길 바란다”며 “정부가 주도하는 복원과 별개로 본당의 역사와 문화재로 지정된 성당을 알리는 리플릿을 제작하고 안내판을 세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부강본당은 25일 10시에 문화재 지정의 기쁨을 나누는 감사 미사를 봉헌한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7월 19일, 백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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