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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사목] 임계장 이야기와 교회: 노후 지옥, 안전하지 않은 노년 - 노인 노동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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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9-26 ㅣ No.1233

[경향 돋보기 - 「임계장 이야기」와 교회] 노후 지옥, 안전하지 않은 노년


노인 노동의 현실

 

 

‘꿈이었다. 모든 게 꿈이었다. 꿈에서 깬 현실은 지옥이었다.’

 

60을 바라보는 나에겐 노년의 꿈이 있다. 자식을 대화까지 졸업시키면 부모 역할을 끝내고, 그 이후는 부모와 자녀가 서로 기대지 않고 각자도생하면서 살자고 가족이 합의했다. 자신이 있었다. 60대 초반은 경비 일을 하고 나이가 들어 체력이 달려도 노인 일자리와 기초 연금을 받으면 그럭저럭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노인들을 만나 그들의 노동 이야기를 들으면서 꿈이 깨졌다. 이 글은 그동안 언론에 기고한 글과 상담, 간담회, 토론회를 통해 접한 이야기들을 재구성했다. 이름은 가명이다.

 

직장에서 은퇴한 뒤의 노동은 일정한 패턴이 있다. 55세 전후로 직장에서 타의 반, 자의 반으로 은퇴한다. 퇴직금과 모아 둔 돈으로 자영업을 시작하지만, 곧 (1년 안에) 망하고, 다시 일자리를 찾는다. 과거의 경험을 살린 직장은 찾을 수가 없다. 대부분 단순 노무직이다. 남성은 경비, 주차 관리, 여성은 청소, 간병, 육아 도우미 일을 주로 한다. 이들은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린다.

 

 

손주 재롱도 미워지게 하는 3박 4일 노동

 

“하루에 16시간 근무합니다. 임금은 6시간분만 받습니다. 10시간은 휴게 시간이랍니다.” 학교 야간 경비 일을 하는 배모 어르신은 휴게 시간이 있어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휴게 시간 이용 자술서’라는 것 때문이다.

 

“‘휴게 시간을 이용해 외출 및 자택으로 이동하기엔 비용 및 교통에 대해 번거로움이 발생하여 본인 자의에 의하여 근무지에 설치되어 있는 휴게 시설을 이용하여 휴식을 취하고 있음을 자술합니다.’ 이렇게 쓰인 자술서에 도장을 찍어야 해요. 말이 자술서지 강제 조항이지요. 동의하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거든요.” 학교 안에서도 휴게 시간에 마음껏 쉬지 못하고 순찰과 청소를 한다.

 

주말에는 3박 4일을 연속으로 근무한다. “평상시 근무시간은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예요. 그런데 주 5일 수업을 하면서 금요일은 오후에 근무 들어가면 토, 일요일을 꼬박 근무하고 월요일 아침에 퇴근을 하게 됐어요.”

 

“한번은 손주들이 안기면서 ‘할아버지, 주 5일 수업 하니 정말 좋아.’ 하는 거야. 근데 손주를 안은 손에 힘이 들어가더라고. 근무시간이 늘어나서 죽겠는데, 좋아하니까 나도 모르게 손아귀에 불끈 힘이 들어간 거지. ‘할아버지, 아파.’ 하는 소리에 ‘내가 지금 뭔 짓을 하는 거지. 왜 죄 없는 주가 미워지지.’ 생각하며 씁쓸해지더라고.”

 

3박 4일 일을 해도 휴일 수당, 연장 근로 수당, 야간 수당은 없다. 월 얼마로 정해 놓은 임금밖에 받지 못한다. 토, 일요일에 명절 연휴 3일이 끼는 날에는 한 번 근무에 들어가면 6일 뒤에 퇴근한다. 연중 하루라도 쉬려고 하면 대체 인력 인건비를 물어 줘야 한다. 배 어르신은 나이가 많아 일을 구하기도 어렵고, 자식들에게 도움을 받기도 쉽지 않은 노인들 사정을 악용하는 거라고 말한다.

 

“얼핏 연차 휴가 이야길 비췄는데 애초에 연차 휴가 발생분까지 돈으로 계산해 넣었다는 거야. 그러면서 ‘싫으면 그만두세요. 일할 분 많아요!’ 하지 않겠어, 한 달에 두 번만 쉬어 보는 게 소원이야.”

 

 

고용 불안과 비인격적인 대우

 

김헌수 어르신은 경비 일을 처음 하던 때 근로 계약을 2년으로 맺었다. 얼마 전부터 계약 기간이 1년으로 줄더니 지금은 6개월, 3개월 단위로 계약한다. 재계약할 때마다 해고당할까 봐 불안에 시달린다. 3개월 단위 계약은 경비를 옭아매려는 것으로 보인단다. 관리소장이 1년짜리보다 6개월, 3개월로 하면 ‘다루기 쉽다’고 말했다고 한다.

 

가장 힘든 점은 입주민의 ‘갑질’ 행위다. 청소나 분리수거로 자리를 비우면 “경비가 제대로 근무하지 않고, 근무지 이탈이 다반사”라며 사실이 아닌 말을 전하는 사람도 있다. 관리소장은 전후 사정을 잘 듣지도 않고 “무조건 입주민들에게 죄송하다고 해라. 말대꾸하거나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하지 마라.”라고 훈계한다. 입주민 방문 차량이 방문증을 발급받지 않고 주차해서 경고장을 붙이면, “왜 우리 집 손님 차량에 스티커를 붙이냐. 떼어 내라.”며 덧붙인다.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 못하니까 평생 경비하는 거야!”

 

폐기물을 스티커 부착 없이 내다 버린 입주민을 폐쇄 회로 화면(CCTV)로 찾아서 “혹시 폐기물 내놓으셨죠?” 하고 물으면 “아니, 누가 몰래 버려. 알아서 주민센터에서 스티커 발급받을 텐데, 누굴 양심 없는 사람으로 몰아세우는 거냐!”며 하지 않은 이야기까지 덧대어 화를 낸다. 동일한 주민과 두세 번 갈등이 반복되면, 그 사람만 보면 움츠러들고 피하게 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뉴스에 아파트 갑질 얘기가 나오면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우리 아파트 입주민들은 다 좋은 사람들 뿐이야.”라고 거짓말을 한다.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당신 없어도 일 할 사람 많다.”이다. 그러다 보니 일하다 다쳐도 말을 하지 못한다. 2018년 근로복지공단(1회 차 기준, 재해 발생 연도 기준 연령) 발표 자료에 따르면 60대 이상 근로자의 승인 사고 산재 비중이 2009년 12.2%에서 2018년 23%로 두 배 증가했다. 괜히 다쳤다고 하면 싫어할까 봐 자비로 치료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니, 이렇게 숨겨진 산재까지 합하면 통계보다 곱절은 많지 않을까.

 

휴게실이 따로 없는 곳에서는 경비 초소에 휴게 시간이라고 붙여 놓아도 문을 두드리고 택배 물건을 달라고 한다. “다음부터는 휴게 시간을 피해 주세요.”라고 말하면 “경비 월급 내가 주는데, 택배 물건 집 앞으로 갖다 달라는 것도 아니고 가지러 왔는데 이게 무슨 행패야!”라며 갖은 욕설을 퍼부어 댄다고 한다.

 

 

대, 소변 소리를 들으며 밥 먹고 쉬고

 

휴게실이 없어서 겪는 어려움은 고령 여성이 종사하는 대표적인 직종인 청소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휴게실이 없어서 도시락을 화장실에서 먹는 경우도 있다. 청소 도구를 두는 화장실 칸에서 먹다 보면 옆 칸에 사람이 볼일 보러 들어온다. 반찬으로 싸 온 감치, 깍두기 씹는 소리 날까, 냄새 날까 조바심으로 도시락 뚜껑을 닫고 입을 손으로 가리며 조심스럽게 먹기도 한다. 똥 냄새도 함께.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가 2018년 8월 서울 14개 대학 청소 노동자 휴게실 실태를 조사했다. 202개 건물 가운데 108곳은 휴게실이 지하나 계단 밑이었다. 17개 건물에 휴게실이 없었다. 휴게실이 없으니 화장실에서 밥을 먹고 쉬는 일이 생긴다. 69곳은 에어컨이나 냉방장치가 없었다. 작년 여름에 서울대학교 휴게실에서 67세 청소 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은 우연이 아니다.

 

여성 노인이 많이 일하는 또 하나의 직종이 간병인이다. 이들은 하루 24시간 간병을 하는 경우가 많다. 수면 시간 8시간을 빼도 하루 16시간 근무한다. 최저임금 8,350원으로 계산하면 133,600원을 받아야 하지만, 하루 얼마로 계산하여 24시간 간병에 하루 9-15만 원을 받는다.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들도 장시간 저임금에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는다. 성희롱, 성추행을 하소연하는 간병 노동자들이 많다. 중국 동포 이주 노동자들이 간병 시장에 많이 들어와 경쟁이 치열해지면서는, 환자들이 “너희들은 나 때문에 먹고 사는 거야.” 하며 자신의 요구를 잘 따르라는 압력을 은근히 표현한다.

 

 

박카스 병에 농약을 담아 온 노인

 

경비, 청소원, 간병 같은 일이 힘에 부치면 노인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직업은 정부가 제공하는 노인 일자리다. 복지 차원에서 하는 일이다 보니 급여가 한 달에 27만 원밖에 되지 않지만 하려는 노인은 많고, 일자리는 부족하다 보니 이런 일도 발생한다.

 

이혜자 어르신이 나를 찾아왔다. 대뜸 책상 위에 박카스 한 병을 올려놓는다. 나에게 주려는 줄 알고 “잘 먹겠습니다.” 하며 집어 드는 순간 어르신이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거 마시고 죽을 거야.” 박카스 병에는 농약이 들어 있었다.

 

어르신은 복지관에 노인 일자리 사업 참여 신청서를 냈지만 떨어졌다. 복지관 동 노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곳에는 참여 못 하게 된 노인들의 항의가 해마다 되풀이된다. 어르신도 따졌지만, 결정을 뒤집지 못했다. 절박한 마음으로 평소에 친분이 있는 나를 찾아와 일자리를 연결해 달라고 하소연한 것이다.

 

어르신은 30세에 혼자 아들을 키웠다. 노점에서 떡을 팔고,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더 일하고 싶었지만 65세가 되니 청소 일조차 못하게 되었다. 아들은 비정규직으로 일하는데, 어르신을 도울 형편은 아니란다. 그나마 65세가 되어 받는 기초 연금 25만 원과 노인 일자리 수당 27만 원이 최소한의 생계를 이어 주는 생명줄인데, 27만 원이 끊기게 생겼다. 한 달을 25만 원으로 살려니 엄두가 나지 않자, 차라리 죽어 버리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니 겁이 난다. 온갖 갑질과 욕설, 장시간 노동, 저임금을 견딜 수 있을까? 화장실에서 밥을 먹을 수 있을까? 노인 일자리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노인 노동 시장으로 진입이 두렵고 자신이 없다. 그렇다고 노후 지옥을 외면할 순 없다. 지금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은 누구나 노인이 되기 때문이다.

 

*고현종 – 50세 이상이면 가입 가능한 세대별 노조 ‘노년유니온’을 만들었고,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다. 노후 소득 보장과 노인 일자리 확대, 세대 간 통합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경향잡지, 2020년 9월호, 고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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