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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사유하는 커피24: 언어가 기도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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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1-01 ㅣ No.620

[사유하는 커피] (24) 언어가 기도인 이유


맛에 눈 뜬 인류, 언어 통해 사유의 세계로

 

 

인간에게 언어가 없다면, 우리는 기도를 드릴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해 보인다. 언어가 없다면 주님의 기도는커녕 문자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 최초의 대화는 창세기 에덴동산에서 뱀이 하와를 유혹하는 장면에서 나온다. 이 시기에 언어란 발성을 통한 것이 아니라 영적 교감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낙원에서 추방되면서 영적 교감 능력을 잃는 바람에 인류는 발성을 통한 소리를 언어로 삼아야 했다. 언어를 ‘소통의 도구’로만 본다면 언어는 곧 목소리이다. 인간에게 목소리가 언어가 될 수 있는 것은 지구였기에 가능했다. 지구 공기는 산소 21%, 질소 78%, 헬륨 0.1%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구성은 인간이 호흡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는 동시에 음파를 형성하기 위한 밀도를 만들어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언어의 본질은 소통을 아우르는 더 큰 무엇이다. 그것은 곧 언어가 ‘생각의 도구’라는 사실을 말한다. 이 부분을 커피 애호가로서 맛에 견줘 설명할 수 있다. 맛 역시 ‘생각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는 식음료가 무엇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뇌가 작동해야 한다. 좋은 커피를 마시고 기분이 좋을 수 있는 것은, 커피의 향미가 뇌로 하여금 행복하다고 생각하도록 이끌어 준 덕분이다. 맛을 보고 먹어도 되는지를 가려내는 것은 동물들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더 좋은 맛을 추구하고, 더욱이 그 과정을 통해 행복을 누리는 것은 인간만의 특권이 아닐 수 없다.

 

인류는 언제부터 맛을 추구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일까? 유력한 시기 중 하나가 17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가 불을 사용하기 시작한 즈음이다. 식재료를 불로 가공할 때 갈변 반응, 캐러멜 반응 등을 통해 다양한 맛이 생겨난다. 하지만 가열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도 매력적인 맛을 내는 먹을거리는 수두룩하다. 따라서 불이 인류에게 맛을 깨우치게 한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단언하긴 어렵다.

 

진화론자들은 불 사용이 인간의 뇌용량을 획기적으로 늘림으로써 생각하는 능력을 높여준 것으로 믿는다. 지능이 좋아진 인류는 생존을 위해 먹는 행동을 스스로 개선해 나갔다. 가열한 음식이 소화에 유리해 같은 양을 섭취하더라도 더 많은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체득했고, 이 과정을 거치면서 인류는 불의 맛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도록 진화했다. 인류의 DNA에는 마침내 유익한 식음료를 먹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장치가 새겨졌다.

 

불을 이용하고 맛에 눈을 뜬 호모 에렉투스는 한순간 사라지고 호모 사피엔스의 시대가 열렸다. 호모 에렉투스가 멸종된 이유에 대해 호모 사피엔스가 언어를 사용해 다른 종을 압도적으로 지배했다는 설이 있다. 호모 사피엔스들은 언어를 사용해 소통하며 신속하게 단체행동을 할 수 있었다. 이런 면모가 단시간 경쟁 종을 멸종시킬 수 있는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언어가 발휘하는 더 위대한 힘은 인간으로 하여금 사유할 수 있게 해줬다는 점이다. 언어가 곧 ‘생각의 도구’인 것이다.

 

노엄 촘스키를 비롯한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인류는 6~7만 년 전 돌연변이로 인해 두뇌 회로에 변화가 생기면서 언어능력을 갖추게 됐다. 언어는 단지 소통의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소통을 위해서라면 수화만으로도 가능하다. 창조론에서 볼 때, 하느님은 언어를 통해 인간을 묵상으로 이끌어 주셨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사유에 들어가고, 그 덕분에 보이지 않는 것을 마음속에 형상화한다. 보이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는 믿음은 결국 언어에서 비롯됐다. 신앙인에게 언어는 곧 기도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11월 1일, 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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