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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사회] 복음으로 세상보기: 정치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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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1-03 ㅣ No.1789

[복음으로 세상보기] 정치생활

 

 

사회교리의 기본 원리들을 토대로 사회 안의 여러 주제들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과 관점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번 달은 ‘경제생활’에 이어서 ‘정치생활’에 대한 문제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1) 정치생활에 대한 교회의 관점

 

사회 교리는 정치 책임자의 의무, 국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권리를 중요하게 여기며 민주주의를 높이 평가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국가를 견제하거나 국가와 연대하고 협력하는 시민 사회의 활동을 개인의 사회 차원을 발전시키는 가장 적절한 길이라고 봅니다. 또 교회와 국가는 저마다 고유 영역에서 자율성을 갖고 독립해 있으면서 서로 협력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에서 모든 정치적인 사상은 하느님께 받은 ‘인간의 존엄성’에 그 기준을 두고 있습니다. “정치 생활의 토대(척도)와 목적은 인간이다.”(간추린 사회 교리 384항) 인간이 모든 법과 제도, 사회, 국가가 존재하는 목적이자 원인이며 주체입니다. 정치 공동체는 이러한 인간을 위해, 곧 그들이 온전하게 성장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전체의 사회 조건을 마련하는 공동선 실현에 봉사하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공동선 실현의 핵심은 인권의 실현, 즉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정치는 흔히 폄하되기는 하지만,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므로 매우 숭고한 사명이고 사랑의 가장 고결한 형태입니다. … 저는 주님께서 사회 상황과 국민과 가난한 이들의 삶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정치인들을 더 많이 보내 주시도록 기도합니다!”(프란치스코 교황, ‘복음의 기쁨’ 205항)

 

 

2) 통치자와 정치 권위에 대한 성경(교회)의 관점

 

자기가 속한 정치 공동체의 합법적인 통치권자의 권한을 존중하고 주어진 의무를 행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세우신 질서에 따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국가의 통치권은 존경받고 인정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도덕적으로 잘못되거나 윤리 원칙에 어긋나는 통치자나 법에 대해서는 교회가 비판할 권리가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 모두를 위한 공동선을 보장하고 정의를 존중하는 통치자여야만 그의 권위는 정당합니다.

 

인간은 인권을 하느님한테서 받았고, 그 인간은 국가에게 권리를 부여하였으며, 국민의 권리는 국가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통치자가 지배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한계를 벗어나 스스로 신(神)이 되어 절대 복종을 요구하기까지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통치자를 하느님은 배격하십니다. 그러므로 인간 공동체를 다스리는 사람들은 자신의 권위가 하느님의 것임을 알고, 하느님의 통치 방식을 본받아 이러한 하느님과 인간을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봉사자로서 행동해야 합니다.

 

“교회는 항상 세상의 걱정에 마음을 개방해야 합니다. … 물질적이고 정치적인 부담에서 해방된 교회는 더 효과적으로 그리고 더 참된 그리스도교의 방식으로 세상 전체를 향해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베네딕토 16세 교황, 2011년 9월25일 프라이부르크에서 연설)

 

 

3) 양심에 따르는 정치생활의 의무

 

공권력의 명령이 도덕 질서의 요구나 인간의 기본권 또는 복음의 가르침에 위배될 때, 국민은 양심에 비추어 그 명령에 따르지 않을 권리가 있고, 그러한 거부와 저항은 도덕 의무이기도 합니다. 곧 통치 행위 또는 공권력의 행사가 실정법에 근거한 것이라도, 그것이 그보다 우위에 있는 자연법(하느님 법)의 근본 원리를 위배하는 것이라면, 그러한 공권력 행사에 저항하는 것은 정당합니다. 요컨대 인간의 양심을 저버리도록 강요하거나 인권 침해를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올 법이나 제도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그것에 복종하는 것만큼이나 도덕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법과 명령들이 윤리적 질서나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 입법되거나 선언된다면, 그런 권한은 양심을 구속할 힘을 갖지 못한다. 바로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보다 오히려 하느님께 복종해야 하기’(사도 5,29) 때문이다. … 법이 이성과 반대될 때 악법이 되며, 이 경우 법으로서의 존재는 중지되며, 폭력 행위가 된다.”(요한 23세 교황, ‘지상의 평화’ 51항)

 

 

4) 국민의 정치 참여를 위해 필요한 대중 매체의 역할

 

‘정보’는 민주주의에 적합하게 참여하기 위한 주요한 도구 가운데 하나입니다. 정치 공동체의 상황과 사실들, 제시된 문제 해결책을 모르고서는 정치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언론과 대중 매체를 통한 정보 전달도 ‘공동선’을 지향해야 합니다. 즉 대중 매체는 모든 사람에게 진실과 자유와 정의와 연대 의식에 근거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정보는 객관성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더 나아가서 대중 매체는 소수의 사람들이나 집단들과 유착해서도 안 됩니다. 언론이 특별히 기업이나 정부의 이해관계에 휘둘리거나 유착하게 되면 사회적 약자들을 포함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공동선을 추구하기는 힘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국민은 언론 및 방송 모니터링 활동을 통해서 언론과 대중 매체 정책에 관한 의사 결정에 참여하거나 시민운동을 통해 영향을 미쳐, 언론과 대중 매체의 민주주의를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참여하는 작은 시민 집단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결코 의심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유일한 진실입니다.”(마거릿 미드, 미국의 인류학자)

 

 

5) 가톨릭 신자들의 정치 참여와 그 기준과 방법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이렇게 기도하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며, 교회 밖 세상으로 나가 현세 질서를 신앙으로 쇄신하는 데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정치권력이 ‘인간’과 ‘공동선’을 위해 봉사하게 되고 법과 정의가 제대로 세워질 것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평신도들이 교회의 봉사와 임무에만 지나치게 강렬한 관심을 가짐으로써 교회 밖 세상, 시민 사회와 정치 공동체에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걱정 했으며, 바오로 6세 교황도 평신도들에게 현세 질서의 쇄신을 자신들의 의무로 알아 행동에 나서라고 요청한 바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교회의 사회교리를 실천하는 신앙인이며 시민입니다. 그렇다면,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서의 정치 참여를 위해 그리스도인다운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나눔, 비움, 섬김의 정신으로 가난과 고통에 특별히 주목하여 추구하는 공동선의 원리, 개인과 중간 집단들이 스스로 자기 일을 처리하고 다스리며 이들이 자기 의무를 완수하도록 상위 단체가 도와주는 보조성의 원리, 사회 정의와 평화를 증진하는 연대성의 원리, 그리고 인간 존엄성의 원리 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그리스도인 평신도가 정치 활동하는 데에 준거가 되어야 하는 항구한 핵심 원리들입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정치에 참여하여 세상 곳곳에 복음의 가치를 확산시키는 누룩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정치 문제에 대하여, 혹은 여러 가지 중요한 문제들을 볼 때, 복음 정신과 자기 양심에 따라 생활하고 행동해야 하며, 정치 활동을 통하여 더욱 정의롭고 인간 존엄과 더욱 일치하는 사회를 만드는데 이바지해야 합니다.

 

“하느님, 당신의 공정을 임금에게, 당신의 정의를 왕자에게 베푸소서. 그가 당신의 백성을 정의로, 당신의 가련한 이들을 공정으로 통치하게 하소서. 그가 백성 가운데 가련한 이들의 권리를 보살피고 불쌍한 이들에게 도움을 베풀며 폭행하는 자를 쳐부수게 하소서.”(시편 72, 1.2.4)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11월호, 이광휘 베드로 신부(서울대교구 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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