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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성당 이야기36: 유비와 평행을 찾아서 - 고딕건축과 스콜라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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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9-26 ㅣ No.752

[성당 이야기] (36) 유비(analogia)와 평행을 찾아서


고딕건축과 스콜라철학

 

 

이제 먼지 수북한 ‘고딕’의 책장을 열겠습니다. ‘로마네스크’가 ‘로마다운’이란 뜻이었다면, ‘고딕’은 게르만족의 하나인 고트족을 가리키는 ‘고트인의’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고딕이 고트족에서 발생한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고딕’과 ‘고트족’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고딕’이라는 이름은,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인들이 이 양식을 두고 게르만족의 세련되지 못하고 야만적인 것이라고 경멸하면서 붙인 것인데, 계속 사용하면서 후대에 공식 명칭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 고딕양식이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대 이후로 상당 기간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세기의 빼놓을 수 없는 미술사학자인 에르빈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 1892-1968)는 그의 역저 『고딕건축과 스콜라철학』(김율 역, 한길사, 2016)에서 고딕건축과 당대의 주류 사상이었던 스콜라철학의 관계를 이렇게 말합니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순전한 사실 영역에서 고딕건축과 스콜라철학은 결코 우연이라고는 할 수 없을 뚜렷한 동시발생을 보여준다. 그 누구도 이 동시발생을 못 본 척 넘어갈 수는 없다. 그래서 중세철학사학자들이 자신의 연구 재료에서 시대를 구분하는 방식은, 그들이 여타의 고려 사항들에 영향을 받지 않았음에도 중세미술사가가 시대를 구분하는 방식과 똑같았던 것이다.”(위의 책, 72쪽). 그는 로마네스크 건축이 노르망디와 잉글랜드의 엄격한 구조주의(→ 성당이야기 26회)에서부터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의 강렬한 시원적 고전주의(→ 성당이야기 32회)에 이르기까지 다양성과 불일치성을 드러낸 것과, 신학과 철학이 완고한 신앙주의(베드로 다미아노,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 → 성당이야기 21회)와 과격한 이성주의(투르의 베렌가리우스 → 성당이야기 23회), 그리고 시원적 인문주의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흐름의 복잡성을 갖는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이성과 신앙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란프랑쿠스와 성 안셀모의 선구적인 시도가 있었고(→ 성당이야기 30회), 아벨라르두스(Petrus Abaelardus +1142) 등에 의해서 그 원리에 대한 탐구와 진술이 처음으로 시도되면서 스콜라철학의 시대가 시작되었는데, 같은 시기에 같은 장소인 일드프랑스(Ile-de-France)의 생드니(Saint-Denis)에서 쉬제(Suger)가 고딕건축을 처음 시작한 것입니다.

 

이후 13세기에 접어들면서 역시 같은 장소에서 스콜라철학은 전성기에 접어드는데, 이때 샤르트르 등지에서 고딕건축 역시 전성기에 이르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는 성왕 루이 9세의 통치 기간(1226~70)에 속하는데, 알렉산더 할렌시스(1183~1245), 알베르투스 마뉴스(1193~1280), 성 보나벤투라(1221~1274), 성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 등이 활동하던 시기입니다. 이렇게 보면 “초기 스콜라철학과 대비되는 전성기 스콜라철학 고유의 특징은 초기 고딕건축과 대비되는 전성기 고딕건축의 고유한 특징과 뚜렷한 유비(類比, analogia)적 관계”(파노프스키, 같은 책, 75쪽)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20년 9월 27일 연중 제26주일(이민의 날) 의정부주보 7면, 강한수 가롤로 신부(민락동 성당 주임, 건축신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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