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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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신앙공부의 기쁨과 즐거움: 우리에게 어려움을 안겨 줄지라도 날마다 복음의 길을 받아들이는 것이 곧 거룩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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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2-08 ㅣ No.1502

[신앙공부의 기쁨과 즐거움] “우리에게 어려움을 안겨 줄지라도 날마다 복음의 길을 받아들이는 것이 곧 거룩함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닮는다는 것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라고 말할 때, 그 말이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에서 ‘믿는다’라는 동사(動詞)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믿는 것은 그냥 믿는 것이지요”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믿는다’라는 동사는 받든다, 신뢰한다, 따른다, 동의한다, 등등의 말들로 치환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맥에 따라서 ‘믿는다’라는 동사는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진술과 명제가 참이며 사실임을 믿는다고 말할 때, 그 의미는 동의한다,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인 누구를 믿는다고 말할 때, 그 의미는 신뢰한다는 뜻이 강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할 때, 그 의미는 매우 포괄적이고 다양한 뉘앙스를 지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신앙한다)’고 말할 때, ‘믿는다’는 동사의 의미는 머리(이성, 사유)로 안다는 것과 입으로 고백한다는 것을 포함합니다. 또한, 믿는다는 마음(가슴)으로 느낀다, 체험한다는 뜻도 포함합니다. 더 나아가, 믿는다는 몸(행동, 삶)으로 따르는 것과 실천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알고 고백하고, 예수님을 마음으로(인격적으로) 느끼고 체험하며,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며 예수님을 이 시대에 재현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믿는다는 것은 닮는다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설명에 의하면, 신앙(믿음)은 “하느님의 진리에 동의하는 지성적 행위”(‘가톨릭 교회 교리서’, 155항)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에 대한 앎(지식)과 하느님에 대한 교리에 동의하는 것이 강조됩니다. 즉, 믿는다는 것이 주로 ‘안다’와 ‘동의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물론 신앙은 하느님을 아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안다’는 동사도 다양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머리로 안다는 것과 마음으로 안다는 것과 몸(삶)으로 안다는 것은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머리로만 안다면 위선적이 될 위험이 있고, 마음으로만 안다면 변덕스러울 수 있고, 몸으로만 안다면 습관적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신앙적인 맥락에서 하느님을 안다는 것은 머리로, 마음으로, 몸으로 아는 것은 다 포함합니다. 결국,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하느님을 안다는 것 역시 하느님을 닮아간다는 뜻입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

 

신앙인이란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닮아서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는 것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신앙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일입니다. 복음서 전체에 예수님의 다양한 가르침과 모습이 나옵니다. 그 가운데서 예수님의 행복 선언은 매우 중요한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처럼, “행복 선언은 그리스도인에게 신분증과 같습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63항) 즉,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행복 선언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10) 행복 선언의 맨 마지막 선언(구절)은 앞의 일곱 구절들과는 대조됩니다. 가난, 온유, 슬픔, 의로움, 자비, 깨끗함, 평화라는 복음적 덕목들을 실천하면서 겪게 될 힘듦과 어려움에 대한 격려가 이 여덟 번째 구절에 담겨져 있습니다. 이 여덟 번째 선언은, 행복 선언의 내용에 따라 살면, 즉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면, 필연적으로 힘듦과 어려움에 부딪치게 될 것이라는 일종의 예언적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산다는 것은 기쁘고 행복한 일이지만, 그것을 수행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과 힘듦이 있습니다. 또한 그 삶의 모습이 모든 사람들에게서 다 환영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닮는 삶을 산다는 것은 때때로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며, “삶의 방식으로 사회에 도전을 제기하고 결국 성가신 존재가 되기까지”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90항)

 

 

십자가는 거룩함의 원천

 

예수님을 닮는 삶을 산다는 것은, 즉 복음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분명 행복하고 기쁜 일입니다. 하지만 그 길은 때때로, 아니 자주 십자가의 길입니다. “우리는 편한 삶을 열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마태 16,25)이기 때문입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90항) 물질적 번영과 쾌락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불편한 삶을 산다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거룩해진다는 것은 때때로 편안함을 버리고 불편함을 수용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길을 걷는 것은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고 정의의 길을 따르면서 우리가 어떤 힘들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더라도, 그 십자가는 성장과 성화의 원천입니다.”(92항)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는 편한 삶에 대한 욕망을 포기해야 할 뿐만 아니라, “권력에 대한 야심과 세속적 이해”(‘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91항)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필요로 합니다. 세속의 사람 관계는 힘(권력)의 관계입니다. 권력 욕망은 단순히 정치적 지위와 명예의 자리에만 작동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성찰과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없다면, 사람의 모든 관계는 욕망이 빚어내는 힘의 역학에 의해 불평등적이고 위계적이 될 위험이 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성 기득권에 대한 깊은 성찰과 여성에 대한 섬세한 이해가 없다면, 남성들은 잠재적으로(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여성에 대해 차등적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사람 관계에 작동하는 힘의 역학에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피부색, 나이, 성별, 그(녀)가 가진 돈과 권력과 지위와 명예, 등등 숱한 요소들이 관계를 차등적이 되게 합니다. 거룩해진다는 것은 이러한 관계의 역학에 대한 섬세한 성찰과 반성의 태도를 갖는 일입니다.

 

사람은 이해관계가 형성될 때 그(녀)의 본 모습이 드러납니다. 이해관계가 없을 때, 우리는 얼마든지 타인에 대해 너그럽고 훈훈한 모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발생하면, 우리는 계산적이 되고 이기적이 됩니다.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이해관계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거룩해진다는 것은 결국 숱한 세속적 이해관계 속에서도 주님을 닮은 방식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일입니다.

 

오늘날 사람은 누구나 다 호감을 받고 싶어 하고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힘의 역학 관계와 이해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세속 안에서, 예수님을 닮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복음의 길이 항상 사람들의 이해와 인정과 환영과 환대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피를 흘림으로써 박해를 당하든, 다른 교묘한 수단 곧 비방과 거짓말로써 박해들 당하든 오늘날에도 우리는 박해를”(‘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94항) 겪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닮는 삶이 때로는 “오명과 의심과 조롱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91항) 자본(돈)의 논리가 판치는 세상에서 복음(신앙)의 방식을 추구하는 것은 어리석어 보이고 조롱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세속 사람들은 가끔 아니 자주, 예수님을 닮는 삶을 추구하는 신앙인들에게 유난 떨지 말라고, (세속의 방식이 아닌 복음 방식을 택함으로써) 괜한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지 말라고 힐난하고 조롱합니다. 하지만 거룩해진다는 것은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는 삶을 사는 것은 분명 기쁨과 행복이지만, 때로는 어렵고 힘든 십자가의 길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12월호, 정희완 사도요한 신부(안동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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