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화)
(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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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별별 이야기: 이 사람과 결혼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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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2-27 ㅣ No.1023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54) 이 사람과 결혼해야 할까요?

 

 

남자친구와 결혼해도 좋은지를 묻는 자매가 있었다. 30대 중반의 엘리사벳은 이모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큰 충격을 받아 장례 후에도 안정을 찾지 못했다. 엘리사벳은 자신의 감정을 남자친구와 나누고 그의 위로를 받고 싶었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엘리사벳의 슬프고 우울한 마음에 공감하지 않았다. 오히려 천국에서 안식을 누릴 이모를 생각하면 기뻐해야지 왜 슬퍼하느냐며 핀잔을 주고, 확신이 없는 미숙한 신앙을 질책했다. 처음에 엘리사벳은 남자친구가 신앙은 깊지만, 타인을 위로한 경험이 부족해서 그렇게 말하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남자친구가 정서적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현실에서 자신의 감정을 회피하고 부정하기 위해 신앙 속으로 숨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엘리사벳은 결혼 여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세속적인 삶’과 ‘신앙적인 삶’은 엄격히 구별되는가? 인간적 감정은 세속적 삶의 부산물이기에 종교적 믿음과 신념으로 승화시켜야 하는가? 신앙인에게 질문을 던져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아마 “그렇다”는 응답과 “그렇지 않다”는 응답이 골고루 나올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성경에서 예수님의 인간적 감정을 드러내는 내용은 말씀의 전례에서 제외될 만큼 부정적으로 인식되었다. 성경에서 나타나는 예수님의 감정은 인간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예수님의 거룩한 신성을 손상할 우려가 있는 대목으로 생각했다. 예수님은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에게 “너희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지옥형 판결을 어떻게 피하려느냐?”(마태 23,33) 하시면서 독설을 퍼부으셨다. 게다가 성전에서는 장사하는 사람들을 쫓아내시고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다.(마르 11,15) 반면 사랑하는 라자로의 죽음 소식을 들으셨을 때는 크게 눈물을 흘리시다 못해 하느님께 청하여 그를 죽음에서 다시 살려내셨다.(요한 11,38-44)

 

예수님의 신성을 경외하고 싶은 사람들은 인간적 감정을 드러내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예수님은 인간적인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자연적인 죽음도 수용하지 못하며, 개인적인 감정으로 죽은 이를 살리시는 분처럼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사람들은 역사적 예수가 아닌 신앙의 그리스도를 믿고 싶어한다. 하느님의 신성이 인간의 감정으로 더럽혀져서는 안 되기에 예수님의 인간적 감정을 최대한 숨기고 싶어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도록 우리를 초대하셨다. 인간이 하느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다는 의미와 동시에 하느님의 신성이 인간의 인성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정한 인간이시며 진정한 하느님이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예수님은 당신의 신성과 인성으로 우리의 인간성을 신성한 것으로 만드셨고, 반대로 하느님의 신성을 우리의 인간성 안에서 체험하도록 하셨다.

 

진정한 신앙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는 사람일 것이다. 이모의 죽음 앞에서 진심으로 슬퍼하는 엘리사벳의 인간적 감정이, 이모는 천국에 들어갔으니 기쁨에 충만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박하는 남자친구의 신앙보다 훨씬 더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일 것 같다. 엘리사벳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가 신앙을 가지는 궁극적인 이유를 묻고 싶다. 구원을 받고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라는 대답보다는, 사랑의 하느님을 만나 사랑의 삶을 살기 위해서라는 말을 더 듣고 싶은 요즘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12월 25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마을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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