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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기도] 묵주기도, 세상을 구하는 영적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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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0-13 ㅣ No.1484

[특집 - 묵주기도의 힘] 묵주기도, 세상을 구하는 영적무기

 

 

고등학교 시절 방황하던 나에게 수녀님께서 책 한 권을 주셨다. 그 책 사이에 코팅된 상본이 있었는데 두 손을 모은 성모님의 얼굴이었다. 상본 속 성모님은 따뜻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아름다운 분이셨다. 그런데 상본 속의 그분을 어디선가 만나본 기억이 있다. 한참 떠올리다가 갑자기 터져나온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어릴 적 나는 많이도 아팠다. 허약한 몸은 자주 코피를 쏟았고, 계란 노른자처럼 뭉쳐진 두세 개의 핏덩이를 입으로 토해내곤 하였다. 어느 날 너무 아파 서럽게 울다가 어머니 팔에 안겨 잠이 들었다. 한번 누우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드는 내가 갑작스레 눈을 번쩍 떴다. 순간 내 눈에 들어온 한 사람. 깜짝 놀란 나머지 어머니 품을 파고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매우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그때의 기억은 잠든 어머니를 흔들어 깨우려던 순간이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기억에 남은 모습은 그 사람이 분명 손을 모으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 후로 크게 아팠던 기억이 없다. 그리고 십 년이 지나 고등학교 시절 내 손에 놓인 상본은 그때를 아주 생생히 떠올리게 했다. 상본을 액자에 넣어 책상에 두고, 매일 저녁 조금씩 성경을 읽고 묵주기도를 바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사제의 길을 걷게 되었다.

 

신부가 되고 일 년 반 보좌 생활을 지낸 뒤, 로마로 유학을 떠났다. 힘든 유학 시절 우연한 기회에 떠난 파티마 성지 순례. 어릴 적 내 기억 속의 성모님이 거기 계셨다. 아파 울며 잠들었다 갑작스레 깨어 만난 그분이었고, 수녀님이 넣어준 상본 속 성모님의 모습이었다. 내 육신이 죽음의 길을 가고 있을 때, 내 영혼이 죽음의 길을 가고 있을 때, 내 삶이 죽음의 길을 가고 있을 때, 그 길목에 성모님이 계셨다.

 

‘묵주기도의 모후’이신 파티마 성모님을 만나고부터 묵주기도에 대한 묵상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묵주기도의 사도로 내가 힘이 다하는 날까지 신자들에게 묵주기도를 전하겠다는 마음으로 전념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사제직을 수행하도록 소명을 주셨다면, 성모님께서는 묵주기도를 전하라는 소명을 주신 것이다.

 

묵주기도라 부르는 기도의 정식 명칭은 “Rosarium Virginis Mariae”(로사리움 비르지니스 마리애)이며 이를 번역하면 ‘동정 마리아의 장미 꽃밭’이다. 묵주기도는 기도의 장미꽃이 가득한 장미 꽃밭인 것이다. 장미는 꽃 중의 여왕이고, 묵주기도는 모든 신심 중의 장미이기에 첫째 가는 신심을 드러낸다.

 

묵주기도는 성령의 인도 아래 많은 성인들의 사랑을 받았고 교도권이 권장해온 기도이다. 1569년 성 비오 5세 교황은 묵주기도의 방식과 기도를 표준화하셨다. 차츰 시간이 흘러 환희, 고통, 영광의 신비를 각 5단씩으로 하여 총 15단으로 정해지고, 각 단은 ‘주님의 기도’ 한 번과 ‘성모송’ 열 번, 그리고 ‘영광송’ 한 번을 바치는 형식으로 고정된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재위 25년 첫날인 2002년 10월 16일에 ‘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Rosarium Virginis Mariae)를 반포하셨는데, 이 교서의 핵심은 복음의 요약이며 온갖 사회악을 물리치는 영적 무기인 묵주기도를 끊임없이 바치라는 권고였다. 이 교서에는 전통적인 세 가지 신비 외에 “세상의 빛”(요한 9,5)이신 그리스도의 공생활의 주요 신비들을 묵상하는 ‘빛의 신비’를 추가함으로써 묵주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신비 전 생애를 온전하게 묵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묵주기도는 ‘인체의 호흡’에 비유될 만큼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묵주기도는 구원의 역사를 효과적으로 집약하고 있으며 그 구원의 역사 속에서 어머니 마리아께서 하시는 여러 가지 역할을 잘 드러내고 있다. 묵주기도를 열심히 하면 성경의 신비를 모두 알게 되며 영원한 삶에 대한 신비를 깊이 묵상할 수 있는 것이다.

 

묵주기도를 바칠 때마다 매 단의 신비 주제를 선포한다.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신비 묵상을 생략하고 바로 소리 기도로 이어지거나, 형식적인 묵상을 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매 단의 신비를 낭독하거나 신비를 표현하는 적절한 표상을 사용하는 것은 이야기의 줄거리를 전개시켜 기도하는 이의 관심을 기울이며 묵상에 효과적으로 집중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교서에 ‘복음의 요약’으로써 신비 묵상이 잘 이루어지도록 전통적인 묵상 방식을 소개하고 있다(『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 29항-30항 참조).

 

첫 번째는 ‘신비 선포’이다. 신비를 선포함으로써 우리의 상상력과 마음을 그리스도 생애의 특별한 사건이나 순간으로 향하게 한다. 두 번째는 ‘성화상聖畫像을 통한 묵상’이다. 성화(聖畫, 이콘)나 성상聖像을 곰곰이 바라보는 묵상은 특정한 신비에 우리의 마음을 집중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세 번째는 ‘성경 봉독’이다. 묵주기도가 성경 봉독을 대신할 수는 없다. 오히려 묵주기도는 성경 읽기를 전제로 하고 장려한다. 네 번째는 신비 선포 주제와 관련된 성경 봉독이 이루어진 다음 ‘성경 말씀에 대한 묵상’을 하는 것이다. 신비에 대한 관련 성경 말씀을 자신의 신앙과 연결 지어 풀어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말씀의 경청과 묵상은 ‘침묵’으로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다. 침묵 가운데 신비에 얼마 동안 관심을 집중한 다음, 소리 기도로 넘어가는 것이 좋다.

 

묵주기도 신비 묵상에 대한 다섯 가지 방법은 이미 잘 아는 어떤 것을 단순히 묵상하는 데에서 오는 지루함을 막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기도의 순간에 우리에게 직접 말씀해주시도록 이끌어준다. 다섯 가지는 실제 순서대로 행할 수도 있지만,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선택하거나 생략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각 단의 소리 기도가 시작되기 전에 신비에 대한 묵상을 행한다는 것이다.

 

루르드와 파티마에서 발현하신 성모님께서는 세상의 구원을 위해 끊임없이 묵주기도를 바치라고 하셨다. 묵주기도는 다른 어떤 기도보다도 그리스도인이 청해야 할 기도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구성된 기도문과 묵상 주제인 신비 선포는 끊임없이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드러내주고 있다. 묵주기도 전체의 마침 기도라 할 수 있는 ‘성모 찬송’은 이렇게 기도를 마치고 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함께 이 신비를 묵상하며 묵주기도를 바치오니, 저희가 그 가르침을 따라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묵주기도의 의미이다. 묵주기도를 왜 바쳐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우리는 기도로 청하고 있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기도가 바로 묵주기도이다. 묵주기도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왜 묵주기도를 바치는지를 아는 것이다. 묵주기도를 가장 잘 바치는 방법은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이다. 삶의 굴곡마다 지켜주시는 어머니께서는 우리를 구원이신 당신의 아드님께 인도하여 주신다. 그 길을 놓치지 않는 것은 우리가 묵주를 손에 쥐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어려움에 빠져 있는 이 때, 가정은 작은 교회가 되어 세상의 구원을 위해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5월 성모성월을 맞이하는 신자들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감염병의 세계적 확산으로 여러 제약이 있는 이 때 가정 차원에서 드리는 묵주기도는 영성적 관점에서도 우리에게 더욱더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우리가 다시 한 번 영적 가정으로 더욱 하나 되어 이 시련을 극복하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단순하지만 심오한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봉헌의 시간이 된다. 묵주기도는 한 개인의 구원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평화를 위한 적극적인 구원의 기도이다. 나의 손에 쥔 묵주는 구원을 위한 가장 좋은 영적 무기가 된다.

 

* 박상운 - 전주교구 소속 사제. 현재 효자4동 주임 신부로 사목하고 있으며 『묵주기도 학교』 등을 펴냈다.

 

[생활성서, 2020년 10월호, 박상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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