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교육ㅣ심리ㅣ상담

[상담] 별별 이야기: 말은 그렇게 해도 속에는 이런 뜻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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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7-14 ㅣ No.1009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18) 말은 그렇게 해도 속에는 이런 뜻이… (상)

 

 

어느 날 생태마을에서 진행하는 심리영성 피정에 60대로 보이는 단아한 옷차림의 어머니와 30대 초반의 딸이 사이좋게 참석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강의를 경청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였다. 옆에 앉은 한 자매가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시간에 드디어 그 어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두 분은 모녀지간이신가 봐요?”

 

“네, 그래요. 얘는 시집간 딸인데 제가 먼저 피정에 참여하자고 해서 같이 오게 되었죠.”

 

“아이고 얼마나 보기 좋아요? 엄마와 딸이 함께 피정도 올 수 있고 말이죠? 저도 딸이 있는데 워낙 고집도 세고 신앙이 없어서 이런 피정에 함께 온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어요. 정말 좋으시겠어요…!”

 

“아…(약간 망설이며) 네…. 그런데요, 여기 딸과 함께 온 이유는 딸과 며칠 전 크게 싸워서 누가 정말 문제가 있는지 신부님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에요. 저는 딸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고요, 용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누가 정말 잘못했는지 신부님에게 들으려고 피정에 참석했답니다.”

 

어머니는 딸에게 상처를 받았고 서로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에게 심판을 내려주기를 청했다. 자신들이 싸운 이야기의 내용은 비교적 간단했다. 어머니는 지금껏 모든 것을 공유하고 함께한 딸이 갑자기 결혼 후 자신을 무시하고 소외시켰기 때문에 너무 큰 상처를 받아 용서가 어렵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시시콜콜한 것까지 의논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엄마에게 상의했어야 한다고 했다. 중요한 사안이란 은행 대출을 받아 딸과 사위가 자신들의 아파트를 구매한 것이었다. 어머니는 이렇게 중요한 결정에 자신의 의견을 묻지 않고 몰래 아파트를 사들인 것은 어머니를 무시한 처사로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하였다.

 

반대로 딸은 어머니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화를 내며 이해를 못 해주신다며 억울해 했다. 물론 어머니에게 상의를 드리지 못한 것은 죄송하지만, 출가한 딸로서 어머니에게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고 자기 일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오히려 효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산다면 어머니 성격상 분명 대출금 이자를 포함하여 여러 걱정을 하실 것이 분명하기에 어머니를 위한 마음으로 그렇게 한 것이지 절대 어머니를 속이려는 의도는 없었다는 것이다.

 

피정 중에 여러 사람 앞에서 나눈 모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떤 이들은 어머니 편에서 공감했고 어떤 이들은 반대로 딸의 입장을 이해했다. 결국, 오해로 빚어진 해프닝으로 결론을 내며 어머니가 좀 더 큰마음으로 딸을 이해해 주는 것으로 마무리가 지어졌다. 참가자들은 어머니의 큰 결심에 박수를 보냈고, 딸도 그나마 어머니의 서운한 마음을 풀어드린 것 같아 안도의 숨을 쉬는 듯 보였다.

 

어머니와 딸이 나눈 대화를 두고 심리학자들은 흔히 ‘이면교류’라고 말한다. 이면교류란 겉으로 말한 내용과 속에 숨어있는 뜻이 다른 대화를 말한다. 대인관계에서 이면교류를 깨닫고 이해하지 못하면 대부분 소통이 어렵고 갈등을 해결하기가 힘들어진다. 이 두 모녀의 대화가 이면교류라 전제하고 그 갈등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추론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즉 어머니는 자신을 무시하고 중요한 결정, 즉 아파트를 구매한 딸에게 상처를 입었다고 말한다. 딸은 일부러 구매 사실을 어머니에게 숨기려 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머니가 걱정하실까 봐 배려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 두 모녀의 대화 속에 만일 어떤 뜻이 숨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4월 5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19) 말은 그렇게 해도 속에는 이런 뜻이… (중)

 

 

라틴어 속담에 “행위는 존재를 따른다”는 말이 있다. 인간의 드러난 말과 행동은 숨겨진 마음을 반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외적 행위가 내면의 마음을 반영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드러난 말과 행동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들키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기 때문이다.

 

백화점 명품관 매장에 평범한 옷차림의 중년 여성이 들어왔다. 그녀는 누가 보아도 값비싸 보이는 외투를 입어보면서 매장 점원에게 말을 건넨다. “이 옷 얼마에요?” 그러자 점원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거기 옷에 붙어 있는 가격표 보시면 되는데요?” 그때 이 여성은 매우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내가 가격을 물었는데 가격표를 보라니요. 누가 가격표를 볼 줄 몰라서 물어보는 거예요?”라고 항의했다. 그제야 점원은 정색하면서 “아, 죄송합니다. 손님, 그 외투 가격이 할인해서 870만 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제야 손님은 “생각보다 비싸지 않네? 이 옷 한 벌 주세요”라며 선뜻 옷을 구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점원은 “이번 특별 기획가로 나온 것이라 한 번 구매한 후 교환 환불은 어렵습니다. 고객님!” 하고 응대했다. 그러자 손님은 “그래요! 처음엔 마음에 들었는데 자꾸 걸쳐보니 내 스타일은 아니네요?” 하면서 총총걸음으로 매장을 나왔다.

 

겉으론 위와 같은 대화가 오갔지만 실제로 이 두 사람의 속마음에서는 다른 의미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점원은 한눈에 이 여인이 자신의 매장에서 옷을 살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가격을 묻는 고객에게 가격표를 보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한 것이다. 이 말 속에는 “어차피 살 것도 아니면서 가격은 왜 묻는 거죠? 정 알고 싶으면 가격표 보고 나서 그냥 당신 갈 길을 가세요”라는 의미가 숨어있을 수 있다.

 

여인은 점원의 속뜻을 이해한 것 같다. 점원의 불친절에 항의했기 때문이다. 이 여인의 내면에는 “내가 가격을 알면 놀라서 도망갈 사람으로 보입니까? 나 당신이 그렇게 무시할만한 사람 아니다”는 의미가 숨어 있을 수 있다.

 

점원은 곧 예의를 갖추고 사과를 하면서 가격을 알려준다. 하지만 그 속내는 “아~ 그래요? 감당할 수 있으시겠어요”라는 빈정거림이 숨어 있을 수 있다.

 

여인은 역시 그 속뜻을 금방 알아채면서 기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고 “생각보다 비싸지 않네!”라며 선뜻 옷을 구매하겠다는 것이다. 그 말 속에는 “왜 놀랐습니까? 당신이 무시할 그런 사람 아니다”는 의미를 숨겼을 수 있다.

 

점원은 “교환 환불이 안 되는 상품인데 그래도 구매하겠느냐”며 마지막 초강수를 던진다. 꼼수를 부리며 자존심 세우지 말라는 속내가 엿보인다. 이쯤 되니 여인은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해 약이 바짝 오른 상태가 된다. 하지만 품위를 유지하면서 자존심을 끝까지 지켜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요! 처음엔 마음에 들었는데 자꾸 걸쳐보니 내 스타일은 아니네요”라면서 옷을 사지 않는 명분을 들이밀었다. 자신이 그냥 돌아가는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생각보다 옷이 마음에 안 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대화는 겉으로는 손님과 점원이 가격 정보를 주고받는 대목이지만, 속으로는 자존심을 건 한 판 전쟁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이면교류는 인격적인 만남과 진실한 소통을 방해한다. 이 점에서 두 모녀의 대화로 다시 돌아가 보자.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4월 12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20) 말은 그렇게 해도 속에는 이런 뜻이… (하)

 

 

어머니는 자신을 속이고 딸이 집을 샀다는 사실이 자신을 무시한 행동이기에 이해할 수도 없고 용서할 수도 없다고 하였다. 딸은 어머니를 속이거나 무시하려는 의도는 절대 없었으며 오히려 어머니가 걱정할까 봐 배려하는 마음에서 말씀을 미리 못 드렸다고 하였다. 겉으로 보기엔 모녀지간에 일어날 수 있는 단순한 오해의 상황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 갈등이 일어난 배경을 알고 나니 서로의 대화 안에는 겉으로 드러난 의미와는 사뭇 다른 의미가 숨겨 있었다.

 

딸은 넉넉지 않은 형편에 생활비도 절약하고 태어날 아이들을 돌보아줄 어머니의 도움도 받을 겸 해서 집을 마련할 때까지만 친정에 얹혀살기로 하였다. 하지만 신혼생활을 친정집에서 시작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생활비도 절약하고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았지만 사소한 일에서도 어머니와 분리가 되지 않은 생활환경 탓에 어머니의 관심과 사랑은 오히려 간섭과 잔소리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반면 어머니는 외동딸이 결혼해서 독립하지 않고 함께 산다는 사실에서 정서적인 안정을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손주가 생긴 이후엔 더더욱 자신의 삶의 의미와 보람을 체험하고 있었다. 손주를 잘 키우는 것이 그동안 잘해주지 못한 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보상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딸을 뒷바라지해주었다. 그러던 중 딸이 자신 몰래 집을 구매했다는 소식을 듣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게 된 것이다.

 

사실 어머니가 화를 냈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딸이 자신을 속이고 집을 샀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자신이 느끼고 있는 이 소소한 행복이 머지않아 깨져 나갈까 봐 두려운 마음이 든 것이 그 원인이었다. 지금까지 딸에게 희생했던 자신의 삶이 아무 의미나 보상도 받지 못한 채 허물어져 내릴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감정이 밀려오자 이상하리만큼 딸에 대한 미운 마음과 배신감이 밀려들기 시작하였다. 딸이 자신을 속이고 무시했다고 말하는 분노의 감정 안에는 사실 딸과 헤어지고 싶지 않은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그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딸에 대한 아쉬움과 서운함이 모두 엉겨 있었다.

 

하지만 딸은 어머니의 분노 이면에 숨은 이런 여러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무딘 사람은 아닌 듯했다. 딸은 어머니가 경제적으로 걱정하실까 봐 미리 상의 드리지 못했다면서 어머니를 달래고 있었다. 그 말 속에는 자신은 여전히 어머니의 편이며 어머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니 제발 마음의 안정을 취하시길 바라는 의미가 숨어 있었다. 어머니의 감정을 최대한 살피면서 푸실 수 있도록 안절부절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딸이 어머니의 드러난 분노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는 화를 내고 있었지만 사실 그 마음 안에는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리며 자신의 불안한 마음과 속상한 감정을 숨기고 싶은 어머니의 속마음을 이미 딸은 알고 있었다.

 

이처럼 이면교류는 마음속에 부끄러운 욕구와 감정을 숨기면서 명분을 유지한 채 사회적 관계를 맺으려는 의도로 사용된다. 하지만 이면교류는 가족과 같이 인격적 관계를 가져야 할 대상에게는 오히려 오해와 불신을 야기하고 진실한 만남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실제로 어머니는 딸과의 이면교류를 통해 자존심을 상하지 않은 상태에서 딸로부터 얻고 싶은 대답을 얻어내었다. 하지만 속에 숨어 있는 욕구와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소통이 아니었기 때문에 문제와 갈등은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

 

가족 안에서 발생하는 모든 갈등 유형은 대부분 이러한 이면교류에서 발생한다. 이런 이유로 성가정을 이루기 위해 가장 필요한 덕목을 하나 꼽으라면 나는 주저함 없이 ‘진실한 대화’라고 말하고 싶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4월 19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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