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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우리 성당 제대 이야기: 안동교구 사벌성당 - 작지만 아름다운 생명의 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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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7-19 ㅣ No.736

[우리 성당 제대 이야기 – 안동교구 사벌성당] 작지만 아름다운 생명의 제대

 

 

오는 7월 19일은 제25회 농민 주일이다. 1995년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서는 해마다 7월 셋째 주일을 ‘농민 주일’로 지내며 농업과 농촌의 소중함을 깨닫고, 땀 흘려 일하는 농민들을 위하여 함께 기도하고 실천하는 길을 찾아보고자 했다.

 

귀농과 귀촌하는 이가 많다지만 여전히 농촌 인구는 감소세고 고령화는 해묵은 고민거리다. 농촌에 기반을 둔 본당 가운데는 인구 감소로 공소로 강등되는 곳도 있다. 농민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안정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지역 교회가 튼실하게 자리 잡고 살 수 있는 활력 넘치는 농촌 교회의 모습을 기대할 수는 없을까?

 

 

그리스도의 행복이 깃든 ‘순례자’를 위한 성당

 

경북 상주시 사벌국면 덕담1길 90. 거기 야고보 사도를 수호성인으로 모신 작지만 아름다운 성당이 있다. 안동교구 사벌성당이다. 1954년 공소로 출발한 사벌 공동체는 상주 서문동본당, 계림동본당 등 소속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그러다 2003년에 9km 떨어진 퇴강성당과 함께 사벌퇴강본당으로 승격했다. 한 사제가 두 공동체를 담당한다.

 

낙동강 줄기를 배경으로 펼쳐진 산과 들이 멋진 풍경을 이룬 이 지역에서는 110여 년 동안 40여 명의 사제와 50여 명의 수도자가 나왔다. 가히 경북 지역 신앙의 못자리요, 신앙 공동체의 대를 이어온 유서 깊은 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여느 농촌 본당처럼 신자들의 평균 나이는 75세, 주일 미사 참례자 수는 60여 명 정도다.

 

지금의 성당은 50년 된 낡은 공소 건물을 헐고 새로 지었다. 옛 사벌성당에 우연히 들른 한 신자의 기부로 시작된 재건축은 본당 신자들은 물론 전국 각지의 본당과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이 힘을 보태 완성하셨다. 지상 1층, 약 110석 규모로 아담하게 지어진 성당은 2018년 7월 25일 야고보 사도의 축일에 봉헌식을 거행했다.

 

“사벌성당 신자들을 열악한 환경에서도 신앙을 굳건히 지켜 왔습니다. 이제는 신자들이 기쁘고 떳떳하게 신앙생활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당시 주임 박재식 토마스 신부는 새 성당이 농촌 신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하느님의 집일 뿐만 아니라, 많은 순례자가 찾아오고 이들이 예수님의 가장 행복한 순간에 함께하는 곳이기를 바랐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사벌성당은 가리비 형태다. 성당 손잡이도 가리비 모양이다. 실제로 가리비를 모티브로 설계했다. 가리비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야고보 사도의 상징이다. 야고보 성인이 복음을 전하며 걸었던 길, 야고보 사도의 유해가 모셔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까지 이어지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안내하는 표식도 가리비이며, 그 길의 순례자들을 상징하기도 한다.

 

 

생명 품은 청록색 제대

 

사벌성당은 순례자들이 순례하다 쉬며 기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성미술품을 품고 있다. 그 가운데 아담한 크기의 청록색(올리브그린) 제대가 있다. 아래는 좁고 위는 넓은 제대는 나무로 만든 뒤 청록색으로 칠했다. 조광호 신부(가톨릭조형예술연구소 대표)가 디자인했는데 독서대와 주례석 등을 같은 색으로 맞추었다. 스탠드형 촛대와 청동 십자가도 그의 작품이다.

 

“제대는 미사가 거행되는 곳이고, 미사는 생명을 나누는 일이므로 생명의 색인 청록색을 주된 색상으로 선택했습니다. 사람에게 안정감을 주는 색이기도 한데, 제대를 바라보는 신자들이나 순례자들이 편안한 분위기에 젖어 들게 하고자 했습니다. 작은 성당과 조화를 이루고자 아담하게 디자인하고 성찬의 식탁을 상징하는 오병이어를 정면에 새겼습니다.”

 

“제대 앞에 앉아 제대를 바라보면 편안해져요. 제대가 안동의 자연과 들판과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사벌성당의 김 가타리나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는 청록색 제대라 별다른 꽃꽂이 장식을 하지 않아도 아름답다고 말한다.

 

산티아고 순례길 곳곳에는 크고 작은 성당이 순례자들에게 휴식을 제공한다. 농촌 교회 신자들과 함께 성당을 지은 이들의 바람처럼 사벌성당이 순례 여정 중인 이들에게 편히 쉬면서 기도할 수 있는 신앙과 일상의 작은 휴식처이기를 바란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모여드는 축제의 잔칫상이 되어 여기서 저희가 주님께 온갖 걱정과 짐을 벗어 놓고 새로운 마음의 힘을 얻어 새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제대 봉헌 기도 중에서).

 

[경향잡지, 2020년 7월호, 글 · 사진 김민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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