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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커피10: 그리스도인의 음료인가, 무슬림의 음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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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7-14 ㅣ No.586

[사유하는 커피] (10) 그리스도인의 음료인가, 무슬림의 음료인가


인류는 본래 하나였기에

 

 

솔로몬 혈통을 잇는 에티오피아 그리스도인들의 커피가 어떻게 예멘 무슬림의 음료가 됐을까? 커피가 이질적인 두 종교 사이를 넘나든 사연은 역설적으로 양측의 동질감을 되새기게 한다.

 

홍해를 사이에 두고 종교뿐 아니라 지리적으로 갈라져 있는 에티오피아와 예멘은 솔로몬 시대인 기원전 955년부터 840여 년간 ‘시바(Sheba)’로 불리는 한 왕국이었다. 시바의 전성기는 잡신을 숭배하던 여왕 마케다가 솔로몬을 찾아가 유다교를 받아들임으로써 꽃피었다고 전해진다.

 

이 시기는 칼 야스퍼스가 제창한 ‘축의 시대(Axial age)’이기도 했다. 세계의 주요 종교와 사상이 일제히 등장한 이때 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에 걸쳐 왕국을 형성한 시바에도 마침내 유일신을 따르는 움직임이 일었다. 유다 지역에서는 이사야 예언자가 동정녀에게서 메시아의 탄생과 하느님의 구원 약속을 설파했다. 그즈음 아랍인도 등장한다. 당시 아라비아반도의 끝 부분에 거대한 무리가 살고 있었음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이룩한 수메르인들이 기록으로 남겼다.

 

예멘에 둥지를 튼 아랍인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들은 유다인들과 다른 사람들이 아니었다. 아랍인은 셈어족(Semitic languages)을 사용했다. 함, 야펫과 함께 창세기에 등장하는 노아의 세 아들 중 한 명인 셈의 후손들이라는 이야기이다. 아라비아반도에 살던 셈족의 일부가 기원전 3500년경 북상해 나일 강 인근에 살던 함족(아프리카인의 조상)과 어우러지면서 이집트인이 되었다. 기원전 3000년경 아라비아 사막을 횡단해 메소포타미아로 진출한 셈족의 한 분파가 바빌로니아인의 조상이 되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또 기원전 2500년경 팔레스타인에서 북부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이란 고원에 이르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정착한 셈족은 아무르인이 됐으며, 레바논과 시리아 등 지중해 동부 연안으로 이동한 무리는 페니키아인으로 정착했다. 셈족의 이동은 계속되었다. 기원전 1400년경에는 시리아 남부 지역에 거처를 정한 무리가 아람인(Aram)을 형성했고, 시리아 남부와 팔레스타인 지역에 정착한 분파는 유다인의 조상이 되었다.

 

민족들이 보이지만 뿌리를 찾아 올라가 종교로 묶으면 손가락으로 꼽힐 정도로 단순하게 정렬된다. 종교는 민족을 분열시키는 게 아니라 통합시키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가톨릭, 개신교, 유다교, 콥트교, 이슬람교는 셈으로 모이고, 그의 아버지 노아를 통해 9대를 올라가 아담에 닿는다. 천지 창조의 순간이다. 인류는 하나였다.

 

이런 배경을 알고도 커피가 그리스도인들의 문화인지, 무슬림의 문화인지를 따지는 소리는 잡음처럼 들린다. 에덴의 동산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메소포타미아와 레반트, 동아프리카 일대는 인류 문명의 근원지이자 유일신 사상과 그리스도교가 탄생해 왕성하게 퍼진 곳이다.

 

근원을 찾아가며 인류가 갈등을 치유하고 동질감을 회복하는데 성경보다 좋은 게 없겠지만, 커피 인문학에도 기대를 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선악과, 다윗, 솔로몬을 거쳐 마호메트, 십자군 전쟁, 오스만 투르크, 클레멘스 8세 교황, 베니스 상인, 청교도 혁명, 프랑스 혁명, 예수회의 라틴 지역 선교 활동, 미국의 건국으로 이어지는 커피 역사의 파노라마는 성경의 장면, 그리고 선교의 역사와 오버랩 되는 비율이 꽤 높다.

 

매일 성경은 읽지 않아도 커피는 하루도 거르지 않는 세태에서, ‘말씀’을 커피가 걸어온 길에서 더듬어내는 것은 진실에 이르는 또 다른 길이 되지 않을까. 커피가 특정 종교와 민족의 전유물이 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인류가 다양한 방식으로 분열되기 전부터 우리 곁을 지켰기 때문이다. 인류가 본래 하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깜빡깜빡 잊고 살아간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7월 12일, 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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