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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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우리를 이끌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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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2-07 ㅣ No.717

[레지오 영성] “우리를 이끌어 주소서!”

 

 

프랭크 더프는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그리스도를 위한 외지 순방(Peregrinatio Pro Christo)’ 회의에서 공개 연설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레지오 마리애 창설 모임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성모님을 향하여 “우리를 이끌어 주소서!”하고 기도함으로써 성모님께서 그들을 지구상의 모든 나라로 데려가는 캠페인이 시작되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창설 모임에 참여했던 젊은 여성들은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가 지은 ‘참된 신심’에 대한 토론을 통해 ‘하느님의 계획안에서 성모님의 역할’을 배우고 성모님의 위대하심을 깨달았으며, 성모님을 위해 기꺼이 무엇이든 하려는 의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모임으로 성모님과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였습니다. 성모님이 너무나도 엄청나게 크신 분이셨기 때문에 그들은 성모님을 새로운 활동의 수호자로만 제한할 수가 없었고, 성모님의 호칭에 담겨 있는 성모님의 모든 지위를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서, “우리를 이끌어 주소서!”하고 성모님께 자신들을 맡김으로써 성모님의 지휘를 받는 군대가 되었습니다.

 

레지오가 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성모님께서 단원들을 이끌어 주셨기 때문이라고 확신하면서, 프랭크 더프는 전교를 구실로 성모님을 공격하는 것에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어느 정도의 권위와 많은 식견을 가진 사람들이 성모님에 대한 교리, 특히 무염시태와 몽소승천 교리가 개신교 신자의 입교를 가로막는 장애라고 문제 삼는 것을 강력히 비난하였습니다. 성모님을 끌어내리려는 시도는 전교에 도움이 되기보다 오히려 교회를 볼품없게 만드는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고 평가하였습니다.

 

프랭크 더프의 마지막 연설은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가톨릭교회 신앙에서 차지하는 성모님의 위치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였는지 보여줍니다. 그는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전교 지역을 할당할 목적으로 집회를 열 때 그들 한가운데 성모님을 모셨다고 생각하며, 세계 모든 지역을 전교하려고 했던 사도들의 열성을 레지오가 이어받기를 원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이 극소수인 아시아 대륙에 성모님 모성의 영향력을 어떻게 물 흐르듯이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심하도록 당부하였습니다.

 

 

단순하게 시작한 일에 하느님의 뜻이 작용

 

레지오 마리애 창설 모임의 모습과 분위기는 교본 ‘제1장 명칭과 기원’에도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프랭크 더프는 평범한 젊은이들이 그저 단순하게 시작한 일에 하느님의 뜻이 작용하고 있었다고 놀라움을 표현합니다.

 

레지오가 창설될 무렵 더블린은 물론 아일랜드 전역에 빈곤이 만연하여 굶주림을 피해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고, 한 끼 식사 때문에 신앙을 버리거나 매춘으로 내몰리는 비참한 상황이 빈번했다고 합니다. 국가와 사회가 돌보지 못하는 빈곤자를 위한 빈첸시오 역할은 점점 더 커졌으며, 프랭크 더프가 입회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협회는 두 개로 확장되어 새로운 협의체의 책임이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는 기존의 활동 외에 여성들의 지원을 받아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그들은 빈첸시오회관에서 함께 활동했기 때문에 회원들의 활동 보고를 들을 수 있었고, 그런 가운데 매트 머레이가 빈민법에 의해 설립된 유니온병원에서 활동한 매우 인상적인 보고도 들었습니다. 매트의 보고에 감동을 받은 몇몇 여성들은 그들도 병원 봉사를 할 수 있도록 프랭크 더프에게 요청을 했고, 레지오 마리애 창설 모임은 평범한 젊은 여성들이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 환자들에게 봉사하려고 ‘단순하게 시작한 일’로 출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브레드쇼 신부는 창립 단원들의 활동 모습을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출발 때부터 단원들은 평신도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사목적 사도직에 착수했다. 그 당시에는 선례가 없었기 때문에 획기적이었다. 그들은 몽포르의 참된 신심에서 배운 것을 생활 속에서 결합하려고 했다. 따라서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성모님께 봉사하는 실천적 봉사가 강조되었다. 그들이 만나는 모든 이들 안에 계신 그분의 아들 예수님께 봉사함으로써 성모님께 봉사하려고 했다. 그들은 병원에 있는 가난하고 불쌍한 환자들에게서 고난 받으시는 그리스도를 보았고 혼자 사는 사람들 속에서 외로우신 그리스도를 위로하려고 했으며 그들이 만나는 모든 청소년에게서 소년 예수를 만나려고 했고 모든 죄인 속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그리스도를 찾으려고 했다.”

 

 

인간 자신의 구원을 위한 최대한의 기여

 

레지오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인정한 최초의 평신도 사도직 단체로 알려졌지만, 초창기 레지오가 평신도 여성 단체였다는 사실은 주목받지도 못했습니다. 이는 성모님께서 구원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셨지만, 성경에는 거의 언급되지 않은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초창기 여성 단원들의 활동을 소개하면서 “몽포르의 참된 신심에서 배운 것을 생활 속에서 결합하려고 했다.”는 브레드쇼 신부의 설명은 역사적인 사실보다 이후에 등장한 남성 레지오를 포함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랭크 더프는 어느 정도 지식을 쌓지 않고는 ‘참된 신심’을 이해하거나 실천하기 어려웠다고 자신의 경험을 피력한 적이 있습니다. 프랭크 더프의 강의를 들은 단원들도 그가 보기에 별로 이해한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활동을 전개하면서 보여준 행동은 프랭크 더프도 따라가기 어려울 만큼 ‘참된 신심’을 잘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모 신심을 지식으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본성적으로 실천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이를 보호하고 기르기에 적합한 여성의 특성을 발휘하여 봉사하는 가운데 그들은 성모님의 모성애를 사람들에게 전달하였고, 그들 자신도 활동하는 가운데 성모님의 현존을 체험하였을 것입니다.

 

최초의 레지오가 여성 단체였다는 사실이 레지오의 창설자로서 프랭크 더프의 입지를 위태롭게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요셉 성인이 없는 성가정이 불가능한 것처럼, 레지오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교회 안에서 자리를 잡고 세상으로 뻗어나가는 과정에서 프랭크 더프 없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여성 단원들이 성모님의 이끄심을 따라갈 수 있도록 지켜주고 도와주는 역할에 충실했던 프랭크 더프는 요셉 성인에 비교할 만합니다. 요셉 성인이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 성모님을 보호하고 예수님의 양부가 되었던 것처럼, 프랭크 더프도 평신도로서 자신의 가정을 꾸리는 대신에 레지오에 온전히 헌신함으로써 레지오가 성모님의 군대가 되게 하였고, 가톨릭교회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모님의 모성이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하였습니다.

 

프랭크 더프는 생애 마지막 연설에서 성모님의 지위를 옹호하고, 하느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에 성모님을 협조자로 선택하신 이유를 설명하면서 단원들에게 당부하였습니다. 즉 하느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인간 자신이 최대한 기여하도록 허락하셨으니, 성모님께서 응답하신 것처럼 단원들도 최대한의 봉사로 응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당부는 바오로 사도가 필립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십시오.”라고 권면한 것과 같습니다. 모든 레지오 단원은 가장 모범적으로 하느님의 뜻을 따르셨던 성모님에게 기꺼이 자신을 의탁하고, “우리를 이끌어 주소서!”하고 창립 단원들처럼 기도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에 충실함으로써 성모님 모성의 영향력을 온 세상에 흘러넘치게 해야 하겠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12월호, 권용오 마티아 신부(안동교구 상주 가르멜 여자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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