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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수도원 이야기: 위대한 침묵 - 카르투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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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9-26 ㅣ No.656

[수도원 이야기 – 위대한 침묵] 카르투시오회

 

 

궁극의 봉쇄 수도회

 

수도원 개혁 바람이 거세던 1000년대 후반, 수없이 생겨난 축성생활 공동체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지 않는(마태 6,31 참조) 보석 같은 수도원이 있었다. 1084년 브루노 성인(1032?-1101년)이 프랑스에 설립한 봉쇄 수도회, 카르투시오회(Ordo Cartusiensis)다.

 

혹시 이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는가. 한국에서는 2009년 개봉한 필립 그뢰닝 감독의 영화 ‘위대한 침묵’의 주인공이 그들이다. 이 영화는 프랑스의 알프스에 있는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에 사는 카르투시오회 수사들의 일상을 담았다.

 

‘세상은 돌지만, 십자가는 우뚝하다.’(Stat erux dum volvitur orbis.)를 신조로 하는 이들은 베네딕토의 「규칙서」 대신 자체적인 회원을 따랐으며, 철저히 은수하는 삶을 지향했다. 회헌의 정신은 1000년에 가까운 시간 사이에도 바뀌지 않고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고독과 전례로 엮인 공동체의 하루

 

영화가 잘 보여 주듯, 회헌에 따른 그들의 하루는 전례의 연속이다. 전례는 묵상, 성가, 찬미가, 독서, 그리고 기도들로 구성되어 있다. 다음 쪽 사진 아래, 성 후고(1135/40-1200년)가 작성한 카르투시오회 수도원 하루 일과를 보라.

 

아침기도 시간이 얼마나 소요되는지는 그날의 전례력에 따라 달랐다. 물은 언제든지 마실 수 있고, 필요하면 소금도 어느 정도 섭취할 수 있었다. 반면 아침 식사는 걸렀고, 저녁 식사는 빵과 간단한 음료가 전부였다. 음료로는 차나 커피 또는 영양가 있는 수도원산 사과술 등을 마실 수 있었다.

 

아침기도, 찬미의 기도, 미사, 저녁기도는 성당에서 거행되었다. 주일과 대축일에는 1시경을 뺀 모든 시간 전례를 성당에서 바쳤다. 그 밖에 모든 것은 독방에서 철저한 고독 중에 이루어졌다. 이는 독방의 고독이 하느님과 더 잘 통교할 수 있는 환경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회헌 자체에서 활동 사도직을 금지할 정도로, 이들이 중요시하는 것은 오직 기도였다. 따라서 베네딕도회와 달리 농사를 짓거나 교육 활동을 하지 있다. 천국의 사람들과 관계하고자 세속의 사람들에게서 죽는 방식을 선택했고 그래서 수도원 밖의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일반 대중과 가장 밀접한 연관을 맺는 길이었다. 그들의 일인 기도가 우리 모두를 위한 중재 기도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카르투시오회 수도자는 일 년에 네 번 가족에게 편지를 쓸 수 있고, 가족들은 일 년에 한 번 방문하여 약 사흘 동안 수도자를 만날 수 있다.

 

거의 1000년을 이어 온 이 수도회는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23개의 공동체가 있다.

 

 

‘위대한 침묵’

 

영화 ‘위대한 침묵’을 다시 보본다. 이 영화 …. 어떤 이에게는 지루할 수 있다. 구성 자체가 지극히 단순하기 때문이다. 카메라 앵글 속 장면은 담담하다 못해 무심할 지경이다.

 

영화는 규율이 엄격하기로 유명한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 수도자들이 살아가는 일상생활을 보여 줄 뿐이다. 어떤 효과음도, 배경음악도 없이 침묵만 가득하다. 관객의 흥미를 자극할 만한 요소 또한 없다.

 

하지만 나에게 이 영화는 침묵의 진수를 알려 준 하나의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볼품없는 인격 때문에 가슴 톡톡 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때마다 몇 가지 덕의 부족함 때문에 걸려 넘어지곤 하는데, 특히 깊게 박혀서 뽑아내지 못하고 있는 내면의 큰 돌부리가 하나 있다. ‘침묵의 덕’이 그것이다.

 

돌이켜 보면 하루하루가 늘 바쁘게, ‘정신없이’의 연속이다. 날마다 아침이면 정신없이 일어나, 정신이 샤워하고, 정신없이 밥 먹은 뒤, 정신없이 수도원 문을 밀고 바깥세상으로 나와, 정신없이 뛰어다닌다.

 

나만이 아닐 것이다. 많은 현대인이 사회적 존재임을 증명하려는 듯 바쁘게 산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알지 못하면서 정신없이 바쁘게 산다. 분주하지만 외롭고, 치열하지만 고단하며, 뜨거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차갑다.

 

왜 차분하게 침묵하지 못하고 일에 매달려 살아갈까. 고민을 이야기하자, 한 신부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하는 일은 당신의 일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십시오. 하느님께 맡기십시오. 당신이 일을 하려 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일하시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침묵 속에서 하느님의 선물을 기다리십시오.”

 

내 일로 착각하고, 내가 가지려 하고, 내 것을 만들려고 하기 때문에 말이 많아지고 몸이 바빠진다.

 

이 영화는 판도라의 상자를 닮았다. 상자의 맨 윗단에서 지루함을 발견하고 얼른 뚜껑을 덮었다면 성급했다. 상자 가장 밑바닥에, 실은 생동하는 ‘침묵’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 진짜 선물을 꺼내기를 서두르지 않는다. 지루해 보이는 수도자들의 일상을 가만히 관조한다. 그렇게 영화는 차분한 눈으로, 침묵하며 살아가는 수도자들의 뒤를 따라간다.

 

편안하게 영화가 제시하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그들로부터 ‘진정으로 말을 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침묵하는’ 궁극의 한 수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가 선사하는 침묵이라는 이 선물, 더 많은 이와 함께 나눠 가졌으면 좋겠다.

 

참! 조언을 하나 드리자면 이 영화를 볼 때는 팝콘, 콜라 따위는 깨끗이 포기하고 마음 비우고 침묵 속에서 조용히 관람하기를 권한다. 카르투시오회 수도자의 평생 금욕과 침묵에 비하면 160분의 금욕과 침묵은 아무것도 아니다.

 

카르투시오회 이후 기존의 수도 규칙서와는 완전히 다른, 곧 창설자 개인의 카리스마적인 규칙을 따르는 수도회도 늘었다. 대표적인 수도회가 그랑몸회(Ordo Grandimontensis)다. 스테파노(1045-1124년)는 1100년 무렵 리모주 교외의 뮈레에 이 수도회를 설립했는데 특별한 회칙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 다른 회칙은 없다.”

 

그는 모든 필수품을 수도원 담장 안에서 자급자족하도록 하고 절대 청빈과 무소유를 강조했는데, 이는 훗날 프란치스코회 설립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성직자는 철저히 은둔과 기도의 삶을 살고 수도회 관리 등은 평수사에게 전담시킨 운영 방식은 도미니코회에 영향을 주었다. 물론 중세 교회의 성장과 발전에 영향을 준 수도회가 이뿐만은 아니었다.

 

* 최의영 안드레아 – 교황청립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CFIC) 동아시아 준관구장. 교황청립 라테라노대학교 수도자 신학대학원(클라렛티아눔)을 졸업했다.

 

[경향잡지, 2020년 9월호, 글 ‧ 사진 최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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