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세상을 향한 교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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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4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5-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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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반장 월례연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세상을 향한 교회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론적 공의회였지만, 교회 내부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의 세상을 향해서도 활짝 열린 공의회였습니다. 이러한 공의회의 기본 노선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여러 문헌 중 「교회 헌장」과 「사목 헌장」이라는 양대 기둥을 통해서 잘 드러납니다.
「교회 헌장」은 1545-1563년의 트렌토 공의회(Concilium Tridentinum) 이후의 전통적인 교계제도적 교회관을 견지하면서도 ‘그리스도의 신비체’(Corpus Christi mysticum)와 ‘하느님의 백성’(Populus Dei)이라는 성서적 관념을 통해 친교와 성사로서의 교회 개념을 도입하였습니다. 이는 더 이상 교회를 성직자 중심의 법률적이고 제도적인 시각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향한 여정 중에 있는 성사적 공동체로서 생각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이로써 제도적 교회관의 특징인 전투적 혹은 개선주의적 교회상이 물러나고 종말론적 완성을 기다리는 순례적 교회상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론에서 교차되고 있는 상이한 두 가지 교회관, 즉 제도로서의 교회관과 신비적 공동체로서의 교회관의 결합은 바로 성령의 작용에 의해서 가능하게 됩니다. 제도라는 틀에 친교적 일치라는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어 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목 헌장」에서는 이러한 친교적 일치의 교회 공동체의 모습이 교회 내부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동선의 증진과 세상을 위한 봉사로 연결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즉, 교회 안에 숨결을 불어넣어 주시는 성령께서는 그 역동적인 생명의 기운이 교회 밖을 향한 선교 정신으로 자라나게끔 인도하시고 격려해 주십니다.
「교회 헌장」 4항은 성령께서 교회 안에서 어떻게 활동하시는지 자세히 설명합니다. “오순절에 성령께서 교회를 끊임없이 거룩하게 하시도록 파견되셨다. … 성령께서는 교회 안에 그리고 바로 성전인 신자들의 마음 안에 머무르시고(1코린 3,16: 6,19 참조), 그 안에서 기도하시며 그들이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언하여 주신다(갈라 4,6: 로마 8,15-16,26 참조). 교회를 온전한 진리로 인도하시고(요한 16,13 참조) 친교와 봉사로 일치시켜 주시며, 교계와 은사의 여러 가지 선물로 교회를 가르치시고 이끄시며 당신의 열매로 꾸며 주신다(에페 4,11-12; 1코린 12.4: 갈라 5,22 참조). 복음의 힘으로 성령께서는 교회를 젊어지게 하시고 끊임없이 새롭게 하시며 자기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도록 이끌어 주신다.”
이 말씀은 「교회 헌장」 제1장인 “교회의 신비”에서 교회를 성령론적 차원에서 설명하는 부분에 속합니다. 1항에서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사(Sacramentum)와 같다. 교회는 곧 하느님과 이루는 깊은 결합과 온 인류가 이루는 일치의 표징이며 도구”라고 시작된 교회의 신비에 관한 설명은 2항에서의 “성부의 보편적인 구원 계획”, 또 3항에서의 “성자의 파견과 활동” 이후에 4항에서의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에로 이어지며 그 신비의 삼위일체론적인 근거와 기반을 분명히 밝힙니다. 특히 4항에서 성령과 교회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 위 내용은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도록 주어진 성령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면서,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향해 성장해 나가는 교회의 일치와 성화(聖化)의 핵심 원리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교회 헌장」의 7항과 8항에서는 ‘그리스도의 지체’(Corpus Christi)로서의 성령의 역할이 제시됩니다. 신약 성경에서 친교와 일치 원리로서의 성령에 관한 사상은 “성령에 의한 친교”(Koinonia Pneumatos)란 표현으로 드러납니다(2코린 13,13; 필리 2,1 참조). 이는 성령에 의해 선물로서 주어지는 친교 개념을 뜻하며, 「교회 헌장」 7항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끊임없이 새로워지도록(에페 4,23 참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당신 성령을 주셨으며, 머리와 지체들 안에 현존하시는 한 분이신 똑같은 성령께서는 온몸에 생명을 주시고 온몸을 일치시키시고 움직이신다. 그래서 거룩한 교부들은 성령의 임무를 생명의 원리인 영혼이 인체 안에서 하는 일과 비교할 수 있었다.”라는 표현에서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의 교회 안에서 친교와 일치의 원리로 활동하시는 성령 개념에 관하여 잘 설명됩니다.
「교회 헌장」 8항에서는 교회의 가시적인 제도적 차원과 비가시적인 영적 차원을 결합시키는 원리로서 성령 개념이 제시되면서, 제도와 신비적 공동체라는 두 가지 요소들이 구별되면서도 분리 불가능하게 결합되어 교회의 유일한 실체를 구성함을 역설합니다. 「선교 교령」 4항에서 이미 언급된 것처럼, 이 두 가지의 상이한 차원의 결합은 일치 원리이신 성령에 의해 가능하게 됩니다. 8항의 “교계 조직으로 이루어진 단체인 동시에 그리스도의 신비체, 가시적 집단인 동시에 영적인 공동체, 지상의 교회인 동시에 천상의 보화로 가득 찬 이 교회는 두 개가 아니라 인간적 요소와 신적 요소로 합성된 하나의 복합체를 이룬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기에 훌륭한 유비로 교회는 강생하신 말씀의 신비에 비겨지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께서 받아들이신 본성도 구원의 생명체로서 말씀과 떨어질 수 없도록 결합되어 말씀에 봉사하듯이, 다르지 않은 모양으로 교회의 사회적 조직도 교회에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성령께 봉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한다(에페 4,16 참조).”에서 ‘그리스도의 신비체’라는 성서적 관념과 교계제도(hierarchia)라는 가시적 차원을 결합시킨 새로운 교회관을 제시합니다. 즉, 가시적 조직과 영적 공동체로서 각기 구분은 가능하지만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유일한 실체로서의 교회 개념을 잘 설명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성령은 교회의 외적이고 가시적인 측면을 영적 차원과 연결시키는 중요한 원리로서 제시됩니다. 이 텍스트의 마지막 부분은 성령에 의한 친교적 일치가 제도보다 우선하며, 교회의 가시적 조직은 성령께 봉사하는 것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이처럼 성령에 의해 내적으로 인도되며 교회의 가시적 경계선을 넘어서 ‘세상을 향한 열린 교회’를 표방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이끈 기본 논거 중 하나가 바로 ‘시대의 표징’에 관한 전망입니다. 「사목 헌장」 11항은 이 개념을 성령론적 전망에서 제시합니다. “하느님의 백성은 온 누리에 충만하신 주님의 성령께 인도되고 있음을 믿는 그 신앙에 따라, 현대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참여하는 사건과 요구와 염원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과 그 계획의 진정한 징표가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노력한다.” 이는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동시대 사람들과의 연대성 안에서 역사 안에 발생하는 인간 현상에 주목하고 이를 복음의 빛으로 해석해야 하는 교회의 봉사와 선교 의무를 제시합니다.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25년 6월호, 박준양 세례자요한 신부(레지오 마리애 세나투스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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