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 이 시대의 희망人: 영원까지 계속될 정의 - 김홍섭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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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6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5-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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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 특집 - 이 시대의 희망人] 영원까지 계속될 정의 : 김홍섭 바오로
저 멀리 또 그가 보인다. 땡볕이 내리쬐는 여름이나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에도 그는 끊임없이 이곳, 교도소에 찾아온다. 그가 처음 교도소에 나타났을 때, 그 누구도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서울고등법원 판사’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비루한 차림새였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낡고 헤진 흰색 반팔 상의에 검은 바지, 겨울에는 누군가에게 얻어 입은 것이 분명한 커다랗고 얇은 재킷에 검은 바지. 신발은 사계절 내내 검은 고무신이었다. 그러니 그가 신분증을 내보이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한 것인데, 이제는 하도 감옥을 들락날락하여 멀리서도 그를 알아보게 되었다. 판사가 교도소에 이리 뻔질나게 드나드는 것은 사형수와의 면담 때문이었다.
판사였기에 누군가의 죄를 판단해야 하는 그였지만 그는 늘 오판의 죄를 짓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더불어 죄의 판단 기준을 두고 회의감에 들었다. 특히 가난으로 저지른 죄와 어른들의 방치로 죄에 몰린 아이들의 죄에 대해서는 묻고 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판사이자 그리스도인이었던 그는 모두를 용서하고 품어야 하는 ‘신앙’과 죄를 판결하고 벌을 줘야 하는 ‘법’ 사이에서 번민했다. 그랬기에 그는 더욱 열심히 기도했다. 부디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식별하게 해 달라고…. 그러던 어느날, 하느님의 대답이 돌아왔다. 사형수 허태영을 통해서였다. 허태영은 대통령과의 친분을 등에 업고 권력을 휘두르던 육군 특무부대장을 암살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김홍섭은 그에게 살인죄를 인정하여 사형을 선고했다. 한 인간을 죄로 판단하고 선고하는 것이 법의 끝이 아니라 믿은 김홍섭은 감옥으로 허태영을 찾아갔다. 법의 판단 그 이후가 있음을 그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영원한 생명에 대해, “먼지는 제가 생겨난 땅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그를 주신 천주께로 돌아간다.”는 진리를 전하고자 하였다. 그런 그의 진심이 통했는지 허태영은 김홍섭의 대자가 되어 ‘마태오’라는 이름으로 감옥에서 세례를 받았다. 사형 집행이 있던 날, 집행관은 허태영에게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없는지 물었다. 허태영은 대답했다. “대부님께 제가 편안하게 죽음으로 간다고 전해 주십시오.” 이 소식을 들은 김홍섭은 이렇게 회고했다. “이제 사람은 갔다. 갔지마는, 그와 나 사이의 정의는 남는다. 일후 영원까지 계속될 정의가…. 망자 평안함에 쉬어지이다. 아멘.”
신앙과 법이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는지 길을 찾은 김홍섭은 그날부터 이렇게 사형수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던 것이다. 오늘도 김홍섭은 사형수와 마주 앉았다. 이 세상 정의를 판결하는 판사로서가 아닌 영원까지 계속될 정의를 전하는 사도로서.
덧) 김홍섭 바오로 판사는 이후에도 수많은 죄수 특히, 사형수를 만나며 하느님을 전했고 그들의 대부(代父)가 되어 주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사형수의 아버지’ ‘사도 법관’이라 불리고 있다.
[2025년 7월 27일(다해) 연중 제17주일(조부모와 노인의 날) 서울주보 7면, 서희정 마리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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