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 신앙 안에서의 환대: 성체성사, 빵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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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6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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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안에서의 환대] 성체성사, 빵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임 1-1
2026년 교구장 주교님의 사목교서에 따라, 우리 인천교구는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루카 14,23)라는 성구를 중심으로 ‘환대하는 공동체의 해’를 보내게 됩니다. 환대의 사전적 정의는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환대를 인간적 차원에서 나의 가까운 가족과 이웃을 따뜻하고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그리스도교 신앙인으로서 ‘환대’를 하느님과의 관계적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핵심인 기도는 살아 계시는 참 하느님과 맺는 생생하고 인격적인 관계이자 대화입니다. 관계와 대화의 시작은 당연히 받아들이고 듣는 것입니다. 이 듣는 자세를 바탕으로, 우리의 영성생활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과 자비를,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 신앙의 자세로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교구장 주교님께서 사목 교서에서 언급하신 대로, 환대는 마음을 열고 신앙의 눈으로 하느님을 맞아들이는 것이며, 모든 이들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 가지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우리는 어떻게 환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우리의 기도 생활에서도 중요한 화두입니다. 보이지 않는 분과 대화하고 우정을 쌓는 것은 우리 유한한 인간에게 너무나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고 계십니다. 당연히 우리의 부족함과 약함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당신 외아드님을 보내시어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게 하셨고, 그 외아드님께서는 우리의 양식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에 끝까지 머물고자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매일 받아 모시는 성체성사입니다.
성체성사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정점”(『교회 헌장』 11항)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다른 성사들과 모든 사도직 활동은 성체성사와 연결되어 있고, 이 거룩한 성사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 안에 교회의 모든 영적 선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사제 생활 교령』 5항 참조). 그 선이 바로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성체성사를 통해 주님을 마주 보고 눈을 맞추며 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체조배입니다. 참된 기도는 많이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 인간관계에서도 진정 사랑하는 사람과는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함께 있는 그 자체가 기쁨이고 행복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성체 앞에 시간을 내어 자주 주님과 눈을 맞추고 머무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우리를 항상 기다리고 계십니다. 시간을 내어 우리 본당의 성당과 성체조배실에 머물러 봅시다. 그곳에서 나를 사랑하시는 분과 단둘이 머물며, 나의 고민과 걱정까지도 주님 앞에 내어드리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자주 미사에 참여하여 말씀을 듣고 성체를 자주 받아 모시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작은 응답의 시작일 것입니다. [2026년 2월 1일(가해) 연중 제4주일 인천주보 2면, 김범종 안토니오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신앙 안에서의 환대] 성체성사, 빵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임 1-2
성체성사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이루게 합니다. 이 성사 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존재 자체로 현존하시며, 실제로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매일 새롭게 하십니다. 모든 성사와 교회의 활동은 이 지극히 거룩한 성사를 향해 나아가며, 이 성사에서 이루어지는 예수님과의 만남을 준비합니다.
성체성사를 통해 지상에서 예수님과 일치할 수 있다는 교회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희망과 위로를 줍니다. 그리고 실제로 지상의 삶에서 주님과 일치를 이룬 신앙의 인물들이 있는데, 바로 우리가 공경하는 성인·성녀들입니다. 특별히 이 글에서는 16세기 스페인의 성녀인 ‘예수의 성녀 데레사’의 성체 신심에 대해 간략히 나누고자 합니다.
성녀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은 성체성사에서 비롯됩니다. 그중 첫 번째는 수도원 창립이라는 사명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데레사 성녀에게 “어느 날 영성체 후에, 주님께서는 이 수도원의 설립을 위해 모든 힘을 기울이라”(『자서전』32,11)고 명령하셨습니다.
또한 성녀는 자신이 체험했던 대부분의 신비체험은 영성체 직후에 주어졌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성녀는 영성체 직후에 성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체험인 주님과의 영적 혼인의 은총을 받았습니다(『영적 보고서』35 참조). 또한, 성녀가 창립자로서 마지막 여정을 걸을 때 받은 신비의 은총들 또한 영성체 직후에 일어났습니다(『창립사』30-31 참조). 성녀는 기도와 영성체를 통해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의 신비와 실제적 현존을 체험하였습니다. 성체 안에 생생히 살아 계시는, 부활하시고 영광스럽게 되신 주님의 인성을 체험하였으며, 그분께서 성체의 형상 아래 온전히 머무르심을 인식하였습니다. 이는 성녀의 작품 속 고백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작은 빵 속에 이렇듯 엄위하신 주님께서 숨어 계시는 것을 볼 때, 이같이 위대한 지혜에 감탄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자서전』38,21)
“영성체를 하러 나갈 때면, 나는 내가 뵌 그 지극히 엄위하신 주님을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분께서 성체 안에 계시다고 생각할 때, 주님께서 가끔 성체 안에 계신 당신을 보여 주실 때 나는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것을 느끼고, 내가 온전히 없어져 버리는 것만 같았습니다.”(『자서전』38,19)
성체성사에 대한 데레사 성녀의 태도는 신앙, 사랑, 종말론적 희망의 긴장, 교회 신비의 중심으로 잘 드러납니다. 그리고 이 성사를 주님이자 신랑이신 그리스도와의 우정에서 특권적 순간으로 체험합니다. 데레사 성녀의 이러한 체험은 성녀에게만 특별히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예수의 성녀 데레사’와 같은 성체를 매일 받아 모시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히려 성녀의 시대보다 우리는 더 자주 성체를 모실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우리에게 큰 선물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을 환대하는 마음으로 성체를 자주 영하고, 성체 앞에 자주 시간을 내어 머물 때, 우리는 이 지상에서 하느님과의 일치를 미리 맛보는 특별한 은총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2026년 2월 8일(가해) 연중 제5주일 인천주보 2면, 김범종 안토니오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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