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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교토(京都) 천주교 성지 (10) 천주교와 다도(茶道) 1

1516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5-10-11

교토(京都)에서 분 바람 - 교토천주교성지 ⑩ 천주교와 다도(茶道) 1


 

일본에서 처음으로 천주교를 선교하기 시작한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언어문제나 문화적 차이 때문에 특히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느님을 알리려고 하는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처음 상륙한 가고시마현(鹿兒島縣:큐슈지방 남쪽에 위치)에서 그 당시의 수도였던 교토까지 직선거리로 환산하면 약 625km 거리를 어렵게 갔으나, 일본 곳곳에서 내란이 일어나 있었던 시대여서 교토도 예외 없이 황폐하여 천황에게서 선교의 허가를 받지 못하였다. 그러한 상태에서 그는 선교를 할 때 일본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다이니치(大日)라 불리게 하는 등 표현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쓰는 섬세함으로 선교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자신이 꿈꾸던 모습과 너무나 다른 교토의 상황, 그리고 외국인을 처음 본 교토 사람들의 심한 조롱 탓에 결국 불과 11일 만에 교토를 떠나야만 했다.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뒤를 이은 선교사들은 이런 사정을 감안하여 일본 사람들에게 생소한 천주교를 전파하기 위해 우선 일본의 문화를 이해하고 언어를 습득하는 것에 온 힘을 기울였다. 그 중 선교사들이 가장 먼저 배운 것이 바로 일본의 다도(茶道)였다. 다도는 원래 당나라에서 유학한 승려들이 일본에 전하였지만 널리 퍼지지 않았다가 12세기 말쯤부터 불교와 함께 다시 들어와 여러 가지 형태로 점점 퍼지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귀족들이 주로 즐기는 놀이나 의식의 요소가 강했던 것이었으나 서서히 서민들 사이에서도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불교 선종(禪宗)의 정신을 가진 수수하고 간소하면서도 정신적, 예술적인 내용을 가진 양식으로 형성해 갔고 그 후에는 교토의 다인(茶人) 센노 리큐(千利久)로 인해 다도가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물론 그 당시 힘을 가졌던 대명(大名:영주)들이 즐겼던 것이 바로 이 다도였기에 선교사들은 다도의 예의를 배우며 일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했던 것이다. 선교사들이 성당을 지을 때면 키리시탄 대명들이 성당에 다실(茶室)도 만들도록 권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선교사들에게 다도의 지도를 한 사람이 바로 센노 리큐였다. 그는 선교사들에게 다도를 가르치면서 천주교를 접하게 되었다. 그에게는 7명의 제자가 있었는데 그 중 5명이 키리시탄이었고 가장 친하게 지냈던 제자가 앞서 소개한 키리시탄 대명인 타카야마 우콘(高山右近)이었다. 게다가 그의 부인과 딸도 키리시탄이어서 센노 리큐 자신도 키리시탄이었다는 설(“센노 리큐”라는 이름도 성 루카, 즉 일본어로 “세이 루카”와 음이 비슷하여 지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이 있기는 하나 그것을 증명할 문서는 남아있지 않다.

일본의 다도(茶道)는 여러 파로 나누어져 있는데 센노 리큐가 확립한 다도는 “와비차”라고 불린다. 와비차는 다실의 크기가 아주 작고 간소하며 키리시탄들과 왕래가 잦았던 그의 다도에는 곳곳에 천주교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특징들이 스며있다.

첫째, 다실(茶室)에 들어가기 전에 손님이 지나가는 길은 징검돌이 놓인 좁은 길인데, 그것은 허식(虛飾)을 버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낸다는 뜻이 담겨있다. 이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인간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 들여 주신다는 것을 상징한다.

둘째, 중문(中門)을 지나면 츠쿠바이(손을 씻거나 입을 헹구는 물을 담아놓기 위해 구멍을 파놓은 돌)가 있는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고…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요한 4,14)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셋째, 츠쿠바이 옆에 나지막한 등롱(燈籠)이 있다. 보통 신사(神社)나 사찰에 있는 그것은 신이나 부처님께 바쳐지는 불이지만 다실로 이어지는 길에 있는 등롱은 어두움을 밝혀주는 실용적인 용도로 쓰였다. 그것은 “당신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시편 119, 105)라는 성경구절과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 8,12)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 이러한 정원을 생각해낸 사람은 센노 리큐의 제자 중 하나로 키리시탄 대명이었던 후루타 오리베(古田織部)이다.

넷째, 다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입구인 니지리구치로 들어가야 한다. 이 문은 센노 리큐가 생각해낸 다실 특유의 문인데, 이는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마태 7,13)는 것을 나타낸다. 그는 무사(武士)들의 영혼, 생명이라 생각되었던 칼마저 다실에 갖고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와비차”에서는 가문 혹은 입장, 소유물, 재산이나 권력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일단 다실에 들어가면 사람은 모두 평등하며 서로를 섬기는 신분이 된다. 이것은 “다실에 들어갈 때는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 대명이라고 해도 모든 사람이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진 것이다.

다섯째, 토코(床:일본식 방의 상좌<上座>에 바닥을 한층 높게 만든 곳)에 거는 족자로, 그 날의 다도회의 주제를 알리고, 꽃꽂이는 예수님께서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 보아라.”(마태 6,28)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면서 꽂는다.

이처럼 다도(茶道)는 신분이 높은 사람들만의 사치가 아닌, 한 송이의 꽃 앞에서 각자 하나의 인간으로 마주 보고 차를 즐기는 것으로 시작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나아가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한 사람도 가난한 사람도 없이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을 센노 리큐는 다도 안에서 받아들이고 실천하고 싶었던 것 같다.(참고도서 : 스기노 사카에 저서 《교토의 키리스탄사적을 돌아보다》, 산가쿠출판)

* 이나오까 아끼 님은 현재 프리랜서로 통역 및 가이드로 활동 중이며, 비산성당에서 10년째 교리교사를 하고 있다고 해요.

[월간빛, 2015년 10월호, 이나오까 아끼(쥴리아, 비산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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