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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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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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1-04-07 ㅣ No.145933

정호승 시인은 새들은 바람이 강한 날에만 집을 짓는다.’라고 하였습니다. 높은 나무 가지 위에 위태롭게 보이는 둥지는 바람이 불어도 쉽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새들은 바람이 강한 날에 집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배우지 않았어도, 새들은 바람이 없는 날에 편하게 집을 지으면 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에는 둥지가 떨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고치에 있는 나비가 쉽게 나올 수 있도록 밖에서 고치를 열어주면 나비는 결코 하늘을 날 수 없다고 합니다. 스스로 고치를 열고 나와야만 날개에 힘이 생겨서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전거를 타면 엉덩이가 아프기 마련입니다. 다리의 근육도, 팔의 근육도 아프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자전거를 타려면 그 과정을 이겨내야 합니다. 이것은 누가 대신 해 줄 수도 없습니다. 처음 자전거를 탈 때는 엉덩이가 아팠는데 어느덧 아픈 줄 모르고 타게 되었습니다. 다리와 팔이 아파서 경치를 볼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이제는 예쁜 꽃도 보고, 뺨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새들이 바람이 강한 날에 집을 짓듯이, 삶은 폭풍우 속에서도 항해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잔잔한 파도는 결코 강한 항해사를 만들 수 없습니다. 파랗게 돋아나는 새싹들도 모두 지난겨울 눈보라를 맞으면서 봄을 맞이하였습니다.

 

불교에서는 고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목적을 위해서 스스로 고통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삼보일배, 오체투지, 108와 같은 고행이 있습니다. 이는 깨달음을 얻어 구원받으려는 염원입니다. 묵주기도에 고통의 신비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모습을 기억하며 기도합니다. 교회에서 고통의 신비를 묵상하는 것은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가신 예수님의 희생을 생각하며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지는 고통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알고 기꺼이 지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말에 수고(受苦)하셨습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타인을 위한 희생을 기꺼이 받아들였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의 부활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 나의 삶이 세상의 것들에 머물러 있다면 주님의 부활을 애써 외면하고 감추려했던 율법학자와 대사제의 삶은 아닐까요? 지금 나의 삶이 짙은 안개 속을 걷는 것과 같다면 진리를 외면한 빌라도와 같은 삶은 아닐까요? 지금 나의 삶이 베드로 사도처럼 변화된 삶이 아니라면 타인을 위한 수고의 삶이 부족했기 때문은 아닐까요? 지금 나의 삶이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기쁨의 삶이 아니라면 예수님을 찾으려는 열망이 부족했기 때문은 아닐까요? 지금 나의 삶이 엠마오로 가는 길의 두 제자처럼 가슴 벅찬 감동의 삶이 아니라면 주님과 함께 머물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요?

 

오늘 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주님 부활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을 일으키시고 먼저 여러분에게 보내시어, 여러분 하나하나를 악에서 돌아서도록 하여 여러분에게 복을 내리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부활은 어둠 속에 있는 이들이 빛을 보는 것입니다. 절망 중에 있는 이들이 희망을 보는 것입니다. 지치고 힘든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것이 부활의 삶입니다.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 일의 증인입니다. 당신의 죽음으로 저희 죽음을 없애시고 당신의 부활로 저희 생명을 되찾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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