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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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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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1-04-08 ㅣ No.145951

자전거를 타면서 안장의 높이가 걱정이었습니다. 안장이 낮으면 타고 내리기가 편했습니다. 그러나 폐달을 밟는 모습이 팔자모양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속도가 나지 않았습니다. 동영상으로 찍어서 보여주었는데 모습이 우스웠습니다. 후배 신부님이 안장을 높여 주었습니다. 타고 내리는 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안장이 높아서 걱정했는데, 타고 내리는 법을 익숙하게 배우니 어렵지 않았습니다. 다리를 쭉 뻗어서 폐달을 밟으니 속도가 빨라졌고, 자세도 좋아졌습니다.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둥지에서 나와야 합니다. 날개의 힘을 믿고 힘차게 둥지에서 날아야 합니다. 안장을 조금 높이니 더 빨리, 더 멀리 갈 수 있었듯이, 우리의 삶도 차원을 높여야 합니다. 부활은 새가 둥지를 날아 높이 날아오르듯이, 위험하게 보이지만 안장을 높여야 더 잘 달릴 수 있듯이,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두려움에서 담대함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세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변한 것입니다. 내가 변한 만큼 세상이 변하는 것입니다.

 

스코틀랜드의 목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목동은 양을 들판에 풀어놓습니다. 양들은 알아서 풀을 찾아다닙니다. 대부분의 양들이 돌아오지만 간혹 돌아오지 못하는 양이 있습니다. 풀을 찾아가다가 웅덩이 빠진 양이 있습니다. 양은 목동을 부르면서 웁니다. 목동은 웅덩이 빠진 양을 봅니다. 그러나 바로 웅덩이에서 양을 빼내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 울다 지친 양이 쓰러져 있으면 그제야 목동은 양의 목에 줄을 걸고 양을 들어 올립니다. 양이 울고 있을 때 줄을 내리면 양이 올라오다가 몸부림 치고 잘못하면 양이 죽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동은 양이 울다 지칠 때까지 기다립니다. 어린 날 힘들고 괴로울 때가 많았습니다. 가난한 것이 어깨를 누르는 짐이 되기도 했습니다. 열등감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동네에서 친구들과 놀던 것도 즐거웠습니다.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꽃을 보고, 바람을 느낀 것도 좋았습니다. 열이 심하면 먼저 열을 낮춘 다음에 치료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울다 지친 제자들을 기다려 주시는 것은 아닐까요? 목동이 울다 지친 양의 목에 줄을 걸어서 올려 주듯이, 주님께서는 울다 지친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셨습니다. 세상은 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다만 제자들이 변했습니다. 그만큼 세상은 하느님 나라와 가까워졌습니다.

 

대사제와 율법학자들은 여전히 사도들을 감옥에 가둘 수 있었습니다. 유다 지도자들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그 자리에는 한나스 대사제와 카야파와 요한과 알렉산드로스와 그 밖의 대사제 가문 사람들도 모두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을 가운데에 세워 놓고, “당신들은 무슨 힘으로, 누구의 이름으로 그런 일을 하였소?” 하고 물었습니다. 여전히 밤은 찾아왔습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했던 그 밤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던 그 밤입니다. 물속에 빠져서 주님께 살려달라고 외쳤던 그 밤입니다. 헤로데가 두 살 이하의 어린아이를 죽이라고 명령했던 그 밤입니다. 제자들이 두려움에 다락방에 숨어있던 그 밤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 밤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닙니다. 더 이상 절망이 아닙니다. 밤은 새벽이 다가오는 여명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비록 그들이 사도들을 붙잡아 이튿날까지 감옥에 가두어 두었지만, 이미 저녁때가 되었지만 그것으로 사도들의 복음 선포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의 말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가 믿게 되어,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가량이나 되었습니다.

 

사도들은 당당하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집 짓는 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이십니다.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사도들은 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힘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신비입니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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