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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2일 (일)
(자)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 첫째 미사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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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마지막 시험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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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경 [forgod] 쪽지 캡슐

07:57 ㅣ No.186002

2025.11.2.주일.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지혜4,7-15 로마6,3-9 마태25,1-13

 

 

마지막 시험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어제 11월 위령성월의 첫날은 “모든 성인들의 대축일”이었고, 오늘 둘째 날은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입니다. 영어로 하면 더 선명해집니다. 지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제 천상에 있는 “ALL SAINTS”(모든 성인들)을 기렸고, 오늘은 “ALL SOULS(모든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날입니다. 교회를 통한 모두에 대한 하느님 배려의 사랑에 감사합니다. 방금 부른 화답송 후렴 시편 다음 구절도 마음에 깊은 위로와 평화를 줍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많은 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편 성구일 것입니다. 바로 시복, 시성을 추진중인 하느님의 종,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묘비명이기도 합니다. 아마 추기경은 이 말씀을 마음에 담고 살아왔을 것입니다. 깊어가는 가을은 기도의 계절이자 공부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바로 죽음을 공부하는 계절이요 죽음 공부가 우리를 한없이 겸허하게 만듭니다. 

 

오늘 위령의 날, 죽음을 묵상하면서 여러분의 묘비명도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묘비명은 좌우명이자 동시에 삶의 좌표도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예전 위령성월에 써놓고 위로를 받았던 <죽음>이란 짧은 자작시도 생각납니다.

 

“땅위를 덮고 있는 고운 단풍잎들

 두려워하지 마라.

 죽음은 귀환이다, 해후다, 화해다, 구원이다.

 ‘수고하였다, 내 안에서 편히 쉬어라.’

 들려오는 자비로운 아버지의 음성”<1998.11.10.>

 

이어 나누고 싶은 <죽음도 축제일수 있겠다>라는, 언젠가 늦가을 빨간 단풍잎들 땅위를 가득 덮고 있는 황홀한 뜨락을 보며 쓴 시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별들이 땅을 덮었다

 땅이 하늘이 되었다

 단풍잎들 하늘 향한 사모思慕의 정情 깊어져

 빨간 사랑으로 타오르다가

 마침내 별들이 되어 온땅을 덮었다.

 땅이 하늘이 되었다.

 오, 땅의 영광, 황홀한 기쁨...

 죽음도 축제일 수 있겠다.”<2005.11. >

 

참으로 잘 살다가 선종한 분들의 장례미사를 집전하다보면 <기쁨의 축제>같은 분위기를 느끼기도 합니다. 오늘은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며 기도하는 위령의 날입니다. 죽음에 대한 경각심을 주는 세 말마디를 기억합니다. 대구시 남산동 대구대교구청내 성직자묘지 입구 기둥에 새겨진 라틴어 글귀, “오늘은 나, 내일은 너(HODIE MIHI, CRAS TIBI)”라는 짧은 구절입니다. 또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글귀입니다. 또 하나는 성 베네딕도는 물론 무수한 사막교부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죽음을 늘 염두에 두고 살 때 회개와 더불어 겸손과 지혜가 뒤따르고, 오늘 지금 여기서 거품이나 환상, 허영이나 탐욕이 걷힌 투명한 본질적 깊이의 참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참 많이 말하면서도 가장 모르는 것이 죽음입니다. 주변에서 죽음을 수없이 목격하면서도 아무도 죽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고맙게도 교회의 가르침을 통해 죽음을 배웁니다. 제가 위로와 평화를 얻는 미사경문중 <감사기도> 다음 두 대목입니다.

 

“부활의 희망 속에 고이 잠든 교우들과, 세상을 떠난 다른 이들도 모두 생각하시어, 그들이 주님의 빛나는 얼굴을 뵈옵게 하소서.”

 

“성자께서 죽은 이들의 육신을 다시 일으키실 때에, 저희의 비천한 몸도 성자의 빛나는 몸을 닮게 하소서. 또한 세상을 떠난 교우들과 주님의 뜻대로 살다가 떠난 이들을 모두 주님의 나라에 너그러이 받아들이시며, 저희도 거기서 주님의 영광을 영원히 함께 누리게 하소서. 저희 눈에서 눈물을 다 씻어 주실 그때에, 하느님을 바로 뵈오며, 주님을 닮고, 끝없이 주님을 찬미하리이다.”

 

위령감사송도 죽음이 허무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그리스도께서 복된 부활의 희망을 주셨기에, 저희는 죽어야 할 운명을 슬퍼하면서도, 다가오는 영생의 약속으로 위로를 받나이다. 주님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 세상에서 깃들이던 이 집이 허물어지면, 하늘에 영원한 거처가 마련되나이다.”

 

결코 무의미하고 허무한, 우연한 죽음이 아니라 새생명의 시작이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코 죽음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평소 죽음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함을 배웁니다. 마지막 시험인 죽는 날짜를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혜서의 가르침이 우리 삶에 좋은 깨우침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의 <삶의 양>이 아니라, 어떻게 참되게 살았느냐의 <삶의 질>입니다.

 

“영예로운 나이는 장수로 결정되지 않고, 살아온 햇수로 셈해지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예지가 곧 백발이고, 티없는 삶이 곧 원숙한 노년이다. 짧은 생애 동안 완성에 다다른 그는 오랜 세월을 채운 셈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께 선택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이들을 돌보신다.”

 

그러니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이미 세례받은 우리의 옛 인간은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힘으로써 죄의 지배를 받는 몸은 소멸하여, 더 이상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며 그분과 함께 다시 살아 나 종이 아닌 자유인으로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지니십시오. 

 

유비무환입니다. 복음의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늘 내 삶의 등에, 내 삶의 기름을 가득 채우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지막 시험 죽음 준비에 벼락 공부가 소용없듯이 얼마동안의 준비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모래위에 인생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반석위에 인생집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처럼, 평소 한결같이 깨어 주님과 이웃을 잘 섬기고 주님 가르침의 말씀을 실천하면서 준비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결코 내 삶의 등은 평소 내 삶의 수행의 기름으로 채워야지 누구의 것을 빌릴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꾸준히, 부지런히, 우직하게 우보천리의 자세로, 내 책임을 다하면서 삶의 기름을 채우라는 것입니다. 결코 삶에서 비약이나 도약, 첩경의 지름길이나 요행을 추호도 기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듯 하나 꾸준히 노력하며 준비하는 지혜롭고 겸손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입니다. 기도하라, 사랑하라, 섬기라, 공부하라, 회개하라, 감사하라 주어진 나날들이요, 죽음의 문이 닫히면 모두가 끝입니다. 아무리 두드려도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는 주님의 냉정한 반응이 있을 뿐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 우리 모두 삶의 등불을 켜들고 깨어 준비하고 있다가 주님을 맞이하는 시간입니다. 이래야 마지막 죽음을 통해 오시는 주님도 감사와 기쁨으로 잘 맞이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니 늘 깨어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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