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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베드로가 진짜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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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lskgo] 쪽지 캡슐

2025-11-12 ㅣ No.233352

 

나의 가톨릭 입문 이야기


1960년생, 나이 65세 그리고 지금, 내가 가톨릭에 입문한 지도 어느덧 5년이 되어간다. 짧은 시간 같지만, 그 안에는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시간들을 돌아보면, 마치 누군가가 조용히 내 삶을 이끌어온 듯한 느낌이 든다.

어느 겨울 아침이었다. 출근길에 성당 앞을 지나가는데, 한 신사분이 바쁜 걸음으로 성당으로 가더니 난간을 붙잡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저 그분의 간절한 기도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날 저녁, 집사람 친구 부부와 식사 자리가 있었다. 내키지 않았지만 억지로 따라나섰다. 식사 중, 그 남자분의 손에 묵주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아침에 본 장면이 떠올라 그 이야기를 꺼냈더니, 그는 성당에 꼭 가보라고 강하게 권했다. 아는 분도 있다며, 나를 성당으로 이끌었다.

 

사실, 어릴 적부터 성당에 다니고 싶다는 마음은 늘 있었다. 다만, 삶이란 게 늘 그렇듯 기회가 닿지 않았을 뿐이다. 주변에 종교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늘 가톨릭을 추천하곤 했다. 실제로 처제가 결혼 전에 입교하도록 권유한 것도 나였고, 지금은 처제네 네 식구 모두가 신자다.

 

그렇게 나는 교리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매주 시험을 보고, 우편으로 답안을 주고받으며 나름 열심히 공부했다. 간혹 우편이 오지 않으면 교구 사목국까지 직접 찾아가 답안을 작성하고 오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세례를 받았다. 내 세례명은 ‘베드로’.

 

그 이름에는 오래된 기억이 얽혀 있다. 20대 후반, 성주 무학리에서 외지 생활을 하던 시절, 내가 묵던 집의 할머니가 어느 날 물으셨다. “자네, 성당 다니나?” 왜 그랬는지 모른다. 나는 능청스럽게 “예, 다닙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반가운 듯 물으셨다. “세례명은 뭔가?”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지만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베드로요”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할머니는 환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좋은 세례명이네. 우리 장조카가 신부님인데, 어릴 적 그 아이 모습이 자네에게서 보인다네.” 나는 그 순간, 내가 얼마나 큰 거짓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죄송한 마음에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할머니는 더 이상 묻지 않으셨다.

그렇게 ‘가짜 베드로’였던 내가, 수십 년이 흐른 뒤 진짜 베드로가 되었다. 그 이름을 다시 입에 올릴 때, 나는 그때 그 할머니의 따뜻한 눈빛을 떠올렸다. 그리고 속으로 조용히 되뇌었다.

 

“할머니, 이제는 진짜입니다. 그때의 거짓이, 이제 진실이 되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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